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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모린 Jul 27. 2018

히어로물 뒤집기_메가마인드

영웅은 무엇으로부터 시작되는 가

공식 포스터, 메가마인드(좌), 메트로맨(우)


  메가마인드, 그는 누구인가? 메트로시티의 주민이라면 그를 보기만 해도 치를 떠는 최악의 악당이다. 그는 영민한 두뇌를 이용해 무기를 만들어 도시를 파괴한다. 메트로시티에서 그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영웅은 바로 메트로맨! 메트로맨은 슈퍼파워를 이용해 메가마인드를 물리친다. 두 사람의 전투는 언제나 메트로맨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

  선은 기필코 악을 물리치니까.


  덕분에 납치된 록산은 두려움에 벌벌 떨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여유가 넘친다. 어차피 메트로맨이 자신을 구해줄 테니까. 그녀를 포함한 메트로시티의 주민들에게는 ‘메트로맨’이 진다는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늘 메가마인드로부터 그들을 구한 영웅이니 말이다. 

  문제는 이 당연한 승리가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메가마인드가 '메트로맨'을 이긴다면?



  히어로물에는 전형적인 서사가 있다. 악당이 범죄를 저지르면 고난과 역경 끝에 영웅이 악당을 물리치는 이야기. 히어로물을 보는 관객에게는 한 가지 확신이 있다. 무조건 영웅이 이길 것이라는 가정 말이다. 덕분에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어떻게’ 영웅이 악당을 물리칠 것이냐는 부분이다.


  메가마인드는 영화의 도입부부터 이 공식을 뒤집는다. 악당이 승리를 거두는 것이다. 영웅은 해골이 되어 악당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명백한 영웅의 패배. 익숙한 서사의 축이 무너진다. 그렇다면 메트로시티는 이제 ‘파괴’될 일만 남은 것인가.


메가마인드(2010), 공식 무비 스틸컷


  메가마인드는 승리에 취한다. 위대한 영웅을 없앤 악당. 도시의 주민들은 공포에 휩싸인다. 기자들은 일제히 메가마인드의 한 마디에 주목한다. 영웅의 한마디에 주목하던 그들이 ‘악당’ 앞에 모인 것이다. 심지어 여유가 넘치던 록산마저 그에게 이런 질문을 건넨다.


  록산 : 이건 모두 궁금할 거야. 이제부터 우리랑 도시는 어떻게 되지?
메가마인드 : 좋은 질문이다. 상상해봐. 아주 끔찍하고 야비하고 사악하고 참혹한 게 과연 뭘까? 그리고 거기에다가 곱하기 육.


  메가마인드는 자신의 승리를 대대적으로 선포한다. 주민들은 메가마인드가 저지를 악행을 떠올리며 공포에 떤다. 메가마인드는 거리를 활보하며 악행을 저지르지만 그로 인한 기쁨은 그저 '잠깐'이었다.


  메가마인드 : 너 그런 거 알아? 모두 다 가졌지만 가진 게 없어.
근데 내 기분이 왜 이렇게 멜랑꼴리 하지? 우울하다고.
미니온 : 정 그러시면 오랜만에 록산을 납치하면 어떨까요?
우울할 땐 그게 딱이었잖아요?
메가마인드 : 그렇기는 한데 그럼 뭐해. 그가 없잖아.

  

  악당의 입가에서 ‘죽은 영웅’이 그립다는 한마디가 흘러나온 것이다. 메가마인드는 목표를 잃고 허무함에 몸부림친다. ‘영웅’이 사라지고 나니 ‘악행’은 손쉬워졌다. 승리에 취해 실컷 악행을 벌이던 메가마인드는 모든 일이 지루해져 버렸다. 그를 막아줄 ‘영웅’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록산 : 영웅이라는 건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
메가마인드 : 영웅은 만들어진다? 바로 그거야! 확실한 재료만 있으면 되겠죠?
록산 : 맞아요! 용기! 강한 힘! 정의로운 생각!
메가마인드 : 충성심! 그리고 영웅의 DNA.
오, 그거면 누구나 영웅이 돼요!


  여기서 영화는 새로운 서사로 들어선다. 메가마인드가 자신의 지루함을 없애기 위해 ‘영웅’을 만들기로 결심한 것이다. 메트로맨의 ‘비듬’을 이용해 그의 슈퍼파워를 이용할 수 있는 영웅을 말이다. 그렇게만 하면 모든 것이 메트로맨이 살아있을 때처럼 돌아올 것이라고 그는 굳게 믿는다. ‘악당’인 그가 ‘영웅’을 물리쳤지만 자신의 ‘악’을 위해 ‘선’을 만들려는 것이다.


  

메가마인드(2010) 공식 무비 스틸컷, 메트로맨


  히어로물의 팬이라면 메가마인드와 메트로맨을 보는 순간 떠오르는 캐릭터가 있을 것이다. 메가마인드는 ‘렉스 루터’ 메트로맨은 바로 ‘슈퍼맨’이다. 영화는 기존의 빌런과 히어로 캐릭터를 모티브로 삼으면서도 필요한 ‘요소’만을 취했다.


  첫째로 두 인물의 ‘구도’를 흡수했다. 숙명의 ‘숙적’. 슈퍼맨과 렉스 루터의 관계를 차용한 것이다. 렉스 루터가 ‘슈퍼맨’을 쓰러뜨리는 일에 몰두하는 것처럼 메가마인드 역시 ‘메트로맨’을 쓰러트리는 일에 모든 것을 바친 인물이다. 이러한 구도와 특징을 받아들인 덕분에 메가마인드가 ‘메트로맨’이 사라진 뒤 허무함을 느끼는 부분이 설득력을 얻는다.


  둘째로 두 인물의 ‘능력’을 가져왔다. 메가마인드에게는 렉스 루터와 같은 ‘지능’을 메트로맨에게는 슈퍼맨과 닮은 ‘초능력’을 부여했다. 이러한 설정은 메가마인드가 메트로맨에게 느끼는 ‘열등감’을 증폭시키는 것과 동시에 ‘메가마인드가 지능을 이용해 직접 히어로를 만든다는’ 설정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영화는 기존의 히어로물의 장면을 가져와 새로운 장면으로 비튼다. 첫째로 메트로맨의 능력을 흡수한 ‘할’이 록산과 함께 하늘을 나는 장면이다. 대부분의 히어로 영화에서 ‘히로인’인 여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장면에서 두 인물은 전혀 다른 감정의 결을 달린다. 이루어지기는커녕 ‘할’의 짝사랑은 명백히 ‘차이는’ 것이다.


메가마인드(2010) 공식 무비 스틸컷, 할(좌), 록산(우)


할 : 아냐, 이건 이건 각본에 없었어요. 나랑 사귀어야 얘기가 된다고요.
록산 :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할.


  두 번째로는 슈퍼맨이 ‘크립토나이트’에 약하다는 설정을 차용해 메트로맨이 ‘구리’에 약하다며 연기하는 장면에 도입한다. 슈퍼맨의 유일한 ‘약점’을 영화에서는 유일한 ‘약점’인 것처럼 연기하는 장면으로 바꾸어 ‘반전’의 요소로 뒤바꾸는 것이다.



메가마인드(2010) 공식 무비 스틸컷, 록산(좌), 메가마인드(우)


  영화는 히어로물에 대표적인 ‘요소’가 되는 인물들을 비틀어 극의 활력을 불어넣는다. 록산의 경우 악당에게 납치되는 ‘히로인’의 포지션을 취하고 있지만 ‘성격’을 비틀어 새로운 장면으로 이끈다.


  메가마인드에게 끌려가도 당황하기는커녕 오히려 그의 엉성함을 ‘지적’한다. 누구보다 빨리 메가마인드의 비밀 기지를 알아내거나 그가 영웅 타이탄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동안 메가마인드가 메트로맨의 애인으로 착각해 그녀를 ‘납치’했지만 실은 메트로맨을 사랑하지 않는다. 오히려 극 중에서 버나드로 위장한 메가마인드와 사랑에 빠지며 그를 ‘악’에서 ‘선’으로 이끄는 역할을 맡는다.


메가마인드(2010) 공식 무비 스틸컷, 할(좌), 메가마인드(우)


  할의 경우 영웅의 힘을 얻었지만 ‘선’이 아닌 ‘악’의 길을 택한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누군가를 구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사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 활용한다.


  메가마인드의 의도와 다르게 ‘록산’의 관심을 얻기 위해 사용하거나 돈을 훔치며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운다. 심지어는 메가마인드에게 함께 힘을 합쳐 ‘도시를 지배하자’는 제안을 하는 것다.

  그렇다면 영화는 메가마인드와 메트로맨을 어떻게 활용했을까?


  메가마인드와 메트로맨의 시작은 같았다. 행성이 파괴되었고 두 명의 아기는 각자 지구로 떨어졌다.

  메트로맨은 '중산층 가정'으로 메가마인드는 '감옥'으로. 운명이 정해버린 '시작점'이 두 인물의 삶을 뒤바꾼다. 메트로맨이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날 때 메가마인드는 감옥에서 죄수들의 '탈출'을 돕는다.


  두 인물의 결정적인 갈림길은 '학교'에서 시작되었다. 학교에서 메트로맨과 재회한 메가마인드는 친구들에게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그를 부러워한다. 메가마인드는 메트로맨을 쫓아 팝콘을 튀기는 기계를 만든다. 모든 것은 '선의'와 '부러움'에서 출발한 일이었다.

  그런데 엉성한 기계가 오작동을 하고 말았다.


  메가마인드는 '악'으로 낙인찍힌다. 친구들은 그를 '왕따'로 만든다. 그날 이후로 메가마인드의 '실수'는 모두 '악행'이 된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악당'의 가면을 강요당하게 되었다. 그와 반대로 메트로맨은 그를 무찌르는 '영웅'의 가면을 손에 넣는다.


메가마인드(2010) 공식 무비 스틸컷, 미니언(좌), 메가마인드(우)


  사회는 메가마인드에게 '악당'이라는 선택지를 주었다. 그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메트로맨이 '영웅'이라는 선택지만 존재했던 것처럼. 메가마인드는 고통 속에서 '악'의 길로 떠밀렸다.  


  그때 난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선은 무슨 짓을 해도 박수와 칭찬을 받지만
악은 구석장에 처박힌다는 사실을.

  


  메가마인드는 자신의 고통과 열등감을 '메트로맨'을 무찌르는 일에 집중했다. 두 사람의 싸움은 끝이 없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메트로맨은 '영웅'이 되었다. 문제는 반복되는 싸움 속에서 메트로맨이 지쳐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메가마인드(2010) 공식 무비 스틸컷, 메트로맨


  메가마인드가 드디어 메트로맨을 이겼다고 생각했던 그날. 메트로맨은 죽지 않았다.

  메트로맨은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죽음으로 위장한 것이다. 메가마인드와 록산은 메트로맨의 흔적을 찾기 위해 도착한 '학교'에서 그를 발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학교 밑에 비밀공간에 숨어 사람들이 자신을 잊어버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영웅이 아닌 '뮤지션'이 되기 위해서 말이다. 


메트로맨 : 난 힘을 가졌지만 모두한테 허락된 것은 가지지 못했던 거야.
선택의 자유. 난 태어나면서 그때까지 남들이 원하는 대로만 산거야.
나도 원하는 삶이 있잖아. 평생 남을 위해서 살 순 없으니까.
뭐, 사표 내기도 그렇고. 그때 기막힌 생각이 났어. 죽은 척 하자.


  메트로맨은 당장 할에게서 도시를 구해달라는 두 사람의 부탁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그는 대신 메가마인드에게 이런 말을 남긴다.

  

메트로맨 :  난 끝났어. 근데 꼬마 친구 양에는 늘 음이 있어.
악이 있으면 선이 나타나게 되어 있지. 아주 오랜 시간 끝에 날 찾았어.
이제는 네 차례야. 널 찾아봐.

    

  메가마인드는 메트로맨의 말처럼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한다. 록산을 구하기 위해 '영웅'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록산의 한마디가 그를 '영웅'의 길로 이끌었다.


록산 : 절대 포기하지 마. 내가 아는 메가마인드는
실패 같은 건 무서워하지 않았어.
상대가 너무 강해 승산이 제로라고 해도 도전했어.
그게 너의 최고의 장점이야.
지금 당장 예전의 네 모습으로 돌아와 줘.
도시는 네가 필요해. 나도 네가 필요해.


  메가마인드는 우여곡절 끝에 할을 물리치고 도시의 새로운 '영웅'이 된다. 선이 사라진 자리에 '악'으로 대표되던 메가마인드가 그 자리를 메운 것이다.


  메가마인드, 이제 그는 도시의 '영웅'으로 거듭난다. 자신의 '선택'으로.



메가마인드(2010) 공식 포스터

- 메가마인드, 톰 맥그라스, 드림웍스, 2010년 작품

- 영웅은 만들어진다, 스스로의 '선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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