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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원인 Feb 01. 2017

옥수수 심은 자리

민.원.상.담.실











사고는 순전히 옥수수 때문이었다. 

몇 주째 비가 내렸고, 한데 섞여 강을 건너는 코끼리 떼 같은 회색 구름이 젖은 하늘을 뒤덮었다. 아마 그때도 옥수수는 자라고 있었을 것이다. 휴가를 떠난 삼일 동안, 지 혼자 큰 줄 아는 사춘기 소년의 살 터진 종아리처럼 옥수수는 자랐을 것이다. 어느 틈에 주차장 옆으로 몇 가지 채소를 심고 네모나게 줄지어 심은 옥수수들이 담장처럼 어린 열매를 지키고 있었다. 비 개인 파란 하늘 아래 그 초록은 선명했고, 바람에 날리는 수염은 바람결보다 고왔다. 그래, 사고는 순전히 옥수수 때문이었다.


태권도장 앞에서 후진하던 승합차를 옥수수가 자란 길을 따라 달려오던 소형차가 들이받았다. 잘 좀 보지라는 말을 목젖이 아플 만큼 꿀꺽 삼켰다. 아내는 임신 육 개월 째였다. 사고 난 상대도 단골 치킨집에서 안면이 익은 사이였다. 이래저래 속 시원히 원망할 대상이 없었다. 그래, 사고는 옥수수 때문이었다. 

아마도 며칠 후면 그 텃밭 주인은 옥수수를 딸 것이다. 그리고 큰솥에다 뉴슈거를 뿌려 찰지고 달달하게 익은 옥수수를 먹을 것이다. 우리 승합차와 상대 차의 수리비를 합산하면 백만 원이 훌쩍 넘는 돈이었다. 자차보험에 들지 않은 치킨집 차주는 찌푸린 하늘보다 더 울상이었다. 


노는 땅에 얼마간의 옥수수를 심고 집안 식구끼리 먹는 일이야 오히려 부지런하다 칭찬할 만하다. 

하지만 옥수수의 위치가 애매했다. 

그 주차장을 이용하는 사람들 모두가 옥수수 때문에 예민해졌다. 길게 자란 옥수수 때문에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차에 사각지대가 생긴 것이다. 그곳에 자란 옥수수를 모두 장에 내다 판들, 이 무더위에 별로 구미도 당기지 않을뿐더러, 바가지를 씌어도 십 만원 조금 넘을까 말까 한 양이었다. 


내 삶 속에도 이런 옥수수 심은 자리가 많았다. 내 삶이고 내 영역이다 외치며 한껏 부지런 떨지만, 타인의 안온을 위협하며 그 삶의 영역에까지 커다란 그늘을 치고선 내 땅이다 허세 부리고 있었다. 

아무리 내 것이라 해도 주위를 둘러보지 않으면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그 자리… 오늘도 그 자리 어딘가에서 옥수수는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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