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생각
돈을 꾸어주지 말라는 것은 돈을 꾸어주는 순간, 좋든 싫든 보이지 않는 상하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비자도 마찬가지다. 좋든 싫든 친한 친구나 가족에게 비자를 지원받는 순간 동등했던 관계는 상하관계로 변한다. 부목사들은 인격적으로 대우해 주는 담임목사를 원하고 담임목사들은 자신이 담임인 것처럼 주인의식을 가지고 섬기는 부목사를 원하는데, 가뜩이나 담임과 부담임 관계 자체가 상하관계이기에 아무리 인격적으로 대우한다 하더라도 비자가 걸려있으면 인격적 관계를 형성하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친하고 교회 안에서 돈독한 사랑의 관계가 되었다고 해서 ‘정’으로 비자를 내주면 결국에는 관계가 깨어지기 쉽다.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친하다고 해서 혹은 같은 신앙을 가졌다고 해서 비자를 지원해야겠다는 어쭙잖은 동정의 마음 혹은 그 사람이라면 비자를 지원해주겠지라는 기대의 마음을 갖지 않는 것이다.
정말 회사가 필요하면 비자를 내주면 되는 것이요, 비자를 지원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그럴 능력을 갖추면 되는 일이다. 적법한 절차를 통해 요구하는 자격을 갖추어 서로의 필요가 충족되는 동등의 과정 속에 비자를 지원받고 지원하면 관계가 깨어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또한 그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최소한 교회 안에서는 그런 일들로 인해 힘들게 세운 교회 공동체에 피해가 가는 일은 없어야 된다고 생각하기에 잠시나마 글을 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