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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모린 Jun 07. 2019

마침내 그녀는 슬픔에 발을 담갔다 _ 하나레이 베이

바다를 건너 드디어 나를 만났다


  남자(타카시)는 물살을 가르며 좀 더 깊은 바다로 들어섰다. 더 높은 파도를 향해. 유난히 청량한 바다는 그를 감싸려는 것처럼 출렁이고 또 출렁였다. 남자에게 두려움은 없었다. 다를 것 없는 하루. 서핑하기 좋은 파도. 그의 입가에는 만족의 미소가 흘러넘쳤다.


  그러나 그 모습이 그의 마지막이 된다.

  

  갑작스러운 전화, 달려간 그곳에서 그녀(사치)는 그(타카시)를 마주한다. 다리를 잃은 아들, 외발이 되어버린 서퍼는 바다로 나아갈 수 없게 되었다. 영영 그녀의 곁을 떠나버렸다.


  그녀는 울음을 삼켜낸다. 아들을 잃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려는 사람처럼 그녀는 담담하게 아들의 제사를 준비한다. 유골함을 사고 아들의 짐을 담아내는 순간까지도 그녀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저 그녀의 마음을 대변하는 수도꼭지의 물줄기가 세차게 흘러나올 뿐이다. 영화는 그녀의 마음처럼 적막하게 그저 흘러간다. 흩어지는 '소리'들을 끌어안은 채로.


  그녀는 그렇게 섬을 떠날 생각이었다. 아들을 앗아간 섬. 하나레이를 그녀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른거리는 외발이 된 아들의 모습. 스치는 기억들이 그녀를 좀처럼 놓아주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떠나려던 공항에서 우연히 마주친 서퍼의 모습을 보고는 다시 섬으로 돌아온다.


10년, 그녀는 그렇게 아들을 앗아간 하나레이에 발이 묶여버린다.   



  그녀는 매해 같은 장소에서 하나레이를 바라본다. 아들의 모습과 똑 닮은 어느 서퍼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덧없이 책의 다음 페이지를 넘기며. 안쓰럽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덤덤히 털어놓는다. 벌써 10년이 세월이 흘러갔다고 자신은 이제 괜찮다고.  


 

  그녀는 자신이 괜찮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아들의 손도장을 거부한다. 10년째 그녀를 마주할 때마다 꺼내는 한마디를 그녀는 익숙하게 털어낸다. 


정말로 그녀는 극복한 것일까?


  그런 그녀의 앞에 죽은 아들과 비슷한 또래의 두 청년이 나타난다. 섬에서 처음 마주한 두 청년에게 그녀는 아들이 머물었던 숙소를 소개해주고 정을 나눈다. 아들에게 만들어주었던 샌드위치를 주고 그토록 이해할 수 없었던 서핑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외발 서퍼가 있었어요.


   청년은 일본으로 떠나기 전 그녀에게 털어놓는다. 두 청년을 만나고 조금씩 흔들리던 그녀의 세계는 그 한마디에 무너진다. 그녀는 미친 사람처럼 외발 서퍼를 찾기 시작한다. 상어에게 다리를 잃었던 아들. 어쩌면이라는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집어삼킨다. 섬을 돌고 또 돌아도 외발 서퍼에 대해 아는 이들을 만나지 못한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처럼 소중한 사람을 잃었던 이들과 마주한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아들을 마주하기 시작한다. 그녀가 애써 외면하고 있던 그가 그곳에 있었다. 서핑보드를 선물 받고 즐거워하던 모습. 죽은 남편의 카세트 플레이어를 찾아서 듣던 모습. 



  그녀가 바다에 발을 담근 뒤에야 영화는 외발 서퍼의 모습을 비춘다. 그녀의 눈앞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관객에게만 드러내는 장면. 바라보기만 했던 그녀를 튕겨내는 것만 같다던 하나레이에 발을 담근 뒤에야 그녀가 간절히 원했던 외발 서퍼가 그녀의 뒤에 서는 것이다.


  거절하고 거절했던 아들의 손도장을 받아 들고 그녀는 토해내듯 눈물을 쏟아낸다. 그녀는 아팠고 슬펐으며 괴로웠다. 소중한 사람을 향한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 것이었다. 싫어했지만 사랑했던 아들. 갑작스러운 아들의 죽음을 그녀는 그제야 마주했다. 


그녀와 똑 닮은 아들의 손이 그녀가 묻어두었던 '감정'을 풀어버렸다.


  그녀는 아들의 짐을 풀고 카세트 플레이어를 듣기 시작한다. 아들이 좋아했던 노래. 흔적을 받아들이고 기억하는 것으로 그녀의 삶은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한다. 멈춰버렸던 시간이 그제야 흘러간다. 


  영화는 슬픔을 마주한 그녀의 '현재'를 비추며 막을 내린다. 우연히 재회한 청년에게 그녀는 아들의 사진부터 건넨다. 아들의 사진을 지니고 있지 않은 그녀를 타박했던 청년에게 그녀는 이제 '아들'을 마주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마침내 그녀는 슬픔에 발을 담갔다.
'기억하는 것'으로 그녀는 현재로 나아갔다. 





- 하나레이 베이(2018), 마츠나가 다이시, 원작 무라카미 하루키 '하나레이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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