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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헌 간호윤 Oct 07. 2021

<정중여산(靜重如山)>

알면서 행하지 못함이다

<정중여산(靜重如山)>

 

나에게는 ‘지긋지긋한 인생 불변의 법칙’이 있다. 불편한 속내를 그대로 드러낸다는 점이다. 드러내 놓고 보면 그 민망함은 문자 몇 자로 형언키 어렵다. 이를 고치고자 태산처럼 흔들림 없는 마음, 고요하고 무겁기 산 같자고 ‘정중여산(靜重如山)’ 넉 자를 책상에 붙여 놓았는데도 도무지 효과가 없다. 

 

어제가 그랬다. 

“이런, 제길헐! 저 놈들은 저렇게 철면피처럼 사는데---.”

어제 저물녘 나도 모르게 TV인지 뭔지를 잠깐 보다가 욱하니 튀어나온 말이다. ‘휘청거리는 오후’가 따로 없다. 그래, 살다 보면 그런 날이 있다. 아무 일을 하지 않고 칭찬을 들은 날이 있는 반면 애꿎게 욕을 먹는 날이 있고 “허어 이런!” 탄식이 나올 만큼 기막힌 날도 있는 것도 모르는 바 아니다. 문제는 모르는 바 아니나, 알면서 행하지 못함이다. 

 

벌컥벌컥 찬 물을 두 어 바가지를 퍼 먹어도, 휴휴헌을 나가 어슬렁어슬렁 한적한 공원을 거닐어도, 고인의 진중한 문자를 들이부어도, 도무지 모과나무처럼 양장(羊腸)처럼  뒤틀어지고 꼬부라진 심사는 펴질 줄을 모른다. 세상사 돌아가는 꼴이 도무지 내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된다. 

 

혹 해원(解冤)의 기막힌 명수(名手)인 자음과 모음을 불러 모아도 해결은커녕 난망(難望)만 거듭할 뿐이다. 더욱이 날씨까지 잿빛 하늘로 멜랑콜리하니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설상가상이다. 떨떠름한 어휘들만 망둥어 튀어 오르듯 하니, 글 낚싯대를 제 아무리 쥐고 있어야 송사리 떼조차도 만나지 못한다.

 

이 지긋지긋한 불변의 법칙, 아무튼 속내를 잠재울 방법을 무시로 찾는다만. 찾지만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애꿎은 ‘정중여산’ 글귀만 뚫어지게 쳐다보니, 이제는 글자조차 개미가 흩어지 듯한다. 


혹 걸원(乞願)하면 인생 두어 수(手) 쯤은 얻을지 모르나 이 또한 걸원할 대상이 없다. 죄없는 정중여산을 내치고 대구(對句)인 물령망동(勿令妄動,행동을 경솔히 말것)을 써 놓고 노려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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