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상.담.실
겨울이 물러난 대기는 홑청처럼 헐거웠고, 느슨하게 풀린 자리마다 봄바람이 스밉니다. 그 속에 마른 풀냄새와 섬유유연제 향이 납니다. 바로 그때, 정물화처럼 잘 정돈된 아침을 깨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초로에 접어든 사내들이 서로 멱살을 잡고 으르렁거립니다. 갖은 욕설과 협박하는 말과 주먹다짐... 급기야 한 사내가 웃통을 벗어재낍니다. 늘어진 가슴팍에 그려진 커다란 문신이 드러났습니다.
간혹 동창 모임이 불편해질 때가 있습니다. 저의 숨기고 싶은 과거를 낱낱이 드러내는 짓궂은 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나이 또래에 한 번쯤 저질렀을 일탈(경찰출동 안 하고 쇠고랑 차지 않는)을, 리얼한 연기와 과장을 섞어 신나게 떠듭니다. 동석한 아내의 존재 때문인지 폭로전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합니다. 한마디로 뻘쭘해집니다. 오래전 일이라 변명해도 내가 벗어버린 껍질과 함께 했던 이들은 그것을 쉬 놓아주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20년을 훌쩍 넘었지만 변한 건 없었습니다. 일그러진 본성과 욕구를 그저 세월이라는 더께에 깊이 묻어두고 살아가는 중입니다. 선생님이라 불리며 점잖은 체 하고 있지만 그렇게 스스로에게 만족하는 순간, 얕은 지식과 경험으로 막아왔던 빗장이 풀리고 저 역시 아침나절 뒤엉켜 싸우던 사내처럼 웃통을 벗어젖히고 감춰왔던 맨살을 드러낼지도 모릅니다. 성숙은 세월과 정비례하지 않음을 알기에, 아이들과 만나는 매일이 긴장의 연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