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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원인 Feb 12. 2017

상식도 은혜다

민.원.상.담.실









달 없는 밤, 나는 조치원에서 전의로 향하는 1번 국도를 달리고 있었다.

아내와 딸아인 깊이 잠들었다. 가로등도, 이웃하는 차도 없이 헤드라이트로 밀도 높은 어둠에 홀로 부딪쳐보지만, 빛이 흘러간 자리 뒤로 사이드미러에 촘촘하게 차오른 어둠을 보니 높이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공중에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헤드라이트가 비추지 못하는 까만 저편이 그 길의 끝인 듯, 불안한 오른발이 브레이크 주변을 맴돌고, 들썩이는 속도에 따라 겁에 질린 초식동물의 들숨처럼 배기음도 컥컥 댔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놓은 고가도로는 구불거렸다. 추락위험, 미끄럼 주의, 결빙지역 같은 문구들이 묘비명처럼 불온하게 어둠 구석구석에 박혀 있었다. 차창 넘어 어둠을 엿보듯 두 손으로 핸들을 붙잡고 등받이를 세웠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다. 믿기만 하면 이 위험 속에서 날 건져내시고 무사히 집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하지만 핸들을 놓을 순 없다.  



때로 믿음을 시험당할 때가 있다. 너의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라…. 너의 하나님이 하실 것이다. 담대히 나아가라…. 앞뒤 문맥만 떼고 들으면 귀에 착 달라붙는 문구다. 하지만 하나님을 온전히 알기 전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 말은 연약한 육신을 어둠 속 어딘가에 쳐 박히게 할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아내와 딸을 영문도 모르게 사지로 몰고 갈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많은 일들은 기적이라는 명사로만 이해될 수 있다. 출애굽, 하늘에서 떨어진 만나와 메추라기, 그리고 여리고 성. 그 말 많고 탈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리고 성을 하루에 일곱 바퀴 돌았다. 그것도 침묵으로.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게 메인 디시인데 나는 오히려 일곱 바퀴를 돌았던 애피타이저에 마음이 쏠린다. 명령대로 말없이, 속된 말로 뻘짓이라 부를 만한 그 길을 걸어갔던 사람들. 그 모습은 믿음이란 추상적인 단어를 온전한 형태로 드러낸 거푸집과도 같았다. 그들 중 하나쯤은 일곱 바퀴 걷고 자시고 할 거 없이 그냥 하나님이 무너뜨리세요.라고 할 만도 할 텐데 말이다. 아마도 그 속에 내가 있었다면 내가 그 백성 1의 역할을 누구보다 잘 소화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한 치의 의심 따위 없다. 다만 망설여진다. 그 길은 멀고 험해 보인다. 줄곧 기도할 테니 하나님이 인도하라 말하고 있다. 욕망의 기도는 시간 벌기에 제법 좋은 구실이 된다. 믿음 좋다는 주위의 평판도 듣고 몸도 편하다. 하지만 그건 핸들을 놓고 팔짱 끼고 있는 방치와 유기의 형태에 불과하다. 몇 초 후, 혹은 몇 분 후 내 살점들은 찢기고 조각난 금속들과 뒤엉킬 것이다.      


하나님이 인도하고 허락한 이 땅에서 받은 다양한 교육과 상식들, 운전 지식, 어디 불편한 곳 없는 육체가 유기적으로 차와 결합해 나의 차는 어둠 속에서도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 이런 나와 하나님도 함께 하신다. 

어쩌면 하나님은 도로 위에 놓인 날카로운 못을 강한 바람으로 치우시고, 차 앞으로 돌진할 길 잃은 들짐승을 다른 길로 돌이켰을 것이다. 

며칠 차 안에 썩고 있던 우유를 딸아이가 발로 차 엎지르게 해서 내가 멋모르고 마셔 복통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시고(분명 아내에게 진즉 치우지 않았냐며 짜증을 퍼부을 것이다), 차의 작은 부속을 고장 내어 내가 출발 전 더 큰 문제를 살펴보게 하셨을지도 모른다(분명 우유 사건에 이어 짜증은 정점을 찍을 것이다. 나는 아내에게 앞으로 지민이는 당신이 재우라고 호통칠 것이다. 그것과 이것이 무슨 상관이람). 

내가 핸들을 붙잡고 운전하는 사이에, 하나님도 그분 나름의 일을 하신 것이다. 세상은 그것을 우연이라고 쓰고 우리는 믿음이라 읽는다.



어느새 불 밝힌 전의 시내가 내려다보였다. 그 중심에 붉은 십자가가 관제탑처럼 우뚝 솟아 있다. 까만 어둠 사위로 개천을 가로지르는 다리와 공장과 삼각형의 지붕들이 온전히 형체를 드러냈다. 오랜 시간 야간비행을 마치고 내려앉는 공항처럼, 마주한 불빛은 따스했고 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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