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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모린 Aug 07. 2018

조각이 '나'를 찾을 때까지_타인의 삶

자신을 되찾는 법


  슈타지. 당대의 동독은 ‘국가’가 ‘개인’을 지배하는 사회였다. 슈타지의 요원인 주인공 비즐러는 철저히 ‘개인’을 도청하고 관찰했다. 비즐러는 ‘시스템’으로서 그들을 감시했다. 감정을 배제하며 자신의 주관을 철저히 ‘국가’에게 유리하게.


  그의 모습은 살아있는 로봇 같았다. 동독에서 자유를 외치는 이들을 잡기 위해서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는 시스템 속에서 ‘유능한 조각’이었다.



타인의 삶 무비 스틸컷 크리스타(좌), 드라이만(우)


  비즐러는 여느 때처럼 ‘도청 임무’를 맡는다. 드라이만이라는 어떤 예술가. 그가 부재한 사이 도청 장치는 방 안 곳곳에 자리 잡았다. 심지어 수상한 광경을 목격한 ‘이웃’마저 포섭했다.


슈타지의 시스템이 어떻게 유지되는지 보여주는 한 순간이었다.


  ‘공포’와 ‘감시’는 친분을 나누던 이웃마저 또 다른 감시 요원으로 만들었다.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는 참혹함. 비즐러는 그 참혹함에 익숙해진 사람이었다. 그런 비즐러에게 드라이만의 삶은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이었다.


  예술을 즐기며 탐독하고 스스로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삶. 철저한 ‘타인’이어야 하는 비즐러는 조금씩 드라이만에게 물들어간다. 만나지 않아도 그의 삶을 ‘듣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타인의 삶 무비 스틸컷, 비즐러



  영화는 감시하는 비즐러와 감시당하는 드라이만의 삶을 번갈아 비춘다. 두 사람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 비즐러는 음침한 방에 앉아 하루 종일 드라이만의 뒤를 쫓고 도청하지만, 드라이만은 자신의 ‘생각’에 의해 움직인다.


  드라이만은 자신이 느낀 생각 예술로 표현하는 개인이다. 그는 자신의 시선으로 느낀 불합리한 동독 사회를 외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예술을 통해 통제될 수 없는 '나'를 지켰다.


  자신의 ‘생각’을 누르는 비즐러와는 정반대의 삶이다. 그런 비즐러가 ‘도청’을 반복하며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은사를 잃고 슬픔 속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드라이만의 모습에서 비즐러는 눈물을 흘리고 만다. 


비즐러의 ‘감정’이 드러나는 순간부터
영화는 드라이만을 감시하는 비즐러의 ‘시선’에서
비즐러라는 ‘개인’에 주목한다.




  비즐러는 그들의 사랑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며 브루노 장관에게 크리스타가 성로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라이만에게 알린다. 괴로워하는 크리스타의 앞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고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정부를 향한 비판 글을 작성하는 드라이만의 행동을 눈감아 준다. 


  정기적으로 보고하던 보고서에 허위 정보를 기록하면서까지 드라이만을 보호다. 드라이만의 행동이 ‘시스템을 거스르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는 ‘감청’만을 반복하던 ‘타인’에서 ‘개인’의 힘으로 드라이만을 돕는 길로 나아갔다. 드라이만이 비춘 ‘타인의 삶’이 비즐러 ‘개인’의 삶을 일깨운 것이다.

  왜 하필 ‘드라이만’이었을까. 영화의 도입부에서 어떤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던 ‘시스템의 조각’이 왜 ‘자신’을 되찾은 것일까.


그 이유는 드라이만을 통해 목격한 ‘예술’ 그 자체의 힘이다.


  비즐러는 드라이만을 통해 예술을 창작하는 모습, 예술에 몰두하는 그의 삶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찰나의 ‘예술’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예술은 드라이만을 감시해야만 하는 ‘타인’의 영역에 두지 않고 분리시켰다. 심지어 비즐러 개인의 ‘삶’까지.

  결론에 이르러 드라이만의 계획은 성공한다. 문제는 그 행위를 숨기는 것이었다. 비즐러는 의심을 받아가면서까지 드라이만을 돕고자 한다.

  그러나 살기 위해 ‘슈타지’가 되기로 결심한 크리스타가 그의 앞에 서있었다.


  다행히 비즐러가 한 발 앞선 탓에 증거를 숨길 수 있었지만 문제는 크리스타였다. 그녀는 비즐러가 증거를 숨겼다는 사실을 모른 채 차도로 뛰어들어 죽음을 맞이한다.


  비즐러는 자신이 ‘슈타지’라는 사실을 잊은 채 크리스타의 죽음을 슬퍼한다.


  그 광경을 다른 ‘슈타지’가 ‘감시’할 것이라는 사실조차 잊은 채로 말이다. 그는 이제 온전한 ‘개인’이 되었다. 그렇게 비즐러는 슈타지에서 좌천된다.



타인의 삶 무비 스틸컷, 비즐러



  영화는 통일된 독일의 모습을 짧게 비춘다. 대중에게 드러난 ‘슈타지’ 시스템. 개인을 철저하게 지배했던 무한의 고리가 끊어진 것이다. ‘슈타지’가 감시했던 인물들이 드러나면서 드라이만 역시 비즐러의 보고서를 접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드라이만은 자신을 감시하던 ‘슈타지’가 자신의 계획을 돕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후 영화는 편지를 배달하는 비즐러의 모습을 비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이는 다름 아닌 드라이만이다.

 

  드라이만은 비즐러에게 고마움을 담아 한 권의 책을 완성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비즐러가 드라이만의 ‘책’을 사는 것이다. 점원은 비즐러에게 책을 포장할 것이냐고 묻는다. 그의 말에 비즐러는 대답한다.


아니요, 저를 위한 책입니다.

  타인을 통하지 않아도 이제 그는 온전한 ‘삶’을 살아간다.                  


 


- 타인의 삶, 감독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 타인 너머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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