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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헌 간호윤 Oct 08. 2021

지금 내 벗은 누구인가?

나이를 더할수록 벗에 대한 생각이 복잡하다. 전에는 어린 시절 함께한 동무가 그저 벗인 줄 여겼다. 연암 선생은 친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자문을 구해본다. 선생의 「회성원집발繪聲園集跋, 중국인 곽집환郭執桓의 시집」에는 이 우정이 비교적 소상히 기록되어 있으니 옮기면 이렇다.


옛날에 친구朋友를 말하는 자는 혹 ‘제이오(第二吾, 제2의 자아)’라 부르기도 하고 혹 ‘주선인(周旋人, 자신의 일처럼 돌보아 주는 사람)’이라고도 하였다. 이런 까닭에 한자를 만든 사람이 ‘우羽’ 자를 빌려와서 ‘붕朋’ 자를 만들고 ‘수手’ 자와 ‘우又’ 자로 ‘우友’ 자를 만들었다. 말하자면 새에게 두 날개가 있고 사람이 두 손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말하는 자는 “상우천고(尙友千古, 천고千古의 고인古人을 벗한다)”라 하니 답답하구나, 이 말이여! 천고의 고인은 이미 죽어 변화하여 흩날리는 티끌이나 서늘한 바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즉 장차 누가 나를 위해 제이오第二吾가 되며, 누가 나를 위해 주선인周旋人이 될 것인가.

古之言朋友者 或稱第二吾 或稱周旋人 是故造字者 羽借爲朋 手又爲友 言若鳥之兩羽 而人之有兩手也 然而說者曰 尙友千古 鬱陶哉 是言也 千古之人 已化爲飄塵泠風 則其將誰爲吾第二 誰爲吾周旋耶?


이 글에서 우리는 선생의 친구에 대한 생각 두 가지를 읽을 수 있다. 하나는 ‘제이오第二吾, 제2의 자아’요, ‘주선인周旋人, 자신의 일처럼 돌보아 주는 사람’이라 할 만큼 매우 가깝게 여긴다는 의미이다.


또 하나는 친구란 상우천고尙友千古가 아니라는 점이다. ‘상우천고’란, 중국의 양웅揚雄이 태현경太玄經을 지을 때 나온 고사성어이다. 이 책이 너무 어려워 곁에 있던 이가 그 어려운 책을 누가 읽겠느냐고 퉁을 주자, “나는 천년 뒤의 양자운을 기다릴 뿐일세”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천 년 뒤에 자기를 알아줄 벗이 나타난들 이왕지사已往之事이니, 얼굴도 볼 수 없고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하니 어찌 친구가 될 수 있겠나. 그런데 이 말이 우리나라에서는 ‘천고의 옛 벗을 숭상한다’거나 ‘책을 벗 삼음’ 등 제법 좋게 받아들였고 연암은 이 점을 정확하게 지적한 것이다.


연암은 이러한 벗 사귐을 용납할 수 없었다. 따라서 뒷 마디를 다음과 같이 쓴다.


… 즉 누가 능히 답답하게 위로 천고의 앞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어리석게 천 년 뒤를 더디 기다리겠는가? 이로 말미암아 본다면 벗은 마땅히 지금의 당시 세상에서 구해야 함이 분명하다 하겠다.

… 則孰能鬱鬱然 上溯千古之前 昧昧乎遲待千歲之後哉 由是觀之 友之必求於現在之當世也 明矣


벗’은 과거가 아닌 현재성을 갖는다는 성찰이다. 이로 미루어 보면 벗(친구)은 먼 과거에서 불러올 수 있는 학문도 과거의 소꿉놀이 동무도 아니다. ‘벗은 늘 현재 내 삶의 주변에 있다’하니 지금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벗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 벗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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