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
모든 이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여정일까? 신앙을 처음 갖고 나서 항상 뭔가 영적인 설교를 하는 설교자들을 보면 그들은 성경을 나보다 더 잘 알고 뭔가 신비로운 하늘의 계시를 받은 사람들이라 생각한 적이 있다. 감리교 출신인지라 말씀사경회를 하면 강사를 모셔 오전과 저녁 타임에 말씀을 듣고, 오후 시간에는 지방 목사님들이 성경을 가르쳐주셨다. 저녁시간에 강사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 보면, '우리 아버지도 저런 불같은 종이 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과 더불어 '저 목사님 교회에서 신앙생활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시간들을 지나 내 인생에 큰 전환점을 준 분이 계셨는데 흰색 돌 훈련소의 윤형이다. 연세대학교의 럭셔리함과 그 브랜드의 빛깔에 같이 묻어가려고 하셨는지는 모르지만 그 교회도 같은 이름을 지었다. 흰색 돌 훈련소에 들어가 힘들게 훈련을 받은 후에 가끔 금요일이 되면 금요철야를 참석하곤 했다. 그러면서, '와 저 형은 어떻게 저렇게 성경의 신비한 진리를 알고 있을까?'라는 감탄과 함께 그 형처럼 되기 위해 정말 열심히 기도하고 성경도 읽고 지하철 전도도 했었다. 그러다가 뉴질랜드에서 광림교회로 교육전도사로서 중고등부를 섬겼고, 거기에서 윤형을 따라 하다가 결국 그 방식은 그 교회에서나 통하는 것이지 일반적으로는 그 방법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적인 갈급함이었을까? 계속 인터넷으로 윤형 및 다른 형들의 설교를 들으며 그 갈급함을 채우려고 했다. 그 갈급함은 한국에 가서도 채워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성경을 읽지 않지 않고 기도를 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계속 뭔가를 들어야 할 것만 같았고 뭔가를 읽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면서 대적 기도 1, 2, 3, 4부터 케네스 헤긴, 베니 힌 등의 책을 섭렵하면서 그 갈급함은 더 해 갔다. G12훈련, 알파(한국의 알파와 서양권에서 하는 알파는 확실히 전혀 다른 것 같다.), 해피데이, 두 날개, 성경세미나, 등등의 모든 세미나를 열심히 다녔지만 역시 항상 뭔가 갈급했다. 그러면서 착한 Shepherd 선배 형님의 설교를 듣게 되었지만 역시 그 갈급한은 채워지지 않았다.
그런 갈급함의 쇠사슬은 뉴질랜드로 완전히 이민을 오고서야 끊어졌다. 사실 아내도 계속 착한 형님의 설교를 일주일에 한 번씩 들었었는데, 지금은 그 형님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관심이 없다.
뭔가 대단한 말씀, 대단한 사람, 신비의 계시가 있다고 하면 이제는 한번 들어 보자라는 태도 대신에 또 어디서 약을 파나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약을 파는 사람들의 대부분의 목적은 결국은 돈이고 부동산이다. 이제 그 약 중독에서 빠져나와야 할 때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내 가족이며 내가 지금 몸담고 있는 교회다. 지금 나에게 있어서 100편의 설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가족의 얼굴을 바라보며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어떤 선교사의 말씀을 들어보자, 어떤 아무개의 말씀을 들어보자라고 말하지 말고 가장 가까운 가족의 말을 듣자. 거기에 사랑이 있고 진리가 있다. 그리고 누군가 떠 먹여주는 썰 풀이를 그만 듣고 딱딱하고 지루하더라도 진득이 앉아 성경을, 나의 시각과 나의 생각과 하나님이 주신 나의 이성으로 매일매일 그리고 꾸준히 일상을 살아가며 묵상하고 실천하자. 그것으로 충분하다. 더 이상 누군가의 조회수를 늘려주는 삶을 살지 말고, 내 가정의 행복함을 위하여 살아가자.
나와 밥 한번 먹어보지 않고, 내 고민 한번 들어보지 않은 사람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지 말자. 내 감정을 소모하지 말자. 내 돈을 절대 그들에게 온라인으로 이체해주지 말자. 차라리 내 부모에게 그리고 자녀에게 그리고 친구에게 또한 내가 다니는 교회에 그 정성을 쏟자. 그들은 내가 아플 때 심방 오지 않고, 내가 지칠 때 위로해주지 않는다. 보지 않고 사랑할 이는 예수님 한분이면 족하다. 그래서 예수님 한분이면 충분하다는 의미는 바로 그런 의미다. 내가 사모할 이는 오직 예수님뿐이지 다른 형들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