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우울과 친숙(?)한 나라다. OECD자료 기준 모든 연령층에서 자살률이 전 세계 1위인 나라이기도하고 우울증 환자 수가 100만 명을 넘었다(2024). 보통은 과도한 경쟁과 불안한 미래를 야기하는 불완전한 사회 보장 시스템을 원인으로 지적하기도 하지만 우리보다 사회 보장 제도가 상대적으로 잘 되어 있는 나라의 유병률이 높은 경우도 있고 우리와 비슷한 사회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유병률이 우리보다 한참 낮은 경우도 있다. 때문에 우리는 이 심각한 문제에 대한 다른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는 사회적 활동을 하면서 늘 가면을 쓴다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그 모습은 나와 맞지 않는다.'라는 고민을 자주 가지곤 한다. 이 생각은 '진짜 나'와 '가짜 나'가 존재한다는 이분법을 기반으로 성립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 사고 구조에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사람들은 가짜 자아로 활동이 많아지면 진짜 자아가 손상을 입는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고 진짜 자아의 상실이나 변형에 또 다른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과연 우리의 자아는 가짜와 진짜로 나눌 수 있을까? 조지 허버트 미드라는 미국의 사회학자는 자아를 "I"와 "Me"로 나누었다. Me는 일반화된 타자(Generalized Other)를 내재한 것으로 쉽게 말해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기대가 내 안에 들어와 형성된 자아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남의 시선을 신경 쓴다는 개념은 아니다. 사회적 규범, 기대 등을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받아들이며 구성하게 된 자아를 뜻한다. I는 앞선 Me에 대응해 '즉각적이고 창발적'인 반응이다. '공공장소니까 조용히 해야지.'라고 생각(Me)할 때 '싫어! 내 마음대로 떠들고 싶어!'라거나 '그래, 그렇게 해야지.'라고 하는 반응이 때에 따라 즉각적으로, 그러면서 예측 불가능하게 발생해 나오게 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이 설명에서도 보듯 I는 필연적으로 Me에 대응해서 발생한다. 즉 분리된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빙 고프만이라는 또 다른 캐나다와 미국 사회학자는 '자아 연출의 사회학 (The Presentation of Self in Everyday Life, 1959)'이라는 저서에서 사회적 상호작용을 연극에 비유하며 설명했다. 이곳에는 전면 무대(Front Stage)와 후면 무대(Back Stage)가 존재하며 전면 무대는 우리가 관객(타인)을 만나는 장소이며 우리는 적절한 가면을 쓴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후면 무대에서 우리는 관객의 시선에서 벗어나 가면을 벗고 긴장을 풀 수 있지만 다음 연극을 준비하는 등 전면 무대와 분리되지 않은 일치된 공간이라는 설명을 한다.
이 두 설명을 비추어 본다면 우리가 느끼는 '가짜 나'의 존재도 결국 '진짜 나'와 연결되거나 그에 속한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이 둘을 분리해서 인지해 왔고 그렇게 해가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 '가짜 나'를 스스로 위선이라 여기거나, 자신이 규정한 '이상적인 진짜 나'와 거리가 멀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할수록 둘 사이의 괴리를 좁힐 방법은 없다. 그리고 그 괴리는 우리를 힘들게 만든다.
한국 사람들은 일상에서 자신의 행위를 서술하거나 설명하기보다는 자신이 어떠한 사람이라는 규정을 짓는 표현을 자주 한다. 그리고 이것을 설명하고 입증하려고 한다. 이를 아주 간편하게 해 주는 도구가 우리의 눈에 들어온 건 몇 년 전인데 이게 바로 MBTI다. 이제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상대의 MBTI결과를 물으며 대화를 시작하고 상대와 자신을 무의식적 혹은 의식적으로 규정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어떤 이들은 주기적으로 검사를 해 자신의 테스트 결과가 바뀐 것을 근거로 자신을 새롭게 규정하거나 이를 본인을 설명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러한 규정은 진짜 나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폭을 제한한다. 즉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규정이 나를 알지 못하게 만드는 장치가 된다. 진짜 나가 아닌 것을 나라고 규정하니 그 사이에 불안정함이 생기고 그 규정과 맞지 않은 나를 인정하지 못하거나 이상하다고 여긴다. 그리고 이런 규정에 의지할수록 앞서도 말한 가짜 나라는 이미지와 멀어진다. 이 두 가지 잘못된 인식은 지속적으로 자기부정을 낳아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정신적인 힘듦을 야기하며 이 때문에 우리는 우울감을 느낄 수 있다.
사회자 : '인간 짐 캐리'와 '공연자 짐 캐리' 중 어느 쪽이 더 편안하신가요?
아니면 두 가지가 상호 배타적인가요?
짐캐리 : 저는 존재하지 않아요.
...
그들은 모두 제가 연기한 캐릭터일 뿐입니다. '짐 캐리'를 포함해서요.
영화 속 '조엘 배리시'도 캐릭터였고, '짐 캐리' 역시 캐릭터입니다.
짐캐리는 덜 의도적인 캐릭터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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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우울증(Depression)에 대해 항상 이야기합니다...
우울증은 당신의 몸이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꺼져, 난 더 이상 이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지 않아.'
...
당신이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낸 이 '아바타(Avatar)'를 떠받치고 있는 게 벅차다는 뜻이죠.
...
당신의 몸은 우울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당신이 그동안 연기하려 애써온 그 캐릭터로부터 '깊은 휴식'이 필요한 겁니다.
-짐캐리 Jim Carrey (TIFF 인터뷰 中, 2017)-
자아는 몇 가지의 기호와 카테고리로 분류되고 정의될 수 없다. 한 개인 안에서도 다양할 수 있다. 앞서도 이야기했듯,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기 때문에 어떤 관계 속에 있느냐,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여러 자아가 나타날 수 있다. 또한 이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엄청 다양한 경험을 하고 그에 맞춰 선택들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내린다. 그리고 이를 우연과 필연으로 인식하는 등 삶의 과정은 무작위적 우연과 여러 모순(혹은 그렇게 인식되는 사건)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이런 사건들은 나의 근본을 바꾸지는 않지만 우리의 자아에 다양성을 가져다준다. 이 흐름을 어떻게 엮느냐는 개인마다 다른데 이 엮는 방식의 다양성으로 우리는 서로 다른 자아를 형성하게 되고 반대로 다양한 경험을 나만의 엮음으로 다시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 낸다.
자아는 이야기를 통해 통합된다. 우리는 우리 삶의 이야기를 말함으로써
다양한 경험과 역할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엮는다.
-폴 리쾨르(Paul Ricœur)의 서사적 정체성 이론 정리-
우리는 지금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나에게 더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 속에서 행위하는 나는 나의 의도를 반영한 나일뿐, 가짜가 아니다. 나의 일부분이다. 그것을 인정하기만 해도 우리가 겪는 스트레스와 정신적 부담은 줄어들 수 있다. 그리고 변화하는 나를 인정하고 이해하려고 할 필요도 있다. 리쾨르가 말한 것처럼 우리의 정체성에는 다양한 경험과 역할이 응축되어 있고 그것은 하나의 모습으로 정리할 수 없다. 이를 불안요소로 여겨 어떤 틀에 끼워 맞추려 하는 것은, 요즘 하는 말로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것, 자존감이 낮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 속의 다양한 나를 이해할 수 있어야 다른 이의 다양성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가 개인들의 단순 집합인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내가 더 안정적 내가 된다면 사회 또한 더 안정적인 성격을 띨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