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모린 Dec 11. 2019

익숙함에 무뎌지지 않도록 _영화로운 나날

일상적인 어느 날의 갑자기에 대해

  영화는 오늘이 여느 때와 같을 것이라 생각했다. 다툼은 종종 일어났으니까. 그는 아현의 화가 누그러질 때지만 밖에서 시간을 보내면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굳게 닫힌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지금쯤 문을 열고 화해를 해야 하는데. 모든 게 틀어져 버렸다


 

  다툼의 발단은 모임에서 무심코 내뱉은 영화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아현의 서운함은 영화의 무심한 반응에 점차 부풀어 올랐다. 서로였기에 지나쳤던 불만들이 두 사람의 입가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공과금 한 번 내지 않은 그에게. 뒤집어진 양말을 얄밉게 바구니에 밀어 넣는 그에게. 아현은 결국 진심을 털어놓는다. 


넌 네 연기가 막히면 네 삶도 막혀?
연기에 대해 고민한 만큼
나에 대해 한번이라도 고민한 적 있어?


  이후 영화는 '영화'의 '오늘'을 찬찬히 비춘다아현과의 다툼으로 삐그덕 거리던 그의 하루는 우연과 우연이 겹쳐 '기묘한 어느 날'로 번져간다. 



  선배 석호는 늘 그랬던 것처럼 영화에게 곤란한 부탁을 한다. 자신 대신 그의 여자 친구에게 '이별 통보'를 해달라는 것. 그는 영화에게 자신이 되어줄 것을 부탁한다. 연기를 하는 것처럼. 영화는 결국 석호의 여자 친구 앞에 선다. 불안하게 대화를 이어가던 영화는 불현듯 '연기'를 시작한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데 네가 느끼지 못하면 그게 사랑일까?


  석호가 된 것처럼, 아니 실은 '아현'을 향했을 진심이 그의 입가에서 흘러나온다. 덕분에 석호의 여자 친구는 '영화'가 '석호를 연기'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영화는 우연한 만남을 이어간다. 현실적인 이야기 틈으로 환상적인 순간들이 틈을 만든다. 누나 혜옥을 따라간 장례식장에서 죽은 할머니의 영혼과 마주한다거나 무명 배우인 그를 '천만 배우'라 치켜세우는 감독과 배우를 만나기도 한다. 휩쓸리듯 쏟아지는 만남 속에서 그는 한 가지 본질을 깨닫게 된다. 


깊이와 무게를 혼동하지 말고 사세요!라고
저랑 연극할 때 했던 대사 기억나요?
저 그 말 듣고 그렇게 하게 되었어요.

  

  익숙한 나머지 놓쳐버린 것들. 아현과의 다툼 속에서 그는 '그녀'를 마주하지 못했다. 그녀와 대화 속에서 본질을 놓친 채 자신을 방어하기 급급했다. 별자리의 본질을 중요하게 여겼던 그였는데. 그는 중요한 '오늘'을 잊어버렸다.



  하루를 떠돌던 영화는 끝끝내 아현과 마주한다. 그는 익숙한 나머지 지나쳤던 것들을 떠올린다. 그녀에게 진심을 전하고 함께 미소 짓는다. 소소한 어느 날. 그는 뒤집었던 양말을 가지런히 벗어 바구니에 담아둔다. 오늘의 하루가 어땠냐는 아현의 질문에 그는 답한다.  


나는 조금 확장된 것 같아. 별자리처럼.


- 영화로운 나날, 이상덕 감독, 조현철, 김아현 주연

- 당연해서, 지나칠 뻔했다.

이전 10화 찰나의 천국에서_갤버스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