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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원인 Feb 01. 2017

덮밥의 힘

민.원.상.담.실





일본 사람들은 시험을 앞두고 두툼하게 썰어 기름에 튀긴 돼지고기 등심을 밥 위에 올리고, 그 위에 가다랭이포와 채소로 우려낸 육수를 끼얹은 가츠동 かつどん이라는 덮밥을 먹습니다. 

가츠동의 가츠가 이길 승勝을 말할 때의 발음과 같기 때문입니다. 시험 전 달걀 부침이나 미역국을 기피했던 고국의 기억은 아침을 챙겨주는 이 없는 낯선 나라에선 사치에 불과할 뿐, 근처 덮밥 체인점에서 제일 싼 가츠동을 먹고 시험장으로 달려갑니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자정을 넘은 시간, 고달픈 유학생은 주린 배를 채우려 역 앞 식당에서 제일 저렴한 규동牛丼 한 그릇을 주문합니다.  쌀밥을 퍼 담고, 그 위에 채소와 쇠고기를 버무린 덮밥이 냉수 한 잔을 비워내기 전에 김을 모락 거리며 나옵니다. 유학생 양 옆으로 경마 신문을 꼼꼼히 살피는 사내와, 병맥주를 반주 삼아 늦은 퇴근길의 여유를 즐기는 샐러리맨이 앉습니다. 모두 밥사발을 턱밑까지 치켜들고 헛헛한 뱃속으로 덮밥을 끌어넣습니다. 일본에서 경험했던 덮밥은 싸지만 푸짐하게, 떨리고 허기진 삶의 순간을 든든하게 채워준 음식이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둘 낳고, 소박한 내 집도 장만(원금은 이십 년 상환)했지만, 얇은 주머니 사정 때문에 찾았던 덮밥이 갑자기 생각납니다. 

짧은 인생, 뭔가 흔적을 남기고 싶다며 부모님 두 분만 큰 집에 덩그러니 두고 나와선 명절 때 뵈니 만두를 빚으시는 어머니 어깨 위로 수북이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습니다. 독한 약 때문이라고 하시지만, 젊은 시절 화장대에 앉아 공들여 드라이를 하시며 매무새를 만지시던  모습이 떠올라 불시에 명치를 맞은 듯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우리는 너희만 잘 지내면 돼. 노후 준비는 잘 하고 있지? 저축은 얼마나 하니? 


자신의 기준에는 만족한 삶이지만, 부모님은 늘 측은한 듯 말합니다. 어서어서 모아야지. 

평소 그렇게도 말없던 아이가 오늘  크게 기합을 넣으며 발차기를 했습니다. 잘 웃지 않던 아이가 똥 얘기 한 번에 오랜만에 자지러집니다. 자기표현이 서툴러 좀처럼 앞에 나서지 못하는 아이가 조용히 사무실로 찾아와 뜬금없이 이렇게 말하고 사라집니다. 저 태권도가 좋아요. 

늘 자식 재정을 걱정하시는 부모님에게 이런 이야기는 큰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유학 시절 먹었던 덮밥만큼이나, 낯선 땅에서 꿋꿋이 살게 하는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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