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from island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원인 Mar 29. 2017

두려움

민.원.상.담.실





아이들 대부분이 겨루기를 부담스러워합니다. 

태권도 차량에 올라설 때면 으레 “오늘 겨루기 하죠?” 하고 미리 실망함으로 자신의 감정을 보호한 채 묻곤 합니다. 월간 계획표에 겨루기라고 씌어 있는 걸 보고는 적당히 둘러대고 수련을 빼먹는 경우도 있지요. 그런 풍경이 낯설지 않습니다. 기억 한편에, 도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흙먼지를 내며 내빼는 열 살의 제 모습이 지금 아이들과 데칼코마니처럼 틀어짐 없이 꼭 맞습니다. 

간혹 겨루기를 좋아한다며 어깨에 힘 좀 준 아이들도 자기보다 센 상대를 만나면 비 맞은 강아지를 닮은 눈망울이 되어 그렁그렁합니다. 

머리에 쓴 단단한 헤드기어에, 두터운 호구로 몸통을 감싸고, 정강이 보호대에 낭심 보호대까지 꼼꼼하게 온몸을 두르고 상대와 맞서지만, 보호대를 채울 수 없는 여린 마음은 두려움으로 두방망이질 칩니다. 겁먹지 말라고 채근하는 제 목소리가 오히려 제 귓가를 먹먹하게 합니다. 겁먹고 있었던 건 혹 자신이 아니었을까 하고 말입니다. 

모든 게 채비되지 않으면 시도하지 않는 모습. 손해 볼까 두렵고, 그렇게 허물어지는 스스로를 목도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나보다 강해 보이는 상대와 겨루고 싶지 않아 도망치듯 내달렸던 열 살의 발걸음은 아직 멈출 줄 모르고 있었습니다. 


“한 번 해 봐! 한 대 맞아주고 치고 들어가!” 


아내가 아이들에게 큰 소리로 주문합니다. 윽박 때문인지, 아이들이 크게 기합을 지르고 상대에게 달려듭니다. 저축은 많이 못해도 매달 소고기 먹습니다. 둘째 아이는 감기 한 번 안 걸리고 두 발을 떼었습니다. 얼마 전 수술을 받으신 아버지는 오늘 퇴원하십니다. 이곳저곳 튼실한 보호대가 제 삶을 감싸주고 있었습니다. 이제 남은 건... 아직 말랑한 제 마음뿐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청춘예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