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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모린 Aug 01. 2018

벗어나기_죽은 시인의 사회

나를 둘러싼 '벽' 너머로 뛰어넘기


  교장 : 100년 전, 1859년 전에도 41명의 소년들이 여기 앉아서 학기를 시작하는 데 있어서 여러분을 반기는 똑같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4개의 교훈은 무엇입니까?
학생들 : 전통, 명예, 규율, 최고


  영화는 명문 학교의 입학식에서 시작한다. 아이들의 입학을 반기는 자리에서 학교가 강조하는 것은 ‘아이비리그에 진출한 아이의 수’와 학교의 ‘정통성’이다. 학교는 통계를 통해 부모의 믿음을 이끌어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의 자녀가 아이비리그에 가게 될 것이라는 환상. 환상은 시스템이 정한 ‘규율’에 힘을 실었다.




  존 키팅 선생님을 후임으로 소개합니다. 키팅 선생님은 우리 학교의 우수한 졸업생이었고 지난 수년간 런던의 명문 체스터 고교에서 교편을 잡으신 분입니다.


  시스템은 키팅을 무리 없이 받아들였다. 명문 학교를 졸업한 선배이자 교사. 그들이 원한 것은 키팅이 살아있는 통계의 표본으로 활동하는 것이었다.



  키팅은 첫 수업부터 교실을 벗어났다. 그리고는 당황한 아이들에게 월트 휘트먼의 구절을 소개한다. 오, 캡틴 마이 캡틴. 그는 대담하게 자신을 부를 때 ‘오, 캡틴 마이 캡틴’이라고 불러도 좋다고 전한다. 그의 말에 경직되었던 아이들 사이에 웃음이 피어오른다.


시간이 있을 때 장미 봉우리를 거두라. 라틴어로 표현하자면 카르페디엠이지.


  그는 아이들에게 찬송가의 한 구절을 소개한다. 카르페디엠, 그것은 현재를 즐기라는 마법 같은 한마디였다. 그는 아이들에게 시인이 ‘왜’ 이런 구절을 사용했는지묻는다. 그의 질문에 장난으로 응수하는 아이들 앞에 그는 불현듯 정답을 꺼내 놓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반드시 죽기 때문이지.


  수업을 마친 아이들은 키팅의 수업에 의문을 품는다. 특별했지만 알 수 없었던 수업. 카르페디엠. 현재를 즐기라는 한 마디가 마법처럼 아이들에게 퍼져나간다. 누구도 아이들에게 ‘죽음’과 ‘현재’ 사이의 간극을 가르쳐 준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카르페디엠. 키팅의 한마디는 그가 생각하는 교육의 시작이자 ‘중심’이었다.



  교실의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두꺼운 책을 책상 위에 올려둔다. 반복되는 수업 속에서 과목에 맞게 책을 들추고 바라볼 뿐이다. 그들은 학교와 부모가 강조하는 아이비리그에 가기 위해 책을 달달 외우고 스터디를 함께한다.


  책상 위의 아이들은 복사하고 붙여 넣은 것처럼 같은 표정에 다를 바 없는 하루를 보낸다. 그런 아이들의 머릿속에는 어쩌면 이런 질문이 반복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인가.


  시스템은 아이들에게 정해진 ‘왜’를 전한다. 아이비리그에 진학하는 것. 그것은 곧 명문 학교의 졸업생들에게 정해진 미래다. 이들의 진학은 다음 아이들을 불러 모을 통계가 될 것이며 학부모의 만족도를 끌어올릴 것이다.


  시스템에게 개인의 물음은 중요하지 않다. 수치에 더해질 한 명 이니까.


  키팅은 아이들에게 정해진 ‘왜’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가 집중하는 것은 아이들 하나하나의 ‘개인’을 깨우는 일이다. 시라는 예술을 분석해놓은 어느 서문 그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는 아이들에게 교과서 속의 생각을 쓰레기라고 선언한다. 그리고는 문제의 서장을 찢어버려도 좋다고 전한다.


  ‘시를 측정하는 일’은 불가능한 것이니까.


죽은 시인의 사회 무비 스틸컷


  그는 교단 아래로 내려와 아이들과 시선을 마주한다. 권위를 내세우기보다 좀 더 가까이 그들과 호흡한다. 그리고는 아이들에게 의 진정한 의미를 전한다.


 의학 법률 경제 기술은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해.
하지만 시와 미,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인 거야.


  키팅은 아이들 하나하나를 ‘한 편의 시’로 바라본다. 삶의 목적을 가져야 할 개인. 그에게 아이들은 교탁 위에서 내려다보는 존재가 아닌 시선을 마주 볼 수 있는 한 사람이었다.


죽은 시인의 사회 무비 스틸컷


  

  아이들에게는 각각의 에 박힌 환경이 펼쳐져 있다. 토드는 뛰어났던 형의 성적으로 인해 주변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다. 어른들의 시선에는 토드가 아닌 의 그림자가 짙다. 덕분에 그들의 입에서는 형처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것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 무비 스틸컷


  토드가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가에 대해 그들은 궁금해하지 않는다. 토드의 부모조차도 생일 선물로 매번 공부를 더 잘하라는 의미의 선물을 던져줄 뿐이다. 토드가 좋아하는 것이 아닌 그들이 ‘바라는 것’이 담긴 선물은 최악이었다.


  닐은 아이들 중에서도 자유로워 보였다. 하지만 닐 역시 아버지의 소망에 따라 삶을 강요받는다. 닐에게 ‘해야만 한다’를 강요하는 아버지는 닐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지 않는다.


  닐이 하고 싶은 일을 털어놓아도 아버지는 당연하게 닐의 소망을 좌절시킨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닐의 ‘현재’보다는 자신의 권위를 물려받을 ‘미래’에 있다.


  아이들의 ‘틀’은 결국 어른이 만든 것이다. 그들의 욕심에 따라 아이들을 완성된 틀 안에 가둔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들이 세워놓은 선 너머로 아이들이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거슬리지 않도록 말을 잘 듣는 아이로 만드는 것이다.



  키팅의 수업으로 아이들은 변해간다. 어른들이 멋대로 정해놓은 틀을 벗어나 자신을 ‘중심’에 둔다. 현재를 즐겨라, 카르페디엠. 아이들은 현재를 만들어가는 것이 ‘스스로’의 선택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토드는 자신의 마음속에 가둬두었던 단어를 꺼내기 시작한다. 단어는 키팅의 도움으로 온전한 하나의 로 완성된다. 토드는 비로소 자신이 좋아하는 을 찾은 것이다. 닐은 자신이 목표로 삼았던 연기에 도전한다. 녹스는 처음으로 사랑에 빠지며 그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움직인다.



죽은 시인의 사회 무비 스틸컷


  아이들은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시를 읽고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다. 키팅이 준 영향으로 아이들은 ‘예술’을 ‘자신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 혹은 공부를 위해 조직한 것이 아닌 오로지 아이들의 선택으로 만들어진 모임.


   아이들은 그렇게 틀을 벗어났다.

  문제는 어른들이었다. 그들은 변화하는 아이들을 보며 두려워한다. 아이들이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게 된 이유를 키팅에게서 찾는다.


  닐의 죽음과 아이들의 선을 벗어난 행동이 모두 키팅에게 있다는 것이다. 닐의 죽음은 키팅이 아닌 다름 아닌 그의 아버지의 영향이었는데도 말이다. 결국 학교에서는 모든 죄를 키팅에게 뒤집어씌우고 학교를 떠나라고 통보한다. 어른들은 키팅에게 말한다.   


 모든 것은 당신 때문이라고. 그냥 내버려 두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라고.

 

  예술은 사람의 이야기다. 사람의 일생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에게는 질문이 떠오른다. 그 질문은 곧 자신에게 돌아온다. 현재의 나. 주변을 바라보던 ‘나’의 시선. 과연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키팅을 통해 예술을 접하게 된 아이들에게는 그 질문들이 맴돌았을 것이다.


  아이들은 키팅을 통해 질문을 찾아가는 법을 배웠다.


죽은 시인의 사회 무비 스틸컷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키팅은 짐을 찾기 위해 교실로 향한다. 아이들은 학교를 떠나는 키팅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자 한다. 키팅이 아이들에게 책상 위의 세상을 가르쳐줬던 것처럼.


캡틴, 오 나의 캡틴


  캡틴. 그것은 키팅이 아이들에게 들려준 시의 한 구절이었다. 키팅은 한순간 깨달았을 것이다. 아이들이 자신과 바로 세운 그 가치를 지켜나갈 것는 사실을 말이다. 시스템의 중심인 교장 앞에서도 아이들은 굴하지 않았다.


  이미 아이들은 온전한 자신을 되찾았으니 말이다.  


- 죽은 시인의 사회, 감독 피터 위어, 각본 톰 슐만

- 책상 위에서 바라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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