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상.담.실
그 옆 좁은 상에 외숙모와 사촌누나들이 세운 무릎 위에 턱을 괴고 밥을 먹었습니다. 툇마루를 넘어온 바람은 옹기처럼 틈 없이 둘러앉은 여자들을 무심히 지나, 밥을 씹느라 뿜어내는 사내들의 더운 기를 구석구석 훑어냈습니다. 찬이나 물이라도 떨어지면 남자들은 호기롭게 생선! 물!이라고 외쳤습니다. 할아버지는 어른이었고, 외삼촌은 장손이었으며, 두 형은 장차 큰 일해서 집안을 일으킬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가장(家長)이었습니다.
권위를 덜어낸 담백한 가장상을 만들어보겠다는 야무진 꿈은, 결혼 5년 만에 개꿈보다 허무하게 깨지고 잊혀 갑니다. 함께 일하고 들어와도 집 안의 작고 소소한 일들은 당연히 아내의 자리이며, 가장이 나설 자리는 따로 있다는, 탈모 유전자보다 더 강력한 대한민국 남성 고유의 유전자 신호에 이끌립니다.
어쩌면 아내라는 존재를 무촌의 동반자가 아닌, 아이들의 엄마이자, 이제 노모를 대신해 뜨신 밥과 상한 마음을 위로해줄 엄마로 생각하고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그러고는 푹신한 소파에 제 몸 하나 맡기고 리모컨을 집어 듭니다. 그 자리는 가장의 자리가 아닌, 가족과 제일 먼발치 물러나 있는 가장자리라는 걸 모르고 말입니다.
훗날 이 답 없는 사내는 가장이랍시고 두 딸아이에게 자신이 가지지 못한 지적능력과 넓은 도량을 요구할지도 모릅니다. 요즘도 집에 돌아와 육 개월에 접어든 시원이를 장모께 맡기고, 아내에게 “지민이 입냄새 나더라” 입으로 제 일 다하고 드러눕는 모양새를 보면 그럴 가능성이 농후해 보입니다.
유별한 아내 사랑으로 대한민국 남편들의 공적이 된 가수 션, 그는 첫딸이 태어난 날부터 하루에 1만 원씩 모아 모 대학 어린이 난치병 돕기 성금으로 내놓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1년 뒤 그 병원을 방문해 성금을 전달하고 케이크를 자른 것으로 돌잔치를 대신했습니다.
자녀가 어느 대학을 나오고 어느 대기업에 들어가 연봉 얼마를 받는지가 자랑이 되어버린 요즘(대기업에 들어간 어머니 친구 아들 때문에 저도 지금껏 맘고생 중입니다), 그는 삶의 열정이 어디에서 나오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의 열정은 가족과 이웃이다. 내 아이가 잘되는 것을 바라기보다 내 아이를 통해 세상이 따뜻해지고 밝아지길 바란다.
내가 입으로만 꿈꾸던 것을 그가 지금 실천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