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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원인 Feb 13. 2017

민.원.상.담.실









도쿄타워가 올려다보이는 하마마쓰초(浜松町)의 어느 식당에서 일 년 가까이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띄엄띄엄 타국의 말을 건네는 유학생에게 가장 적합한 자리는 주방뿐이었습니다. 깔끔하고 쾌적한 홀과 달리,   남짓한 주방 지하의 공기는 돼지 사골을 우려내는 뿌연 훈기와 위층으로 음식을 올리는 리프트의  공기가 부딪히며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같은 격한 기압골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런 낯선 말과 환경에서 나를 구원해 준 건 주방장이었습니다. 여성임에도 얼어붙어 단단한 고기를 능숙하게 잘라내고 뜨거운 들통을 번쩍번쩍 들어 올리는 그는, 눈짓으로 내가 해야 할 것을 알려주고, 엉뚱한 일을 하고 있으면 말없이 고쳐주었습니다. 언어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편안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네들의 말이 익숙해지고, 우리는 원하는 것들을 직접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큰 소리로 주문을 읽으면 더운 공기 속에 말들이 퍼지고 눈짓이나 몸짓을 확인할 필요 없이 손이 먼저 움직였습니다. 전날 본 텔레비전 개그 프로를 소재삼아 농담을 주고받고, 아이돌 가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말은 과묵(?)했던 저를 크게 웃게 만들었습니다.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중에서


하지만 말은 서로의 미묘한 시선이나 출렁이는 감정의 리듬을 간과하게 했습니다. 세 평 남짓한 주방에서 우리는 입을 크게 벌려 서로를 다그쳤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동사와 형용사에 주워들은 토박이 단어들을 듬성듬성 꿰어 그에게 다가서자, 그는 몸을 돌려 자신의 모국어를 등 뒤로 내뱉었습니다.    

양철 기름통에 앉아 담배를 뻑뻑 피워대던 주방장은 어느 날 갑자기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기름통에 널브러진 그의 양념 묻은 앞치마만 물끄러미 보아야 했습니다. 무수한 말들이 쌓여 상대를 온전히 볼 수 없는 벽이 생겼는지도 모릅니다.

 

소통이란 화두가 공산품처럼 넘쳐납니다. 하지만 단순한 말의 교환에 감히 소통이란 단어를 접붙일 수 없습니다. 말이 없었던 자리가 편했던 이유는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배려가 그곳에 정중하게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대화는 넘쳐나지만 상대가 편히 쉴 자리 하나 준비 못하는, 소통이 마치 난시처럼 두통으로 읽히는 요즘입니다.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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