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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원인 Mar 03. 2017

양화대교

민.원.상.담.실









일산에 사시는 아버지가 한 달에 두어 번 전의에 오실 때마다 손녀들에게 용돈을 주십니다. 

모서리마다 해지어진 지갑에서 지갑만큼이나 낡은 지폐를 꺼냅니다. 아버지 택시를 탄 승객들이 수없이 비비적거렸을 그 지폐는 기름에 절어 생기 없이 바람에 나부낍니다. 

돈의 가치를 색깔로 판단하는 어린 손녀들은 초겨울 언 밭에 드러누운 배추잎 같은 그 돈을 받고서 아무 감흥 없이 교육받은(?) 대로 엄마에게 달려갑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매번 내려올 때마다 돈을 주십니다. 할아버지 무안하지 않게 얼른 받아하고 두 딸의 등을 떠밀면서도, 청소년 시절 유행하던 나이키 운동화를 샀다고 버럭 야단을 치던 젊은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그 운동화 값만 한 돈 받기를 주저하게 됩니다. 투게더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자식들보다 더 오래 숟가락을 붙들고 있었던 사람과 동일인이 맞는지 의심하게 됩니다. 

월급을 받다가 택시 일을 하며 천 원 이천 원씩 돈을 벌다 보니 분식집에서 천 원 이천 원 하는 끼니들도 돈 주고 먹기를 주저하게 된다는, 일종의 직업병을 앓는 아버지였기에 넙죽 받아 넣기 어렵습니다.      


분가하기 전, 심야 손님이 많다며 일하러 나가신 아버지가 새벽 두세 시까지 귀가하지 않을 때 전화라도 할라치면 아버지는 걱정 말고 자라며 급히 전화를 끊었습니다. 

불안함에 잠 못 들고 뒤척일 무렵, 도어록 버튼을 누르는 소리가 들리며 아버지가 현관에 들어섭니다. 

야심한 밤이라 아버지의 움직임은 부산스럽게 귓가에 들립니다. 


구두를 벗고 방에 들어가 먼저 장롱문을 엽니다. 벌이가 좋았는지 돈을 세는 소리가 제법 길게 들립니다. 중간중간 손가락에 침 뱉는 소리가 추임새처럼 펄럭이는 지폐 소리에 박차를 가합니다. 딸깍하며 아버지의 비밀금고(식구 모두가 알고 있는)인 가운데 장롱문이 닫히고 수돗물을 세게 틀어 손과 얼굴을 씻고 냉장고에서 물통을 꺼내 찬물을 틀이킵니다. 건축 공사자들이 삼겹살 기름으로 목에 낀 먼지를 씻듯이, 아버지의 하루는 찬물 한 잔으로 마무리됩니다. 구두쇠답습니다. 


태권도에 온 아이들이 아빠 엄마가 이런저런 것들을 잘 안 사 준다며 투덜거립니다. 

아이들에게 말하지는 않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늦은 저녁 목장갑으로 작업복에 묻은 먼지를 털며 그 아이의 수업료를 내기 위해 오신 지친 표정의 아빠를... 개가 짖어대는 새까만 밤, 회사 통근버스에서 내려 퉁퉁 부은 다리를 끌며 걸어가는 이가 내가 가르친 그 아이의 엄마임을.... 

칠순이 넘은 아버지는 오늘도 자식들을 위해 양화대교를 건넙니다.  

행복하자, 우리. 아프지 말고...아프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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