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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모린 Oct 15. 2021

저는 가끔 영화로 글을 씁니다

나를 마주하며

  글을 쓴다는 말을 하면 자주 돌아오는 질문이 있었다. 어떤 글을 쓰는 작가인가요? 명확하지 않아서 나는 브런치에 썼던 글을 소개하며 둘러댔다. 창작도 하고 비평도 좀 하고 브런치에 연재도 합니다. 브런치에 연재를 한다는 이야기에 사람들의 행동은 둘로 나뉘었다. 브런치를 모르는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피했고 아는 사람에게는 계정의 이름을 전하는 정도. 계정에 직접 들어오는 사람들은 그동안 쓴 글의 스크롤을 내리며 자신에게 익숙한 제목을 찾곤 했다. 제가 본 영화네요. 알고 있어서 쉽게 글을 읽던 사람들은 종종 멈춰 서며 다시 되묻곤 했다. 이 영화를 보고 이런 생각을 하셨나요?


  나에게 영화 비평은 지나칠 수 없는 영화들에 대한 기록이었다. 영화를 다 본 후에도 머릿속에서 반복되는 장면들과 마주하다가 써 내려가는 글. 사적인 글이 쌓였던 것뿐인데 그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새로운 자극을 줄 수 있다니. 나 역시 그 영향에 사로잡혀 더 많은 글에 도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나는 어떤 글이든 계속 쓸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그렇게 시간이 하염없이 쌓여갔다. 29살. 글로 돈을 버는 일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시작한 다른 일이 오히려 내 시간의 전부를 채워갔다. 최선을 다해서 하루를 보냈고 지쳐서 잠이 드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생각보다 많지 않은 시간과 코로나를 이유로 버거워지는 업무의 강도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소모되어가는 나. 스트레스가 쌓이고 나니 겨우 글을 쓰려고 마음먹어도 내 글에는 힘들다는 말만 반복될 뿐이었다. 생각도 감정도 모두 분노 하나가 삼켜가고 있었다. 


  머리를 식히기 위해 떠났던 여행에서 나는 회사를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여행에서 조차도 나는 회사의 문제를 떠올리며 열을 올리고 있었으니까. 휴식도 휴식일 수 없는 상황에 놓여버린 것이었다. 걸리는 일이 투성이었지만 나는 나를 위해 결정을 내렸다. 다시 글을 쓰는 나를 마주 하기로.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나를 마주하는 시간에 도움을 준 것은 내가 쓴 글이었다. 어떤 글이든 내가 있고 그 순간의 생각과 감정이 쌓여 있다. 내버려 둔 시간만큼 쌓여만 있던 글들을 이제는 기회를 달아 비슷한 시간을 소모하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졌다. 시간을 소모하기만 하던 나와는 다른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29살의 백수가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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