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from island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원인 Feb 06. 2017

문신

민.원.상.담.실









두터운 솜을 벗겨내고 이불 홑청을 빨아 널었습니다. 

겨울이 물러난 대기는 홑청처럼 헐거웠고, 느슨하게 풀린 자리마다 봄바람이 스밉니다. 그 속에 마른 풀냄새와 섬유유연제 향이 납니다. 바로 그때, 정물화처럼 잘 정돈된 아침을 깨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초로에 접어든 사내들이 서로 멱살을 잡고 으르렁거립니다. 갖은 욕설과 협박하는 말과 주먹다짐... 급기야 한 사내가 웃통을 벗어재낍니다. 늘어진 가슴팍에 그려진 커다란 문신이 드러났습니다. 


간혹 동창 모임이 불편해질 때가 있습니다. 저의 숨기고 싶은 과거를 낱낱이 드러내는 짓궂은 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나이 또래에 한 번쯤 저질렀을 일탈(경찰출동 안 하고 쇠고랑 차지 않는)을, 리얼한 연기와 과장을 섞어 신나게 떠듭니다. 동석한 아내의 존재 때문인지 폭로전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합니다. 한마디로 뻘쭘해집니다. 오래전 일이라 변명해도 내가 벗어버린 껍질과 함께 했던 이들은 그것을 쉬 놓아주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20년을 훌쩍 넘었지만 변한 건 없었습니다. 일그러진 본성과 욕구를 그저 세월이라는 더께에 깊이 묻어두고 살아가는 중입니다. 선생님이라 불리며 점잖은 체 하고 있지만 그렇게 스스로에게 만족하는 순간, 얕은 지식과 경험으로 막아왔던 빗장이 풀리고 저 역시 아침나절 뒤엉켜 싸우던 사내처럼 웃통을 벗어젖히고 감춰왔던 맨살을 드러낼지도 모릅니다. 성숙은 세월과 정비례하지 않음을 알기에, 아이들과 만나는 매일이 긴장의 연속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난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