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from island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원인 Jan 29. 2017

바스켓볼 다이어리

민.원.상.담.실



공을 쥔 두 손을 가슴 언저리에 모으고, 엉덩이를 뒤로 쭉 뺀 채 만세를 부르는 모양으로 두 팔을 뻗어올립니다. 일명 아줌마슛. 날아간 공은 림을 맞추지도 못하고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거듭 슛을 쏘아올리지만 비명횡사하는 공의 궤적을 좇으며 혀를 끌끌 찹니다. 


엉덩이 집어넣고, 손은 위로 치켜들어야지!  


열일곱의 삐쩍 곯은 소년은 훈수가 끝나기도 전에 공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버겁게 슛을 던지고는 떨어진 공을 주우러 갑니다. 


요즘 애들은 게임에 빠져서 농구를 잘 못해. 우리 땐 만날 학교 끝나면 모여서 농구했는데...


소년의 뒤통수를 향해 좁쌀 영감처럼 또 잔소리를 해댑니다. 

그렇게 무안을 줬는데도 태권도장 비품 창고에 있는 공을 빌리러 검은 비닐 봉지에 떡볶이를 싸들고 온 소년. 마트에 장을 보러갔다가 이층 운동용품 점에 비치된 갈색 농구공이 눈에 띕니다. 가격이 제법 나갔지만 쭈뼛대며 농구공을 빌리러 오는 소년의 얼굴이 떠올라 카트에 담습니다. 


일요일 오후, 소년의 집에 들러 공을 건네자 시원하게 뻗은 눈매 속이 농구공으로 가득찹니다. 구십도로 몇 번이나 인사를 해대는 소년을 뒤로 하고 집에 오자 바로 문자 메시지가 울립니다. 

잠시 내려와 보세요. 

아파트 주차장에 소년과 그와 꼭 닮은 엄마가 서 있습니다. 소형차 트렁크에서 투명 비닐에 싸인 스무개 들이 생수 두 덩이를 꺼냅니다. 생수 공장에서 일하는 엄마를 앞세우고 감사 인사를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태권도장에서 수업하고 운전하고, 집에 와 두 딸 씻기고 먹이고 재우고 주말에는 좀 쉬어볼까 했는데 그 신성한 금요일 밤, 문자 메시지가 울립니다. 

쌤, 내일 농구 한판 해요. 

페르시아의 황제 크세르크세스처럼 나는 관대하다며 주문을 외웁니다. 

아줌마 슛은 여전하지만 선물로 준 공의 낡은 모양새로 보아 연습량이 짐작됩니다.


오! 많이 좋아졌네. 

정말요? 저 엔비에이(미국 프로농구리그)에 갈 수 있을까요?


띵! 소년이 던진 공이 림을 맞고 경쾌한 소리를 냅니다. 붉게 상기된 열일곱 소년의 얼굴을 보며 차마 포기하라고 말하기를 주저합니다. 평소 키작은 관장님의 올림픽 금메달 스토리를 들려주며 꿈은 현실이 된다고 했는데, 이제와 현실은 현실이다라고 이율배반을 말하기 어렵습니다. 

일단 슛부터 넣고 보자며 설익은 사춘기 소년의 막무가내를 틀어막고는 시간벌기를 합니다. 그리고 겨울이 됐습니다. 


쌤, 오랜만에 농구 한판 해요. 


주말 전야의 느긋한 밤에 어떠세요도 아니고 해요라며 문자질(?)하는 이 철부지에게 슬슬 짜증이 올라옵니다. 걔는 공부도 안 하고 만날 농구만 해. 농구에 미친 거 아니야? 좁쌀 영감처럼 소년의 험담을 아내에게 늘어놓습니다. 왜 어때서. 그 나이 때 딴짓 많이 하잖아. 오히려 건전하지 않아?  


그렇게 주말에 찬바람 맞으며 소년과 농구 시합을 합니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두 손을 머리 위로 모아 흐트러짐없이 쏘아올린 슛은 림을 깨끗하게 통과합니다. 다리 사이로 공을 튕겨 내고는 바로 등 뒤로 공을 보내는 비하인드 드리블까지… 자신이 육군 병장 때도 못했던 그 기술을 소년이 자연스럽게 선보입니다. 자신이 겨우내 극세사 이불 속에서 비비적거리던 사이 한시도 공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소년은 진짜 엔비에이의 꿈을 이룰 기세입니다. 


아니요, 그냥 취미로 하려구요. 


찬바람에 빨갛게 언 손끝으로 천연덕스럽게 콧물을 훔치는 소년은 이제 소년의 문턱을 넘은 것 같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퍼펙트게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