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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모린 Jun 18. 2019

찰나의 천국에서_갤버스턴

천국은 가까우면서도 가장 멀었다


  남자(로이)의 얼굴에는 싸늘한 미소가 스쳤다. 달갑지 않은 현실이 그의 앞에 당연한 것처럼 펼쳐졌다. 의사의 시한부 선고에 이어 그의 연인은 그를 떠나 사장의 연인이 된다. 연이은 불행 앞에서 그는 흔들리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표정 하나 드러내지 않는다. 마치 모든 일을 받아들인 사람처럼.



문제는 그의 불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장의 의뢰로 향한 집에서 그는 깨닫는다. 사장의 진정한 의뢰는 바로 '그(로이)를 죽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총격을 피해 달리고 또 달린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상대를 죽인다.  




  총격 끝에 그는 묶여 있는 한 여자(록키)를 마주한다. 두려움에 사로 잡힌 눈동자. 그는 그녀를 지나치지 못한다. 결국 그는 그녀와 함께 지옥 같았던 현장을 빠져나온다.



  두 사람은 지옥을 빠져나왔으나 여전히 그 현실 안에 놓여 있었다. 당장 암살 실패를 보고 받은 사장은 그들의 뒤를 쫓을 것이 분명했다. 고민 끝에 그들은 사장을 피해 떠나기로 한다.



  두 사람은 함께 했지만 여전히 낯선 사람들이었다. 버림받지 않기 위해 그의 시선을 살피는 그녀와 쫓기고 있다는 불안감에 흔들리는 그. 영화는 이제 두 사람의 관계에 시선을 맞춘다. 여정을 이어갈수록 그들의 잿빛 현실에도 조금씩 빛이 스며든다. 어두침침했던 화면은 갤버스턴으로 향할수록 그들의 관계처럼 빛으로 물든다.




  꿈조차 꿀 수 없었던 바닷가. 난생처음 바닷가에 발을 담근 티파니와 그런 동생을 품에 안은 그녀. 죽음을 앞두었다는 허무함이 가득했던 그에게 소중한 존재들이 자리를 잡는다. 갤버스턴은 지옥에서 살아낸 그들을 품는다. 언니를 따라 도망친 티파니도, 지독한 삶에서 살아남은 그녀도, 그저 삶을 흘려보냈던 그에게도.



 공평한 천국은 그들이 온전히
서로를 마주할 수 있는 추억을 선사한다.

 

  

  자신의 삶이 이미 망해버렸다는 그녀에게 그는 기회를 주고자 한다. 그녀 역시 다른 삶을 살아낼 수 있다고. 그녀를 뭉개버린 지옥에서 일어설 수 있다고. 숨겨진 진실을 토해내듯 털어놓는 그녀에게 그는 진심을 다해 마음을 전한다.



결국 그는 그녀의 '새로운 삶'을 선물하기 위해 위험한 선택에 뛰어든다.



  영화는 천국의 끝자락에 도착한 두 사람을 다시 밑바닥으로 끌어내린다.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하게 된 두 사람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그토록 그가 피하고자 했던 '현실'이다. 그녀를 위해 사장을 협박했던 것이 독이 되어, 그의 지난 '삶'이 행복에 물든 그의 삶을 다시 잿빛으로 덮어버린다.



  결국 새로운 삶은 그녀에게 주어지지 못했다.



  영화는 10년 후를 비춘다. 티파니를 지키기 위해 침묵을 선택한 그는 여전히 현실을 살아간다. 폭풍이 곧 삼켜버릴 그 집에서 세월을 가늠한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이라 여겼던 그에게는 삶이 놓여 버렸다. 새로운 삶을 주고자 했던 그녀는 잿빛이 되어 그의 곁을 떠났다.



  다시 삶을 놓아버린 그의 앞에 훌쩍 자란 티파니가 모습을 드러낸다. 왜 자신을 버려야 했냐는 그녀의 말에 그는 진실을 털어놓는다. 버려진 아이가 아니라고. 있는 힘을 다해 지켜낸 그녀의 아이(티파니)의 삶은 빛이 났다. 바닷가를 거닐던 그녀(록키)처럼.



  그는 태풍이 몰아치는 그 집에서 그녀를 떠올린다. 살아낸 삶 속에서 반복되었을 후회, 잊을 수 없던 그녀의 모습. 그녀의 아이에게 진실을 전하는 것으로 그는 마지막으로 품었던 희망을 확인했을 것이다.



그렇게 찰나의 천국이 폭풍 속에서 그를 감싸 안았다.




- 갤버스턴(2018), 멜라니 로랑, 벤 포스터, 엘르 패닝

- 브런치 무비 패스로 영화 <갤버스턴>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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