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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원인 Feb 10. 2017

걷다

민.원.상.담.실










자식 다 키워 났겠다 우리도 좀 편히 살아야지!

한 달에 이만 얼만가를 주면 최신식 마사지 의자를 빌려 쓸 수 있다며 부모님이 전화를 하셨습니다. 수화기 너머 들리는 쇼호스트의 목소리는 귀 엷은 노부부의 마음이라도 변할까 싶어 테이프로 원 플러스 원 상품 묶어대듯 쉼표도 없이 이것저것 붙입니다. 오늘이 지나면 다시없는 기회라며...

그날 밤, 아버지는 응급실에 입원하셨습니다. 



담도암이 의심된다는 의사의 소견에 도무지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는데, 며칠 후 어머니 허리를 포도넝쿨처럼 휘돌아 감싼 대상포진. 누가 보아도 넓고 평탄해 보이던 두 분의 삶의 행로가 일순 무너집니다. 

수액이 지나는 고무호스와 콧구멍 밖으로 담즙을 받아내는 주머니를 달고 침대 앞에 묶인 명주 끈을 붙잡아야만 몸을 일으킬 수 있는 아버진, 부서진 가전제품처럼 어설프고 허술합니다. 

그런 아버지가 제게 한 마디 하십니다. 


낼 아침에 밥 준대

눈에 빛이 납니다. 늘 먹던 삼시세끼인데 그게 아버지를 설레게 합니다. 물 한 모금이 간절해 물티슈로 입술을 적시고는 입가에 포만감을 내비칩니다. 아버지 방귀 소식을 속달 치듯 여기저기 알립니다. 많이 걷고 심호흡을 많이 해야 퇴원할 수 있다는 말에 수술 전보다 한참이나 헐거워진 슬리퍼를 찾아 신습니다.



아버지를 따라나선 병실 문밖, 길게 뻗은 병원 복도에 환자들이 링거 달린 거치대를 붙잡고 오고 가고를 반복합니다. 그들의 걸음에는 병원 밖으로 나가기 위한 간절함과 이야기가 묻어납니다. 

그 속에 섞인 아버지의 걸음은 무너진 자신의 삶의 행로를 디디듯 불안해 보였지만, 내일 준다는 밥과 시원한 

물 한 잔을 위해 저만치 멀어져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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