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사이비 셋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휴헌 간호윤 Oct 03. 2021

병을 앓다 보면 의사가 된다

무식꾼도 한 군데 골독하니 정성만 쏟으면 명필이 된다

병을 앓다 보면 의사가 된다


‘구병성의(久病成醫)’라는 말이 있다.  풀이하자면 ‘오랫동안 병을 앓다 보면 자신이 의사가 된다’라는 말이다.


저 말을 곰곰 뜯어보면 그저 골독하니 들이는 정성이다. 그래 저 물 건너 서쪽에 사는 에릭슨이란 이는 이것을 연구하여 ‘10년의 법칙’이라는 규칙을 만들어 냈으며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라는 책에서도 이 ‘1만 시간의 법칙’을 성공의 비결로 들고 있다. 1만 시간이란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3시간씩 10년을 투자해야 한다는 노력에 대한 계산이다. 이 또한 최상의 목표를 이루는데 걸리는 정성의 시간을 대략 10년이나 잡는다는 의미이다. 우리말에도 ‘10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이나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이 말이 저 말이다. 10년 노력을 했거늘 어찌 변하지 않겠는가. 87,600시간이거늘. 10년×365일=3,650일×24시간=87,600시간.


그러나 사실 말이야 바른말이지만, 공부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오죽하였으면 “이놈의 소 《맹자》를 가르칠까 보다”라는 이야기가 있으랴. 소가 게으름을 피우니, 공포감을 한껏 주는 소리이다. 예로부터 공부하는 것을 “공자 왈 맹자 왈”이라 하니, 맹자를 가르친다 함은 공부를 말함이다.


나 역시 강산이 두서너 번 바뀌도록 국문학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 헌데 나는 ‘의사’가 못 되려는지, 병이 꽤 깊어 명치에 박혔는데도 도통 진척이 없다. 그래도 이 고질병을 자꾸만 더 앓으련다. 정성을 다해 오늘도 입을 앙다물고 당조짐을 해대며 끙끙 앓으련다. 그래 눈처럼 흰 설화전(雪華牋) 한 폭을 마음에 깔아 놓고 ‘정성(精誠)’ 두 글자를 써 본다.


‘정성’ 이야기가 나왔으니, ‘천하명필’ 이야기 한 자락 여담으로 놓겠다.


옛날에 한 부자가 금병풍을 꾸며 놓고 천하명필에게 글씨를 받으려 했다. 한 무식꾼이 후한 대접을 해 준다는 데 끌려 그만 명필인 체 하여 찾아들었다. 허나, 이 무식꾼. 명필은커녕 겨우 ‘한 일자(一)’만 알 뿐이었다. 재촉하는 사람들에게 ‘한 달 동안 정신을 가다듬어야 한다’ 속이고, ‘먹을 간다’하고 또 한 달을, ‘붓을 만진다’고 다시 한 달을 보내며 좋은 음식만 축냈다.


날이 가고 달을 보내며 걱정이 태산인 무식꾼, 일이 꼬여 그저 왼새끼만 꼬며 석 달을 보내자 이제는 핑곗거리도 없고 하여 ‘한일 자’만이라도 써 놓고 도망치려 하였다. 그래 정신을 가다듬고 한 달 동안 매만진 붓으로 먹물을 듬뿍 묻혀 이쪽에서 저쪽으로 일 획을 죽 그었다. 그리고는 냅다 뛰어 ‘오금아 날 살려라’ 뺑소니를 놓다가는 그만 댓돌에서 뒹굴며 나자빠져 죽어 버렸다.


주인은 좋은 병풍 잃고 송장 치고 하여 심기가 여간 사나운 게 아니었다. 쓸모없는 병풍은 접어 광에다 쳐 넣어 버렸다. 그런데 그날부터 밤이면 상서롭지 않은 광채가 광에서 났다.

 

어떤 박물군자가 찾았기에 이 이야기를 하고 그 병풍을 보이니 깜짝 놀라며 말했다.  

“천하명필이오. 사람 목숨 하나는 들였겠소. 밤마다 광에서 나는 빛은 이 글씨의 상서로운 기운 때문이오. 무식꾼이 석 달 동안 얻어먹으면서 노상 글씨 때문에 좀 걱정을 했겠소. 석 달이나 온통 글씨 생각만 골독하니 하다가 한 획을 그었으니, 그 ‘한 일자’에 온 정성이 다 들어간 것 아니오. 아, 그러니 남은 힘이 있겠소. 죽을 수밖에”

무식꾼도 한 군데 골독하니 정성만 쏟으면 명필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할머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