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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원인 Feb 17. 2017

자존심

민.원.상.담.실









모처럼 딸아이와 놀아주려고 궁리하다가 유치원에서 가지고 온 숫자 퍼즐이 생각났습니다. 

색색의 플라스틱 숫자들이 1부터 10까지 들어있고 더하기 빼기 부호가 있는 상자를 꺼내 식탁 위에 펼쳤습니다.


2 더하기 7은 뭘까? 


아이는 얼른 분홍색 9자를 집어 듭니다. 


자, 그럼 12 더하기 6은 뭘까?


아이는 열 자리 숫자에 당황했는지 조금 전처럼 선뜻 숫자를 집어 들지 못합니다.


괜찮아, 천천히 생각해 봐. 


한참이 지나도 딸아이는 식탁 위에 고개를 숙이고 머뭇거립니다. 가만 보니 식탁 밑에서 열 손가락을 꼽으며 열심히 계산하는 중입니다. 


지민아, 그냥 손가락 올려놓고 편하게 세어봐. 손가락은 우리 몸에 달린  훌륭한 계산기야. 


아이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듭니다. 


필요하면 아빠 발가락도 빌려줄게. 


습진 걸린 발을 식탁 위에 척 올려놓습니다. 아내가 아연실색하며 서둘러 반찬통을 닫습니다. 


나 이거 안 할래!


아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려 한 아빠의 넉살인데 딸아이는 식탁을 박차고 일어나더니 소파로 가서 배를 깔고 엎드립니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너 이리 안 와!


그네를 타던 둘째도 놀라 멈춰 섭니다. 


진짜 창피한 게 뭔지 알아?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지 못하는 거야.  잘못하고, 실수하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지민이처럼 모르는 걸 감추는 게 진짜 부끄러운 거야. 


모처럼 딸아이와 놀아주려고 했는데 저녁 잘 먹고 괜히 큰소리입니다. 윽박지른다고 되는 일이 아닌데, 마치 전자제품처럼 그렇게 쾅 쥐어박으면 빨갛게 전원 불이 올라오듯 아이도 네 아빠 그렇게 할게요. 할 줄 알았나 봅니다. 휴, 갈길이 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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