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운과 한국교회

The Crown을 보며 드는 생각들

by 뉴질남편

넷플릭스를 통 안 보다가 크라운이라는 영국 드라마가 있길래 보기 시작했다. 보다가 역시 목사인지라 한국교회의 모습과 왜 이렇게 비슷한지 너무 깜짝 놀랐다. 윈스턴 처칠 수상은 수석장로, 엘리자베스 여왕은 담임목사, 엘리자베스 2세의 할머니 조지 5세의 아내 메어리 왕비는 원로목사로 보면 정말 한국교회의 갈등과 어쩌면 이렇게 똑같은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교회에서 떠받들고 뭔가 대단한 초인 인양 여겨지는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전혀 상관없는 교회의 모습의 원인을 바로 아래 대화를 통해 어렴풋이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할머니는 왕비 즉위식을 앞둔 손녀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Loyalty to the ideal you have inherited is your duty above everything else, because the calling comes from the highest source. From God himself.”

(네가 조상으로부터 계승한 그 이상에 충성하는 것은 그 어떤 것 보다 더 중요한 의무란다. 왜냐하면 그 부르심은 가장 높이 계시고 근원 되신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이지.)


병환 중에 있는 메어리를 찾아가 이 문구를 읽은 후에 엘리자베스 2세는 이렇게 묻는다.


“Do you really believe that?”

(정말 이렇게 믿으세요?)


그러자 할머니는 곧 왕비 즉위식을 앞둔 손녀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Monarchy is God’s sacred mission to grace and dignify the earth. To give ordinary people an ideal to strive towards, an example of nobility and duty to raise them in their wreched lives.

(왕권은 이 땅을 은혜롭게 하며 고귀하게 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명이란다. 평범한 이들에게 추구할 이상을 심어주고, 고결함과 의무의 표본으로 비참한 삶을 사는 이들을 세우는 것이지)


Monarchy is a calling from God.

(왕권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부르심이다.)


That is why you are crowned in an abbey, not a government building. Why you are anointed, not appointed. It’s an archbishop that puts the crown on your head, not a minister or public servant. Which means that you are answerable to God in your duty, not the public.”

(바로 그렇게 때문에 정부청사가 아닌 웨스트민스터 성당에서 대관식이 행해지는 것이요, 지명되는 것이 아니요 기름부음 받는 것이란다. 너에게 왕관을 씌우는 이는 대주교지 장관이나 공무원이 아니란다. 다시 말해, 너는 하나님 앞에 이 의무를 감당하는 것이지 대중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란다)


이런 대답을 하는 할머니에게 자신의 남편인 필립의 말을 인용하며 대중이 갖고 있는 시각에 대해 할머니에게 이렇게 설명한다.


“I’m not sure that my husband would agree with that. He would argue that in any equitable modern society, that church and state should be separated. That if God has servants they’re priests not kings. He would also say that he watched his own family destroyed, because they were seen by the people to embody indefensible and unreasonable ideas.”


이런 대답에 할머니는 그가 황실과 황실 역사에 대해 뭘 아느냐며 손녀의 질문을 일축한다.


난 이 둘의 대화를 보며 굉장한 전율을 느꼈다. 특별히 한국의 대형교회 목사들이 세습을 하거나 왕처럼 군림하고 사모들의 갑질의 행동이 바로 이런 사고방식으로부터 나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또한 목사의 아내와 자녀들이 자신의 자신됨을 목사의 아내 혹은 목사의 자녀라는 이유로 포기해야 하고 자신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모라는 이름으로 목사의 자녀로 사는 이유도 바로 이런 사상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봤다.


목사는 왕이 아니다. 하지만 건강하지 않은 몇몇 대형교회를 보면 그들은 하나님이 자기를(자기보다는 자기 가족들 전체를) 선택하셨고, 자기는 특별하며, 뭔가 뛰어나다고 생각함으로 다른 이들을 무시하거나 뭔가 하등 하다고 여긴다.


예수님도 왕으로 이 땅에 오셨다. 하지만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요 섬기러 오셨고, 모든 사람들의 죄를 위해 대속물로서 십자가에 죽으러 오셨다.


사명을 분명히 함은 좋은 일이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다는 그 부르심에 확신을 갖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무엇을 위한 사명이고 부르심인지를 확인하는 것은 더더욱 중요한 일이다. 또한 그 부르심은 내가 주장한다고 해서 증명되는 것도 아니고, 큰 교회건물을 갖고 있더고 입증되는 것도 아니며, 큰 사역을 한다고 해서 인정되는 것도 아니다.


믿음의 명문가정이라는 명목으로 가난한 성도들을 무시하거나 부목사와 그 가족을 종처럼 부린다면 그 사람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한참 오해한 것이라 볼 수 있다. 3대째 목사 집안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왕위처럼 물려받는다 생각하고 다른 이들은 절대 내 왕위(?)를 물려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교회가 아닌 궁궐로 가야 한다.


교회 공동체 안에 삼대째 장로 집안 혹은 믿음의 명문가문들도 이런 사고방식에 빠질 위험이 있다. 이 자리는 우리 가족 자리, 이 사역은 우리 가족 사역, 우리 가족만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는 선민의식이 하나님의 교회를 더 어렵게 만든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다. 그들은 은혜로 선택받은 것이지 자격이 되어 선민으로 뽑힌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선민의식으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야 할 이들이 도리어 그 구원의 걸림돌이 되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하지만 그 걸림돌이 될 행동으로 인해 하나님이 전인류를 구원하셨으니 그것도 참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는 신비중의 신비다.


교회란 무엇인가? 목사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으로 다시 대답할 필요가 있겠다.


하나님이 맡기신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다. 잠시 청지기일 뿐이지 항존직이 아니다. 은혜지 권리는 아니다. 주님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다. 그분의 것이기에 충성할 수 밖에 없고 그분의 것이기에 때가 되어 과감히 내려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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