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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원인 Jan 29. 2017

퍼펙트게임

민.원.상.담.실









“최동원이 게임은 최동원이 나간다고!”

영화 <퍼펙트게임>에서 최동원은 선동렬과의 맞대결을 앞두고 이제 한물갔다는 사람들의 쑥덕거림을 이렇게 받아칩니다. 매끈한 소가죽에 감싸인 야구공은 18미터 앞 포수를 향해 날아가는 동안 한 투수의 승부에 대한 집착과 고집이 더해져 떡 메치듯 찰지게 미트에 박힙니다. 남자라면 이런 장면을 보면 장딴지에 힘이 들어가고 먹잇감을 발견한 들짐승처럼 동공이 확장됩니다. 동경이지요. 


태권도에 기대하는 학부모의 바람(순종적이고, 예의 바르고, 밖에 나가 뉘 집 자식이니 하고 칭찬받을)을 짊어진 후부터, 우완 정통파 투수보다 어깨에 힘이 더 들어갑니다. 상대는 자신이 제대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무렵에야 겨우 출생신고를 마쳤던 핏덩이들. 불혹의 나이에, 어른 중에서도 에이스라 불리는 선생이란 존재는 그런 만만한 아이들을 상대로 퍼펙트게임을 펼칠 거라 생각했습니다. 


직구처럼 흔들림 없는 권위로 아웃카운트를 잡고, 슬라이더보다 부드럽게 흘러들어가는 슬러시로 아이들의 마음을 현혹시키려 했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저만의 개성과 성향으로 똘똘 뭉친 아이들은 이 에이스의 평정심을 잃게 하며 드높던 자부심 여기저기에 기스(?)를 남깁니다. 

눈을 부라리고, 목구멍 울대가 뻐근할 만큼 큰소리를 쳐보지만 그것도 잠시, 아이들은 이리저리 내 뺄 뿐입니다. 연륜과 경험에 깊은 상처를 입고는 흥분한 나머지 아이들 마음에 부끄럽게도 빈볼을 던집니다.


달전리에 마지막 아이를 내려주고 홀로 돌아가는 길, 흙먼지 날리는 비탈길은 승부가 끝난 텅 빈 마운드 같습니다. 최동원처럼 내 게임은 내가 책임진다며 떵떵거렸지만, 아이들은 권위나 경험으로 상대하기 어려운 난적이었습니다. 

코흘리개라 얕보았던 마음에 씁쓸함이 밀려듭니다. 

아이들을 상대로 무수히 패배를 맛보며 손에 물집 좀 잡혀야 겨우 제구가 될 수 있는 승부임을 깨닫습니다. 퍼펙트게임을 꿈꾸지만, 아직 한참이나 져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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