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상.담.실
띄엄띄엄 타국의 말을 건네는 유학생에게 가장 적합한 자리는 주방뿐이었습니다. 깔끔하고 쾌적한 홀과 달리, 세 평 남짓한 주방 지하의 공기는 돼지 사골을 우려내는 뿌연 훈기와 위층으로 음식을 올리는 리프트의 찬 공기가 부딪히며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것 같은 격한 기압골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런 낯선 말과 환경에서 나를 구원해 준 건 주방장이었습니다. 여성임에도 얼어붙어 단단한 고기를 능숙하게 잘라내고 뜨거운 들통을 번쩍번쩍 들어 올리는 그는, 눈짓으로 내가 해야 할 것을 알려주고, 엉뚱한 일을 하고 있으면 말없이 고쳐주었습니다. 언어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편안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네들의 말이 익숙해지고, 우리는 원하는 것들을 직접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큰 소리로 주문을 읽으면 더운 공기 속에 말들이 퍼지고 눈짓이나 몸짓을 확인할 필요 없이 손이 먼저 움직였습니다. 전날 본 텔레비전 개그 프로를 소재삼아 농담을 주고받고, 아이돌 가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말은 과묵(?)했던 저를 크게 웃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말은 서로의 미묘한 시선이나 출렁이는 감정의 리듬을 간과하게 했습니다. 세 평 남짓한 주방에서 우리는 입을 크게 벌려 서로를 다그쳤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동사와 형용사에 주워들은 토박이 단어들을 듬성듬성 꿰어 그에게 다가서자, 그는 몸을 돌려 자신의 모국어를 등 뒤로 내뱉었습니다.
양철 기름통에 앉아 담배를 뻑뻑 피워대던 주방장은 어느 날 갑자기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기름통에 널브러진 그의 양념 묻은 앞치마만 물끄러미 보아야 했습니다. 무수한 말들이 쌓여 상대를 온전히 볼 수 없는 벽이 생겼는지도 모릅니다.
소통이란 화두가 공산품처럼 넘쳐납니다. 하지만 단순한 말의 교환에 감히 소통이란 단어를 접붙일 수 없습니다. 말이 없었던 자리가 편했던 이유는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배려가 그곳에 정중하게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대화는 넘쳐나지만 상대가 편히 쉴 자리 하나 준비 못하는, 소통이 마치 난시처럼 두통으로 읽히는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