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서 한 여자로

아내 공부시키는 남편

by 뉴질남편

사실 뉴질랜드에 처음 왔을 때 가졌던 생각은 영주권만 해결되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영주권이 해결된 후에 그다음 단계로 또 나아가야 했는데 그것은 바로 경제문제였다. 혼자 벌어서는 오클랜드의 삶은 정말 힘이 든다. 한국에서의 풍부한 지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키위 교회 목회자라지만 연봉이 높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면 아내는 일을 무조건 해야 했는데 바로 일터로 나갈 것인가 아니면 공부를 해서 하고 싶은 것을 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예전 글에서 썼다시피 키위 공동체에서 구성원으로서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우리 가족의 이민 여정을 결정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그런 가운데 눈은 높아지고 그 이상의 삶을 누리기엔 실력은 부족하고 그렇다고 해서 공부를 하기에는 힘이 들고 그렇다고 일을 하지 않기에는 재정적인 부족함이 있고… 이런 상황 속에서 아내는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IELTS를 준비했다. 영주권을 위한 영어가 아니라 미래의 직업을 위한 공부이기에 그 절박함의 정도는 달랐겠지만 아내는 그래도 비장한 각오로 맥도널드에 가방을 챙겨서 열심히 공부를 했다. 시험을 쳤다. 원하는 점수에서 0.5가 모자랐다. 계속 시험을 준비해서 원하는 학과에 입학할 것인가 아니면 밑에 단계로 들어가 상급과정으로 올라갈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래서 다시 영어점수를 만들기 위해 시간을 쓰기보다는, 낮은 단계라도 들어가자라는 마음으로 학과를 선택했는데, 아무래도 목회에 연관이 돼있는 일인지라 별로 마음이 탐탁지 않았고, 정말 그 학과가 아내가 원하는 직업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보통, 한국의 사모(목사의 아내)들은 자신이 원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이 아닌 남편의 부르심에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포기하고 희생하며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모습이었기에 아내가 혹시나 그런 현실에 맞추어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않고 안주하기 위한 학과 선택이지 않았는지 아내에게 물었다. ​


아내는 심각히 고민하며 그런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우리 가족은 목회적 시각으로만 인생을 설계했기에 새로운 관점이 필요했다. 그래서 세상을 움직이는 돈, 비즈니스, 주식 다시 말해 회계 관련 과목을 배우면 어떨까라는 권유와 함께 아내는 비즈니스 회계학과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약식이지만 상표를 만들고, 로고를 만들고, 1년 회계장부를 만들고, 엑셀을 배우고, 주식을 배우고, 비즈니스 원리를 배우면서 아내는 점점 다른 세상을 배워가며 시각이 점점 넓어져 갔다. 영어에 대한 자신감,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 삶에 대한 자신감이 점점 커지면서 아내는 영어권 사람들과의 활동에는 소극적이던 교회 생활(영어울렁증과 더불어 내가 한인 담당목사이기에 한인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었을 것이다.)이 적극적으로 변했다.​


주식은 도박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주식을 몇 주 구입해서 회사의 1년 회계 재무 표를 분석하고, 투자에 대한 인식 자체를 바꾸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배우는 자세를 갖게 되었다.​


밤이 되면 본인이 직접 줌이나 온라인을 통해 회의를 인도하고 조별과제를 하고 이메일을 쓰고 이력서를 작성하고 정말 적극적으로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아내는 사모가 아닌 엄마가 아닌 아내가 아닌, 공부를 할 때면 정말 자신을 찾은 한 명의 당당한 여성으로서의 삶을 한껏 누리는 모습을 본다. 직업을 위한 공부였지만 이 과정이 사고방식 자체를 새롭게 하는 여정이었다. 어쩌면 우리를 가로막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그 환경을 기회로 보지 못하는 우리의 부정적인 사고방식 때문이 아닐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면서 아내의 눈빛과 자세가 달라졌다. 특별히 시간을 운용하는 방식, 관계 방식, 말하는 방식 그리고 생각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고 뭔가를 하는데 준비된 환경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나의 생각을 바꾸고, 내가 가진 것으로 감사하며 있는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최선을 다해 시도하는 삶이 아름답지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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