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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원인 Jan 29. 2017

오늘의 날씨

민.원.상.담.실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기도 전에 전의에 큰 눈이 내리고는 며칠 째 겨울비가 오락가락.  

그래서인지 아침마다 큰딸과 엄마는 옷차림 때문에 언성이 높아집니다. 치마를 입겠다고 떼쓰는 아이와 무조건 든든히 입혀 보내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 한랭전선을 치고 있는 한가운데, 다섯 살배기 둘째 딸도 철 지난 꽃무늬 치마를 들고 옵니다. 얼른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소파에 드러눕고 싶은 아빠는 케이티엑스보다 더 빨리 아이들의 손을 들어줍니다. 그냥 보내!


그러고는 집에 돌아오니 갑자기 쏟아지는 눈발. 둘째 딸 어린이집 선생님이 보내준 사진 속에 질척이는 눈밭에서 맨손으로 눈을 만지고 있는 딸아이의 모습을 보며 변덕스러운 날씨 탓을 해야 할지, 민감한 요즘 날씨를 경험으로 때려 맞히려 한 아빠의 어설픔을 탓해야 할지… 먹구름이 걷히고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겨울 햇살보다 아내의 시선이 더 따갑습니다.


개성이 강한 아이들을 데리고 태권도를 가르치기 위해 여러 규칙들을 폴리스라인처럼 그어놓고 그 선을 넘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 

하지만 감정과 행동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들에게 주의나 경고의 문구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 쉽게 뜯기는 폴리에틸렌 테이프에 불과해 보였습니다. 

눈앞에서 주먹이 오가고, 욕설을 내뱉고, 분에 못 이겨 사물함을 발로 차고.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터라 싸운 두 사람을 사무실로 불러 야단을 치지만 둘 다 억울한 사연들은 한 가득. 엄하게 야단을 치고는 예전 같으면 금세 잊고 뛰어놀 아이가 도장 구석에 앉아 눈을 내리깔고 있는 모습에, 혹시 헛다리를 짚은 건 아닌지, 미처 억울한 일이 있는데 뭉뚱그려 해결해 버린 건지 뜨끔 거립니다.


불어오고 흘러가는 방향을 예측할 수 없지만 계절의 온기와 차가움, 혹은 물기 머금은 바람처럼, 아이들의 행동은 어디로 향할지 모르지만 작은 몸짓과 시선 속에도 자존심과 두려움, 허세와 예민함을 담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마음으로 손대 보지 않고는 느껴지지 않는 인간이 가진 복잡한 감정선들. 얼른 차량 운행을 해주어야 하고, 방과 후 수업이 끝난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하고, 장갑과 목도리를 잃어버리지 않게 챙겨주는 어른의 일에 집중하다 보니 정작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들을 만져야 하는 사람의 일을 소홀히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은 이 부족한 어른 사람에게 제법 야무지게 세상과 그 속에서 함께 사는 사람의 도리를 가르쳐줍니다. 


그렇게 다투고 돌아간 다음 날, 어깨동무를 하고 들어오는 아이들에게 인간관계의 불가사의 함을 배움도 물론입니다. 내일 눈이 올 확률은 삼십 퍼센트, 최저 기온 영하 사도. 어디까지나 예보에 의하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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