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1)

소설로 부르는 고려 속요, 그 몸의 노래여

by 휴헌 간호윤

1장. 덜커덩 방아나 찧어 히얘.


노래는 손 없어도 잘만 마음을 흔든다.


덜커덩 방아나 찧어 히얘,

거친 밥이나 지어서 히얘,

아버님 어머님께 드리옵고 히야해,

남거든 내가 먹으리, 히야해 히야해.<상저가>

덜커덩 방아나 찧어 히얘,

거친 밥이나 지어서 히얘,

돌이 엄니는 노래를 부르자 마음이 편해졌다. 돌이 엄니의 노랫소리가 부엌을 나와 울타리를 넘었다. 노랫소리에는 힘들어하면서도 맑은 힘이 있었다. 돌이 엄니, 경주가 고향이라 경주댁인 돌이 엄니의 세상 첫소리는 꽤나 컸더란다. 돌이의 외할아버지는 돌이 엄니가 사내아이인지 알았고 외할머니는 노래를 잘할 줄 알았단다. 돌이 엄니는 그래서이지 저래서인지 노래를 잘한다. 오이 붇듯 달 붇듯 흘러가는 세월을 살아내기 위해 물리도록 노래를 부르고 불렀다. 돌이 엄니가 노래요, 노래가 돌이 엄니였다. 꽃님이도 돌이도 엄니의 자장가를 들으며 이만큼 컸다.


돌이는 물리도록 들은 엄니의 노랫소리지만 이 노랜 좀 각별하다. 돌이 엄니는 인물만큼이나 고운 목소리를 지녀 노랫가락이 밝고 맑았다. 돌이 아버지는 돌이 엄니가 노래를 부를 때면 가만히 듣고는 빙그레 웃었지만 이 노래만큼은 얼굴 표정이 슬퍼보였다. 돌이는 속가량으로 방아를 찧으며 부르는 이 노래는 외할머니를 미워해선지 그리워해서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기야, 돌이 할머니나 할아버지도 무신란에 얽매여 멸문을 당했기에 따지자면 외가나 친가나 다를 바 없었다.

“돌아! 왜 노래를 부르냐꼬. 사는 게 고비에 인삼이요, 기침에 재채기 아니냐. 매디매디 옹이요, 구배구배 생채기인 시상을 사는 맴을 색키는 데는 이 노래가 제일인기라. 생딴전을 붙이는 기 아니라 살아내기 위해서 부르지 안카나. 니도 한번 방아를 찧어봐라. 이리 찧고 저리 찧고 손바닥은 쓰리고 허리는 아프재. 그렇게 왼종일 찧어야 보리 몇 되 건지기 어려우니 신세타령을 우째 안 카겠나. 내 부르는 이 노래는 그럴 때 부르는 기다.

그만두자, 니도 아는 야그를 이 어매가 괜히 한다. 아무튼 이 노래를 부르면 기운이 한결 나진다 앙카나. 나만 부른 게 아니제. 이 나라 고려 여인들은 다 부른다카이. 그렇게 사는 거재.”

언젠가 돌이가, “왜 엄니는 노래를 달고 사시여?”

라고 물은 것에 대한 돌이 엄니의 대답이었다. 돌이 엄니는 그때 일손을 놓고는 돌이 손을 잡으며 이런 말을 하였다. 돌이는 엄니의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다. 태어나서 엄니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커서 그런지 노래가 좋기는 하지만 엄니가 이 노래를 부를 때면 왠지 한여름 소낙비 몰아치듯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도 오늘은 여느 때에 비해 돌이 엄니의 얼굴도 목소리도 환하고 밝다. 돌이는 ‘아마 아버지가 오기 때문인가 보다.’라고 생각하였다.

오늘이 섣달그믐이니, 내일이면 정월초하루 설날이다. 돌이 아버지는 행상을 다니지만 추석명절과 설은 꼭 집에서 쇤다. 그런데 올 추석에는 함께 행상을 다니는 수리 아버지 편에 꽃님이의 꽃신과 말린 북어, 보리쌀 서 말만 보내었다. 수리 아버지는 경주 어딘가에 좋은 노래가 있다며 이를 채집해 가지고 설날에나 온다는 말도 전해 주었다.

돌이가 엄니의 노랫소리를 뒤로하고 떡전거리에 막 나섰을 때다. 저만치서 달님이가 유랑광대들 틈을 헤치고 물을 길어 제 집으로 들어간다. 언제부턴가 돌이는 달님이만 보면 공연히 들썽들썽하니 마음이 마구 들까분다. 어쩌다가 눈이라도 마주치면 귀밑까지 붉어지는 것이 얼굴에 감실감실 콧수염이 난 한 두 해 사이로 더하다.

돌이는 ‘우물둥치가 달님이네 집하고 가깝기에 망정이지.…나 원 참, 달님이 엄니는 곰이 헝은 내버려두고 꼭 달님이만 저렇게 시킨다니까’라고 중얼거렸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오가는데 물동이를 대신 들어다 줄만큼 돌이의 넉살이 좋지도 못하였다.


달님이는 반듯한 가리마에 똬리를 얹고 물동이를 사뿐히 이고는 한 손으로 싹 치마를 여미고 물 한 방울도 엎지르지 않으려 조심조심 걷는 걸음새가 물오른 버들 휘어지듯 낭창거렸다. 돌이는 그런 달님이의 발소리까지도 예뻤다. 돌이는 어디에 있든 달님이의 자박자박 걷는 발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돌이는 달님이만 보고 있으면 이 떡전거리의 그 많은 여자 애들은 반눈에도 차지 않는다. 어디가 예쁘다고 콕 집어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뜨덤뜨덤 본다 해도, 하여튼 그렇다고 여겼다. 돌이가 가슴이 도근도근하고 얼굴까지 화끈거려 누가 볼까봐 눈길을 먼 행길가로 옮겼을 때다.

“주눔! 주눔! 주눔 잡아라. 주눔 잡아!”

사투리도 아닌 것이 생 돼지 목 따는 듯한 목소리가 돌이의 귓가에 채 들어서 나가기도 전이었다. 돌이의 눈에 달님이 언니인 곰이가 회회아비네 만두가게에서 이쪽으로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돌이는 달님이가 물동이를 이고 오는 것에 정신이 팔렸기에 반대편에서 일어 난 일을 전연 알지 못하였다.

곰이 뒤를 쫓는 것은 회회아비였다.

곰이의 오른손은 만두 하나가 움켜줘 있었다.

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곰이는 회회아비에게 잡혀 며칠 동안 자리보전을 하였다.

“주눔 잡아!”

고함을 치며 달려가는 회회아비의 비곗덩어리 배가 흔들렸지만 원체 키가 크기에 한 발자국이면 곰이의 뒷덜미가 낚일 듯 했다. 막 집으로 들어가려던 달님이도 물동이를 이고는 그 자리에 우뚝 서버렸다.

길 가던 사람들이 달음박질은 이내 싱겁게 끝나버리고 곰이는 회회아비에게 죽도록 맞을 것이라는 생각을 끝내기도 전에 회회아비가 무엇엔가 걸려 넘어졌다.

돌이가 슬며시 옆집 줄똥이네 거름통을 밀어서였다. 회회아비는 거름통에 다리가 걸려 그대로 고꾸라지며 오줌을 뒤집어쓰고는 나뒹굴었다.


달님이는 하마터면 물동이를 그대로 떨어뜨리고 말 뻔하였다. 이제는 곰이 언니가 아니라 돌이가 회회아비에게 요절날 날판이었다. 순간 달님이는 ‘돌이의 성격에 곰이 언니가 맞는 것을 그냥 보지도 않겠지만 하필이면 그때 돌이가 볼 것은 뭐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떠 누무 시끼야!”

회회아비가 욕지꺼리를 하며 바지춤을 잡고는 일어서며 돌이를 쳐다보았다. 회회아비는 생긴 것도 꼭 멧돼지 상판대기에 목소리도 돼지 멱따는 목소리요, 파랗고 움푹 들어간 큰 눈을 끔뻑일 때면 꼭 얼음에 자빠진 쇠 눈깔 같았다. 더구나 몽고군을 등에 업고 있었다. 그 검은 털이 수북한 옴두꺼비 같은 손모가지와 가슴팍에 숭숭한 털북숭이를 드러내고 떡전거리를 휘저을 때면 누구도 댓거리하지 못하였다. 그럴 때면 사람들은 “캭!”하고 가래를 끌어 올려서는 “퇘!”하고 침을 뱉고 가버리는 상책이었다.

돌이가 태어난 떡전거리는 야트막한 거북봉 산자락이 울멍줄멍 내려오다 착 까부라진 느치미란 곳이다. 떡전거리는 충청, 경상, 전라, 삼남으로 통하는 큰 길목이다. 그만큼 바람도 많고 소문도 많아 꽤 심심한 곳은 아니었다. 오가는 사람들에게 떡을 파는 집이 많아 떡전거리, 혹은 병점(餠店)이라고들 부른다. 지금은 떡집만큼 만두가게도 많이 들어섰지만, 몽고군이 여섯 차례나 쳐들어와 설쳐대는 지금에도 떡전거리만은 사람들로 흥성거렸다. 이런 떡전거리에 광대패까지 노랫소리를 앞세우고 들어오면 거리는 더욱 사람들로 넘쳐났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낭창낭창하는 광대패의 소리를 따라 아이들도 뒤를 따랐다. 추운 겨울이건만 광대들이 길을 메우고 들어오면 양 길가 좌판을 사이에 두고 사람들이 양쪽으로 길을 내주었다. 사람들이 많은 이 떡전거리는 떠도는 꼭두극을 하는 괴뢰패와 광대패라면 꼭 들렸다. 거리상으로도 길손들이 수주(水州,오늘 날의 수원)를 지나 상유천, 하유천, 대황교를 지나 이 떡전거리쯤 오면 배가 출출해졌다. 떡전거리에는 술집과 국밥집도 있지만 요기를 달래는 데는 역시 떡이 제일이라서 그런지 떡집이 가장 많았다.

더구나 떡전거리 위에 있는 안녕읍성과 황계, 반정 등 주변은 넓은 논들이다. 수주는 이름처럼 물이 잘 나와서 질 좋은 쌀이 많이 생산되기에 자연 떡전거리와 잘 들어맞았다. 돌이네 집도 몇 해 전까지 이 거리에서 떡집을 하였지만 돌이 아버지의 꿈은 신발전이었다.

한번은 돌이 아버지가 돌이를 데리고 안녕읍성에 들어가 쇠전 옆에 붙은 신발전 앞에서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돌이야! 두고 봐라. 언젠가 아부지가 이 읍성 안에다 저 신발전을 낼 테다. 그래, 니 고생만하는 엄니 이쁜 신발 한번 신어보게 말이다 잉. 돌이야! 사람이 사는 게 발이다. 발이 있는 곳이 내가 사는 곳이란다. 그러니 발루 살아가는 것이지. 그래,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십 리를 가기 전에는 함부로 콩이니 팥이니 말할 수 없는 법이란다. 왜 사람마다 다 신을 신고 걷는 인생길이 다르지 않니. 나는 니 엄니를 만났을 때 그 발을 보았지. 니 엄니가 노래를 얼마나 잘하는지 너도 알지?”

“야, 아부지도 참, 시삼스럽게. 아부지가 엄니의 노랫소리에 반했다는 말은 엄니한테두 많이 들었시우.”

“그래, 그런데 말이다. 이 아부지가 네 엄니를 봤을 때, 얼마나 가슴이 아프든지. 그래, 그 고운 네 엄니 발은 다 떨어진 짚신조차 제대로 신지 못하고 있었지. 그 발로 걸으며 노래를 부른 것이지. 살아가는 몸을 지탱해주는 것이 발인데 말이다. 그나마 노래를 불렀기에 힘을 내 산 것이지. 돌아! 노래는 살아가는 힘이 있단다. 그래, 이 아부지는 엄니를 위해 우리 고려의 노래집을 만들어 주려는 거다. 참 그러고 보니 너 글공부를 좀 해야 하는데…”

“예 글공부유. 에유, 그런 것을 해서 뭐해유. 써 먹을 데도 없는데.”

“돌이야! 그렇지 않다. 아부지가 엄니를 위해 만드는 속요집도 니가 읽어야하지 않겠니. 지금은 어쩔 수 없다만 아부지는 네가 꼭 글공부를 했으면 한다. 여하튼 그것은 다음에 이야기하자. 돌이야! 나는 니 엄니 부르튼 발에 신발 하나는 제대로 신겨주는 것이 소원이란다. 지금은 이렇지만 너하고 꽃님이에게도 좋은 옷 한 벌 지어 입히고 좋은 신 한 켤레씩 신겨주는 날이 오겠지. 우리 그때까지 들메끈 고쳐 매며 살아보자.”

그러며 손을 어찌나 꽉 움켜쥐던 지, 돌이의 그때 눈물을 찔끔 짰었다. 그 시절만 해도 돌이의 집은 이 떡전거리에서 제법 밥술깨나 먹는 떡집 가운데 하나였다. 사람들은 돌이 아버지의 떡 찧는 솜씨와 돌이 엄니의 떡고물 무치는 솜씨도 야물지만 두 사람의 노랫소리가 좋아서 그렇게 유난히 떡이 맛있는 것이라고들 하였다.

떡을 만들 때면 돌이 아버지가 “덜커덩 방아나 찧어 히얘,”하고 앞소리를 하면 돌이 어머니가 “거친 밥이나 지어서 히얘,”라고 뒷소리를 받았다. 돌이 아버지는 이 노래를 싫어하면서도 떡을 만들며 부를 때면 함께 소리를 맞춰주었다.


그런데 회회아비가 들어와 만두를 팔고부터는 여러 떡집이 망했다. 회회아비네 만두가게가 돌이네 떡집이었다. 사람 좋기로 소문 난 미루 아버지조차,

“회회아비란 놈, 참 양심은 쌈지에 메다꽂아 동아줄로 친친 동여매 둔 놈이더군. 저 낳고 제 엄니가 먹은 미역이 영 아까운 놈이야!”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 정도였다. 돌이는 그래 회회아비놈의 심사는 샛바람 안개 속에 수수잎 같이 꼬였고 모과나무처럼 뒤틀어져버린 저 몽고놈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던 않다고 생각했다. 돌이가 회회아비에게 맞아 죽는 한이 있어도 발을 건 데에는 저러한 이유가 있었다.

회회아비가 그 자빠진 쇠 눈깔 같은 눈을 더욱 부릅뜨고는, 뒷걸음질을 치는 돌이의 멱살을 억센 손아귀로 막 틀어잡으려 할 때였다.



“이 놈의 아들 생겨 몽곳 놈,

이 놈의 딸 생겨 몽곳 년.”

아이들이 노래를 불렀다. 곱동이, 동고리, 매아지였다. 이 노래는 온 고려 백정(白丁)

들이 모두 아는 가장 몹쓸 욕이기에 회회아비라고 모를 턱이 없었다.

회회아비는 불같이 화를 내며 돌이를 내동댕이치고 옆에 있던 지게막대기를 들고 아이들을 쫓아갔다.

어느새 뒤돌아섰는지 곰이는,

회회아비에게 혀를 날름거리며 엉덩춤을 추고 노래를 같이 불렀다.

“아나 쑥떡이다!”

그러고는 집어왔던 만두를 던지고는 다시 줄행랑을 놓는다. 회회아비는 끝내 아이들을 하나도 붙잡지 못하였고 돌이는 이틈에 집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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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 돌아!”

언제나 돌이를 부르는 돌이 엄니 목소리는 늦겨울 양지 짝에 비치는 이른 봄 햇살 같이 따뜻하였다.

“돌아! 니, 뭐하노. 아부지 오나 저기 동구 밖으로 나가 봐라. 날이 저무는데 아부지 오실 때 된는갑다. 어디보자. 날이 추븐데 옷은 단디 입었나?”

“에에! 엄니는, 내가 어린앤가. 애 취급을 하슈. 그러면 언니보고 가라고 그러지우.”

“그럼, 자식은 언제나 애지. 언니야 내하고 음식 만들어야제. 그리고 사람들 눈이 있는데 누부를 그래 내돌리면 쓰갔나. 어서 퍼뜩 댕겨 온나. 아부지가 니 좋아하는 곶감 갖고 오신다 안캈나. 응. 돌아!”

“야! 알겠시우.”

그러나저러나 돌이는 요즈음 저 회회아비 놈이 꽃님이 언니를 보는 눈이 되우 수상쩍어 늘 마음이 편치 못했다.

꽃님이와 돌이는 연년생이지만 생긴 건 딴판이다. 돌이는 아버지를 닮아 둥글둥글한 편이며 작지도 크지도 않은 키로 약간 몸집도 있었다. 돌이의 언니인 꽃님이는 마마를 얽어 살짝 곰보이지만 갸름한 얼굴, 오똑한 코에 희고 긴 손을 지녔다. 몸매는 호리호리한 것이 능수버들 같아 그렇지 않아도 큰 키가 더욱 커 보여 여리게 보였다. 꽃님이가 예쁘다는 것은 떡전거리 사람들뿐만 아니라 저 수주성 사람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 정도였다. 여하간 요새 이 꽃님이 언니 문제로 돌이는 몹시 마음이 쓰였다. 사실 꽃님이 언니를 누가 데려 가려는 지 생각하면 걱정이 앞서는 것은 돌이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돌이 아버지와 돌이 어머니에게도 보리 까끄라기처럼 늘 꽃님이가 가슬가슬 걸렸다. 그만큼 꽃님이가 모두의 근심거리가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꽃님이의 행실이 부실해서이다. 꽃님이는 어릴 때 마마를 심하게 앓아 열이 난 뒤로 그렇게 되었다. 그래, 돌이는 천연두가 심해진다는 뜻으로, 일이 순조롭지 못하고 좋지 않은 징조가 보일 때 버릇처럼 내뱉는 ‘마마 그릇되 듯하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두 번은 철렁철렁 내려앉는다.

특히 요즈음 들어 부쩍 회회아비는 드러내놓고 꽃님이를 훔쳐보았다. 회회아비가 능글능글 꽃님이를 쳐다볼 때면 그 눈길이 능구렁이를 대여섯 마리는 삶아 먹었거나 까치독사가 혓바닥을 날름날름거리는 듯 했다.

저번에는 꽃님이를 제 만두가게로 끌고 들어가 만두 서너 개를 주는 것을 돌이가 보고는 좇아 들어가 끌고 나오기까지 하였다. 돌이가 이 일을 어머니에게 일러바쳤을 때, 돌이 어머니는 부지깽이를 들고 꽃님이의 눈물을 한 두어 사발은 족히 받아내고야 말았다.

“망할 놈의 가씨나. 한번만 더 그 카면 내쫓아삔다. 남들에게 뒷손가락질을 받으면 우짤라꼬 그깟 만두쪼가리를 묵을라꼬 들어간다 말이여? 응! 다시 한번만 그카면 다리몽둥이를 꽉 뿌지를 줄 알아라. 응! 알간나.”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뒤로 꽃님이가 부쩍 회회아비를 무서워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돌이가 꽃님이 언니 생각으로 똬리를 틀어대며 언덕배기까지 와 아버지를 기다린 지도 한참을 지났다.


돌이는 아버지의 구수한 <거사련>이란 노랫소리를 기다렸다. 돌이 아버지는 노래를 채집한다면서도 썩 노래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다만, “울타리 옆 꽃가지에 까치가 울었고 거미도 상머리에 줄을 치고 있네요.----”라는 <거사련>이란 노래는 참으로 구성지게 불렀다. 작년 설날에도 돌이는 이 노래를 듣고 아버지가 돌아 온 것을 알았다.


멀리 겨울의 석양이 차갑고 무겁게 내려앉더니 시러꿀 앞산 귀퉁이에 걸치고는 이내 사라졌다. 붉은 노을이 사라진 자리엔 이내 하늘빛도 저물고 곧 보얀 이내가 내려앉았다. 이내 뒤로 어둠이 산자락을 끌고 다가섰다. 어둠이 우두커니 먼발치에 서있는 나무 끝에서부터 꼬물꼬물 기어오는 것이 꼭 회회아비의 웃음 같아 돌이는 몸이 오싹하였다. 돌이는 어깨를 한번 흔들어보고 고개를 돌려 회회아비의 웃음을 털어내며 애써 다른 생각을 하였다.

돌이는 지금쯤 밥솥에는 엄니가 노래를 부르며 찧은 기장밥이 구수한 냄새로 익어갈 것을 떠올렸다. 돌이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누런 기장밥을 생각하니 입 안에 침이 고였다.

“그런데 우리 아부지가 오실 때가 됐는데---”

돌이는 옆에 누구라도 있는 양, 어슴푸레 저무는 동구를 지키고 서 있는 지팡나무에게 돌아오지 않는 말을 건넸다.

겨울바람에 선뜩선뜩 몸이 놀라고 날은 어둑어둑하니 이불처럼 사물을 덮었다. 돌이의 몸이 후드득 떨렸다. 하늘엔 벌써 말긋말긋한 별 몇이 생겼다. 돌이는 어느새 뭉근한 아랫목과 화롯불이 생각났다. 그래도 돌이는 조금만 더 기다리다 들어가야겠다고 옷깃을 끌어 여미며, 이미 어둠이 반 허리는 내려온 지팡나무에 기대었다.

돌이는 아부지가 좋아하는 “울타리 옆 꽃가지에 까치가 울었고 거미도 상머리에 줄을 치고 있네요.----”라는 노래가 들리나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