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이민자의 관계 방식
힘은 힘대로 들고 도움은 도움대로 줬는데 도움 주고 나서 본전 찾으면 다행이지만 도리어 일이 끝난 후에 잔뜩 욕먹기 쉬운 일들이 있습니다.
그것 중 하나가 애들 봐주는 일 그리고 사람 소개시켜주는 일 그리고 비자 관련 및 정착 서비스가 아닌가 싶습니다. 가장 속상한 것 중 하나는 나도 시간이 남아서 그런 것도 아니고 바쁜 일정 가운데 힘들게 정보를 알아봐 주고 없는 시간 쪼개서 그렇다고 대가를 바라고 했던 일도 아닌데, 그런 노력과 희생은 깡그리 무시당하고 본인의 기대에 못 미쳤다는 실망감, 왜 그것밖에 못하냐는 핀잔, 그리고 그것보다 더 좋은 게 있었다는 비교와 더불어 비난이 오기 시작하면 아... 괜히 도와주었다는 마음과 함께 다음부터는 돕지 말아야지라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다짐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다른 사람이 또 도움을 요청하면 마음이 약해져서 또 도와주게 되고, 도와주고 또 욕먹으면 다시는 돕지 말아야지 하다가도 또 시간이 지나면 또 돕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지요.
아마도 가장 속상한 것은 도와줬는데 감사한 줄 모르는 것, 아니 감사한 줄 모르는 것은 둘째고 도리어 욕을 먹을 때 마음이 가장 상하게 되지요.
힘들게 정착을 해서 어렵게 자리를 잡아 하루하루 이민자로서 삶을 살아냅니다. 그런 가운데 한 달 살기 두 달 살기를 계획한 가족과 친구들이 뉴질랜드를 방문합니다. 아마도 한번 살아보고 부모는 본인들은 아니더라도 믿을만한 홈스테이에게 자녀를 유학차 맡기려는 분들도 계시겠죠.
아무튼 오랜만에 그것도 타지에서 친구를 만났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겠지만 이민자에게 있어서 친구를 만난 반가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늘 살아내야 할 삶이지요. 매주 렌트비를 내야 하기에, 두부부가 함께 일하지 않으면 금방 빵구가 나는 녹록지 않음, 어쩌면 모기지를 갚느라 목이 메어 헉헉되는 분들도 많지요. 그런 어려운 상황 가운데 큰 맘을 먹고 친구 가족을 데리고, 어느 하루 멋진 바닷가나 산을 가봅니다.
그러면서 이곳엔 그런 분들은 없겠지만, 밥은 왜 안 사주나 하고 기대하는 분위기 속에 마누라에게 핀잔먹을 각오를 하고 힘들게 에포스 카드를 꺼내어 식사를 대접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지나서 갈 때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사례는 하겠지라고 기대했지만, 친구는 본인의 자녀들에게 까까 사 먹어라 하고 100불씩 쥐어주고 뉴질랜드를 떠나갑니다. 그렇게 떠난 친구, 후에 소식을 들어보니 다른 곳(하지만 내가 아는 곳)에 아이를 홈스테이로 맡겼다는 소식이 들리네요. 뭐... 그 친구의 자녀가 뉴질랜드로 유학을 오면 좋은 일이겠죠...
하지만 그렇게 보여줄 곳 다 보여주고 안내해줬는데 아무 소리 소문도 없이 다른 곳으로 갔다고 하니 섭섭한 마음은 감출 수 없습니다. 아마도 ‘그 친구의 자녀가 나에게 오면, 친구사이가 더 나빠졌을 것이다 그러니 차라리 지금 섭섭하고 말자’라는 마음의 위안으로 그러려니 하며, 또 시간이 지나갑니다.
최소 기름비, 운전수고비, 그날 하루 일하면 최저시급 $17.70, 그리고 자동차 대여비 등등 생각하면 2백 불로 퉁치면 안 될 일입니다. 물론 치사하게 이런 것 다 이야기하면 구질구질해지니까 다 말을 안 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한 달 살기 두 달 살기 오시는 분들 중에 친구나 가족이 있는 분들은 이런 상황들을 잘 기억하셔서 그날 하루의 삶을 사용한 이민자 친구들의 사정을 헤아려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을 피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다른 사람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사정을 잘 이야기하고, 나보다 다른 분이 더 잘 아시는데, 그분이 너희들을 잘 보살펴주실 거야. 하지만 그분도 일하시는 분이니까, 식사 대접하고 기름비, 운전비 그리고 여기 시급이 이러니까 너무 무리하지는 말되 합리적인 적정선 안에서 그분께 정성을 보여드려라,라고 말하면서 친구를 떠 넘기는 것이지요. 그러면 친구는 좀 섭섭해합니다. 하지만 본인이 직접 에스코트하면서 친구와의 의가 상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 친구가 전혀 모르는 남을 붙임으로써 그 남도 어느 부분 돈 벌어서 좋고, 친구도 선을 지키면서 여기 이민자들의 삶이 어떤지를 간접적으로 듣고 경험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 보통 가까운 지인일수록 못할 말이 있고 또 하면 차라리 아니함만 못한 말들이 있기에, 이런 사정이나 상황들을 그 친구에게 세밀하고 적나라하게 이야기해줄 본인이 아닌 남이 필요할 때가 바로 이때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요즘 한 달 두 달 지인 찬스를 이용하여 오시는 분들이 꽤 계시는 듯합니다. 친구가 아닌 남으로서 그래도 이런 글을 하나 써드림으로써 녹록지 않은 이민자의 마음을 한번 대변해봅니다. 지인 찬스는 찬스가 아니라 어느 부분 내가 힘든 이민자 친구를 이번 기회를 통해 섬기러 가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오신다면 더 풍성한 뉴질랜드 단기 가족여행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 본 글은 제 이야기가 아니고 지인의 경험을 듣고 허락하에 재구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