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생각
아내가 두 아이를 돌보며 요즘 드는 생각을 나에게 나누었다. 참 공감이 되고 생각해야 할 문제여서 글로 남겨본다.
보통 이민자들의 자녀교육을 이야기하며, 특히 한국어를 잘하는 자녀를 둔 부모가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단골 멘트가 있다.
"우리 집에서는 아이들이 영어를 못쓰게 합니다."
하지만 이런 한국어 교육방식이 옳을까를 생각할 때 의문을 품지 않을 수가 없다. 정말 영어를 집에서 못쓰게 하는 것이 정말 자녀를 위한 길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 집 같은 경우 첫째 아이는 한국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담임목사님이니 얼마나 교인들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했을까?
어렸을 때부터 요즘은 못하고 있지만 성경도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한 절 한 절 읽으며 가정예배도 드렸다. 뉴질랜드 3년 동안 성경 한 권을 다 소리 내어 읽었기에 그 영향력은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둘째는 뉴질랜드에서 태어났다. 한국의 할아버지 할머니도 한국의 공동체도 없이 자랐고 이제 다섯 살이 가까워 오고 있는 지금 아이가 가장 영향을 많이 받고 집에 와서 가장 이야기를 많이 하는 곳은 바로 유치원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첫째 아이도 더 뉴질랜드화 되어 갔고, 둘째는 이제 한국어보다는 영어가 자연스럽게 입에서 튀어나온다. 발음이 부정확하고 가끔은 얼버무리는 영어를 부모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데, 첫째는 기가 막히게 잘 알아듣고 그 말에 친절하게 반응해준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두 아이는 다른 이민자들의 가정의 모습처럼 한국어보다는 영어로 대화를 하게 될 것이다.
이런 변화는 뉴질랜드에 사는 이상 피할 수도 없고 막을 수도 없는 아이들의 삶의 여정이며, 이민자 부모들의 숙명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과정 속에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교육시키기 위해서 정말 집에서 한국어만 쓰게 하는 것이 옳은 한국어 교육인지 되묻고 싶다.
혹시 한국어만 쓰는 가정이 어쩌면 아이들에게 보금자리와 휴식처가 아닌 피하고 싶은 한국학교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집은 평안한 휴식처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의 부족함을 내보이고 방귀도 뿡뿡 뀌고 슬픔과 기쁨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자리가 집이 되어야 하는데, 영어가 편안한 아이에게 부모의 사랑의 방법으로 한국어만 쓰라고 하는 집안의 환경을 조성한다면, 아이들은 긴장하고 더 이상 자기의 속이야기를 집에서는 하지 않는 아이가 될 위험이 크다고 생각한다.
한국어는 한국학교에서 배우고 집에서는 영어를 쓰든 한국어를 쓰든 부모와 소통하며 가정을 누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둘째가 자신의 언어를 단번에 알아채 주는 누나와 더 긴밀히 소통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첫째 역시도 뭔가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아마도 추측컨대 자신의 이야기를 한국말로 변환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은 아닐까?
같은 레퍼토리지만 이민자의 부모는 자녀를 잘 교육시키기 위해 그리고 생존을 위해 열심히 삶을 살아내고 있다. 그런 가운데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기 위해서 한국어를 쓰게 하는 것도 이해는 못하는 바 아니지만, 집에서 쓰는 한국어로는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부모에게 표현하기에는 확실히 한계가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 친구들과 소통할 때는 나 자신을 표현하고 또 남에게 나 자신이 이해되는 데 있어서 영어만큼 완벽한 언어가 아이에게는 없기에 어쩌면 슬프지만 집보다 학교가 정서적으로는 아이들이 더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정서적인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 부모는 영어를 배워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의 영어를 다 이해할 수 없지만 최소한 아이들이 영어로 자신을 부모에게 보여줄 때 따뜻한 사랑으로 감싸줄 만한 고급이불은 아니어도 투박하지만 보드라운 담요 같은 영어실력은 갖추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내가 학교를 다니며 생각이 참 많아지는 것 같다. 본인이 대학에서 이민자의 자녀들과 함께 공부를 하면서 보는 그 모습이 바로 미래에 우리의 자녀들에게 벌어지는 모습이요, 그 아이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 자녀들의 미래이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아내와 나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우리 집에서는 영어와 한국어 모두를 사용하여 자녀들과 풍성한 대화를 이어간다. 영어와 한국어가 부족하면 그림을 그려서라도 아이와 어떻게든 소통을 하며 부모인 나도 아이들에게 이해를 받고, 우리의 자녀들도 부모로부터 이해를 받기 위해서다.”
두 언어를 잘함으로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 서울대 가는 것, 한국과 영어권을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모와 자녀 사이에 소통과 관계 그리고 서로 알아감 가운데 성장함은 더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