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첫 집 구매의 여정
2013년 처음 뉴질랜드 땅을 밟았을 때 나는 학생이었고 내가 공부하는 동안 아내는 딸아이를 돌보며 학생인 나를 전적으로 서포트했다. 이민 이야기를 많이 읽은 것도 아닌데 이 나라에 와보니 바로 아내가 일을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그 일은 그저 나와 같은 일이 아닌 나보다 연봉이 높은 기술직이어야 했다. 물론 비자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비자문제가 급선무였지만 아내와 나의 수준(?)을 맞추기 위해 혹독하게 아내를 훈련(?)시켰다. 그런 자세한 내용은 다음에 다루기로 하고, 아무튼 2016년 영주권을 받기까지 3년간 그저 아이를 돌보며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지역사회에 스며들기 위해서 이것저것 많은 것들을 시도했다. 이런 시도들이 가능했던 이유는 한국에서 오는 지원이 적었기 때문이다. 만약 부모님이 엄청난 부자라서 지원을 빵빵하게 해 주셨다면 지금의 우리는 없었을 것이다. 생존하기에는 애매한 간헐적 지원은 나와 아내의 생존본능을 일깨웠고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한 집념을 불태우게 만들었다. 그런 시도 가운데 좋은 집주인을 만나 아주 싼 값의 렌트집을 구할 수 있었고 그 집에서 우리는 하나둘씩 뉴질랜드에서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기초들을 세울 수 있었다. 영주권을 받은 후에 3년이 지나야 학자금 대출을 지원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 그래서 그 3년간 아내는 IELTS를 준비했다. 그리고 학자금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그 해에 아내는 아카데믹 모듈로 6.5를 받았고 쉼 없이 바로 대학을 진학했다. 바로 그 해가 2019년이었다.
우리가 집을 구매하기 위해 첫 시도로 모기지 어드바이저를 찾아갔던 해가 바로 2019년이었다. 첫 집을 구매한 시기는 2023년이었다. 다시 말해 융자를 받는 조건을 맞추는데 4년이 걸렸다. 아마도 영주권 받았으니 이제 정부보조금 받으면서 복지국가를 누려야지라는 생각으로 그저 거기에 머무르기만 했다면, 혹은 우리의 현실적 모습의 현타에 '나는 이민자라 안 돼, 나는 목사라 안 돼, 나는 영어가 안돼서 안 돼, 아내가 공부를 못 끝내서 안 돼'라는 등등의 부정적인 생각으로 시간만 보냈다면 첫 집구매는 우리 생애에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내는 2019년에 공부를 시작해서 2021년 11월 말에 모든 공부를 끝냈다. 나 역시 코로나를 지난 후 2021년도에 파트타임에서 풀타임으로 전환되었고 아내 역시 공부를 끝낸 후 바로 원하는 직업은 아니지만 New World에 고용되어 Butchery Assistant로 2개월 간 풀타임으로 일을 했고, 2022년 2월에 작은 건설회사에서 본인이 그토록 원하던 사무직으로 6개월간 일을 시작했다. 연봉이 어느 정도 올랐을 때 두 번째로 다시 같은 모기지 어드바이저를 만났다. 나도 풀타임, 아내도 풀타임이면 이제 집을 살 수 있을 것이라 믿었지만 현실의 벽은 턱없이 높았다. 모기지 어드바이저는 그러함에도 최대한 많은 융자를 받을 수 있는 여러 옵션들을 제시해 주셨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집을 사서 허덕이는 것이 맞을까라는 의문이 올라왔다. 그래도 내 집은 한 채 있어야지라는 마음, 이렇게 까지 무리해서 모기지 갚다가 모가지가 짓눌리는 것은 아닌가라는 두 마음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중간에서 참 고민을 많이 했다. 집은 있지만 30년간 은행의 큰 빚을 진 노예가 되어 쌀국수 한 그릇 남에게 베풀지 못하고 5불 한 장에 손을 달달달달 떠는 삶은 살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계속 평생 렌트집을 전전하며 언제나 다음 이사해야 할 집을 알아봐야 하는 삶도 살고 싶지 않았다.
아무튼 우리는 기다리면서 노력했고 최선을 다하는 가운데 그래도 우리 형편에 맞는 집을 구매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자격을 갖추었다고 해서 저절로 집을 구매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최소한의 자격을 갖춘 후에 그 자격대로 우리가 은행에 우리가 원하는 금액만큼 융자를 빌릴 수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였다. 집을 선택해야 하는데 어떤 집을 선택해야 할지, 어디 지역을 선택해야 할지, 키위빌드를 구입해야 할지 아니면 일반주택을 구입해야 할지에 대한 수많은 선택들 가운데 우리는 공부해야 했고 고민해야 했고 기도해야 했고 결단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