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상.담.실
태권도 차량에 올라설 때면 으레 “오늘 겨루기 하죠?” 하고 미리 실망함으로 자신의 감정을 보호한 채 묻곤 합니다. 월간 계획표에 겨루기라고 씌어 있는 걸 보고는 적당히 둘러대고 수련을 빼먹는 경우도 있지요. 그런 풍경이 낯설지 않습니다. 기억 한편에, 도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흙먼지를 내며 내빼는 열 살의 제 모습이 지금 아이들과 데칼코마니처럼 틀어짐 없이 꼭 맞습니다.
간혹 겨루기를 좋아한다며 어깨에 힘 좀 준 아이들도 자기보다 센 상대를 만나면 비 맞은 강아지를 닮은 눈망울이 되어 그렁그렁합니다.
머리에 쓴 단단한 헤드기어에, 두터운 호구로 몸통을 감싸고, 정강이 보호대에 낭심 보호대까지 꼼꼼하게 온몸을 두르고 상대와 맞서지만, 보호대를 채울 수 없는 여린 마음은 두려움으로 두방망이질 칩니다. 겁먹지 말라고 채근하는 제 목소리가 오히려 제 귓가를 먹먹하게 합니다. 겁먹고 있었던 건 혹 자신이 아니었을까 하고 말입니다.
모든 게 채비되지 않으면 시도하지 않는 모습. 손해 볼까 두렵고, 그렇게 허물어지는 스스로를 목도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나보다 강해 보이는 상대와 겨루고 싶지 않아 도망치듯 내달렸던 열 살의 발걸음은 아직 멈출 줄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아이들에게 큰 소리로 주문합니다. 윽박 때문인지, 아이들이 크게 기합을 지르고 상대에게 달려듭니다. 저축은 많이 못해도 매달 소고기 먹습니다. 둘째 아이는 감기 한 번 안 걸리고 두 발을 떼었습니다. 얼마 전 수술을 받으신 아버지는 오늘 퇴원하십니다. 이곳저곳 튼실한 보호대가 제 삶을 감싸주고 있었습니다. 이제 남은 건... 아직 말랑한 제 마음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