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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모린 May 29. 2019

끝이 없는 '그날'에 대하여
_ 김군

기억은 끝나지 않고 되풀이된다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나요?  


  할머니에게 난생처음 그런 질문을 했다. 할머니의 입가에서는 믿을 수 없는 말들이 흘러나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처참히 죽어갔던 그 현장이 뉴스에서는 '폭도'들이 저지른 행위로 보도되었다는 것. 광주에서의 일을 서울에 살던 할머니는 좀처럼 들을 수 없었다는 것. 나에게 '그날'의 광주는 독재라는 단어의 무게감을 깨닫게 해 준 '특별한 기억'이었다.


  

  독재란 무엇인가. 독재 아래 개인은 철저히 무너진다. 광주의 '그날'은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어느 누군가의 삶을 철저히 짓밟은 날이었다. 진실을 파헤칠 언론도 국민을 지켜야 할 군대도 독재 아래 그저 허울만 남아 있었다. 


  비극이라는 단어로 헤아릴 수 없는 그날의 '기억'. 그날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안고 살아갈 '현재'.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깊이를 영화는 '김군'을 따라 비춘다. 누군가의 왜곡 속에서 끝끝내 소식을 듣지 못했던 '김군'에 대하여.





  광수. '김군' 역시 그리 불렸다. 사진 한 장이 만들어낸 왜곡된 이름. 누군가는 독재의 잔재를 덮기 위해 새로운 우물을 팠다. '그날'을 증명하는 사진 속에서 그들은 무분별하게 사람들을 가려냈다. 광수라는 이름을 붙여 그들을 '북한에서 내려온' 사람들이라 칭했다.



그렇다면 광수'들'은 도대체 누구였는가?



  영화는 '광수'라 지목된 사람들을 비추기 시작한다. 그들은 왜곡하는 이들이 그토록 주장했던 북한의 공작 부대가 아닌 어느 평범한 '사람'들. 그날 광주에 있었던 이웃이었다. 누군가는 무장을 한 채 맞서 싸웠고 어떤 이들은 그들을 위한 식량을 나누어 주었다. 



  좀처럼 찾을 수 없던 '김군'은 광수라 불렸던 사람들의 입가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식량을 나누어주고 이야기를 나누던 어느 남자. 넝마주이였던 사내. 함께 트럭에 올라타 싸웠지만 끝끝내 독재의 현실 아래 진짜 이름조차 묻지 못했던. 묻지 않았던 기억들. 


  

  광수에 광수를 건너 영화는 '김군'에 조금씩 다가선다. 



  좀처럼 떠나지 않는 기억을 되살리며 그들은 '김군'을 기억했다. 기억은 흐릿해지면서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흐릿해지다가도 그들에게는 불현듯 그날의 기억이 꿈으로 되살아났을 것이다. 누군가의 왜곡이 반복될 때마다. 소식이 끊긴 어느 '김군'의 얼굴이 스칠 때마다.



  영화는 끝끝내 김군을 찾아냈다. 증언과 증언이 마주한 '진실'속에서 김군은 그제야 모습을 드러냈다. 청년 '김군'은 5월의 어느 날, 계엄군에게 총살되었다.




김군은 제1 광수가 아닌 계엄군에게 총살된
어느 시민군, 우리의 이웃, 그리고 희생자였다.

   

  영화는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이들을 비춘다. 훗날을 기약하며 서로에 대해 묻지 않았던 시민군 동료들. 살아남는다면 꼭 다시 한번 만나고 싶다는 그들의 소망은 이제야 현실이 되었다. 그들과 함께했던 '김군'을 통해서.



김군을 마주한 이들은 그렇게 5월을 건너 서로를 마주했다.

 



- 김군(2018), 다큐멘터리, 강상우 감독

- 여전히 드러나지 못한 그날의 '진실'과 '기억의 조각'.

- 브런치 무비 패스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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