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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질남편 Feb 05. 2022

계약서의 목적과 의미

한국교회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냥 내 생각에 아직도 한국교회는 계약서의 목적과 의미를 잘 모르는 것 같다. 어떤 대형교회에서 사역하는 전도사 부목사들은 맨날 운전만 한다고 불평이고 설교할 기회가 1년에 몇 번 밖에는 주어지지 않는다고 툴툴거린다. 어떤 둠탱이는(담임목사의 애교 말) 장로 몰래 계약서를 만들어 어떻게 해서든 다 걸려들게 해서 기한이 차면 내쫓아 버릴 도구로 그 계약서를 이용하기도 한다.


일이 불분명하다. 목적도 불분명하다. 담임이 부목사를 고용하면 이렇게 써야겠다는 그림과 부목사가 그 교회에서 일하면 이런 일을 하고 싶다는 그림이 다르다. 담임은 ‘이 정도의 대우면 엄청 많이 해주는 거지’라고 생각하는 반면에 부목은 ‘지는 졸라 많이 가져가면서 개미 오줌만큼 주네’라고 불평한다.


성도들의 생각도 이와 별로 다를 바 없다. 그들은 담임이나 부목이 하는 일을 잘 몰라서, “월요일 쉬어서 좋겠어요, 꿀 빠는 목사님들”이라는 농담을 심심찮게 날리는데 이 농담, 사실 농담이 아니다.


부목은 겁나 열심히 나름대로 하는데 담임은 ‘아유 참 이거 하지 말고 저거 하라니까’라고 불만이고, 담임은 나름 소신을 가지고 이끌어가는데 제대로 된 마음 공유가 안되어 부목은 ‘실력도 없는 담임 밑에서 내가 뭐하나, 그래 처자식 때문에 내가 버틴다, 그래도 의리는 있으니 언젠간 분립 개척해주겠지’라는 생각으로 버틴다.


이것이 계약서, 그냥 교회나 교단에서만 통용되는 비밀계약서가 아니라 구글에 검색하면 나오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고 또한 불신자들이 읽어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고용계약서가 필요한 이유다.


어쩌면 그 교회에서는 설교를 잘하는 부목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운전 잘하고 컴퓨터에 능한 기술을 가진 사람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어쩌면 그 교회에서는 기도를 열심히 하는 부목사가 아니라 행정과 업무에 능한 목회계획 전문가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교회는 부목사가 사실 필요 없고 담임이 그냥 다 해도 굴러가는 교회일지도 모른다.


교회 안과 교회 밖의 소통의 부재가 아니라 어쩌면 교회 안에서 조차도 서로가 서로를 합리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아닐는지, 담임 자신도 본인이 무슨 일을 할지 모를뿐만 아니라 부목을 어떻게 다룰지 모르고, 부목은 본인이 무슨 일을 할지 모르는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을 얼마나 많이 목도했는지


계약서는 그런 양쪽 간의 기대와 마음을 법적인 용어로 서로와 서로를 지키기 위해 쓰인 문서다. 그것은 교회의 기대와 목회자의 기대가 동등한 입장 가운데 서로 동의하고 사인한 문서로서 언제든 길을 잃었을 때 서로가 동의한 문서를 들여다보면서 나침반처럼 다시 길을 잡고 다시 그 길로 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문서인 것이다.


계약서는 서로와 서로를 견제하는 어느 유명한 감리교 목사들의 “법이요”를 외치는 기초가 되는 교리와 장정이 아니다.


계약서는 서로가 서로의 바운더리를 정하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목회하며 관계를 보호하고 교회를 보호하고 서로를 보호하는 장치의 역할을 하는 문서인 것이다.


따라서 담임이 해야 할 일이 명확해야 하고 교회의 리더십팀은 그 명확한 일과 기대가 기록된 계약서에 기초하여 목회를 평가하고 피드백을 주며 서로를 성장하게 하고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또한 부목의 할 일과 기대가 명확히 계약서에 들어있어서 부목들도 딴짓 말고 그 일에 초점을 맞추어 그 일만큼의 합리적인 보수를 그들에게 책정하여 사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두계약은 언제나 기억의 왜곡으로 인해 사라지고 변질될 수도 있으니, 문서를 통한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지키고 보호하는 계약서 문화가 빨리 교회에도 정착되기를 바라보지만… 그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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