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 부르는 고려속요-그 몸의 노래여
2장. 져재 녀러신고요.
울타리 옆 꽃가지에 까치가 울었고
거미도 상머리에 줄을 치고 있네요.
우리 님 돌아올 날 멀지 않았으니
마음이 미리 알아 지레 설레네요. <거사련>
돌이 엄니는 영창문을 통해 활짝 열어 둔 사립짝을 내다보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믐이라 달빛 그림자조차 없었지만 마당가까지 환하다. 돌이 엄니 경주댁의 목소리는 마지막 구절인 “마음이 미리 알아 지레 설레네요”라는 데서 더욱 소리가 높아졌다. 군역나간 남편을 기다리며 어떤 여인이 지었다는 노래이다. 돌이 엄니는 남편이 부역을 나갔지만 돌아 올 것을 간절히 비는 마음과 밝은 내용도 그렇지만 그 음이 여간 좋은 게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돌이 아버지도 이 노래만큼은 잘 불렀다.
돌이 엄니는 어려서도 이 노래를 불러댔다.
그럴 때마다 돌이의 외할머니는 눈을 흘겼다.
“얄궂데이. 시집도 안 간 것이 그런 노래를 뭣 땜시 좋타꼬. 곱다시 좋은 노래를 내뿔고. 아사라. 말이 씨데믄 우짜자꼬.”
그래도 돌이 엄니는 좋았다.
그래서 그런가? 돌이 아버지도 작년 봄 꽃가지에 까치 울 때 떠났다. 해 저물도록 돌이가 시린 손을 호호 불며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돌이 엄니는 해 지킴이기도 하지만 방은 물론이고 마루, 부엌, 다락, 곳간, 문간, 뒷간까지 온 집안에 샅샅이 불을 밝혀 놓았다. 오죽잖은 살림이다. 세간치장도 보잘 것 없는데 구석구석 불을 밝혀 놓는 건 정월 풍습대로 잡귀의 출입을 막고자 해서다. 하지만 오늘은 돌이 아버지가 훤히 불 밝힌 이 마당을 들어설 것이기에 기름을 아끼지 않았다.
“엄니! 아부지는, 아부지는…”
돌이 엄니는 아랫목을 돌아보았다. 돌이의 잠꼬대였다. 돌이 엄니가 그믐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 일러줬건만 처용놀이를 보고 온 돌이는 곤히 잠이 들어 제 아버지를 찾는다. 돌이 엄니는 돌이가 몸을 웅크리고 이리저리 뒤척이는 것을 보니 제 아버지를 기다리느라 찬 곳에서 너무 오래 서있어서 그런가보다 여겼다. 그래, “지금껏 안 오시는 걸---” 하며 이불을 끌어다 덮어주었다.
꽃님이는 아직 잠이 안 들었다. 눈만 깜박깜박하며 제 엄니하는 양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문득 아버지가 신발 사온다는 말을 생각하고는 이불을 뒤집어쓰며,
“엄니, 아부지 안 오셔. 왜 안 오셔? 내 신발 사오신다고 했는데,---”
하고 보채었다. 그러고는 돌이 엄니가 눕자 어린 송아지 어미 소 젖 찾듯 계속 제 엄니의 가슴팍을 파고든다.
돌이 엄니는 꽃님이 생각만하면 가슴이 먹먹하고 미어진다. 가만가만 꽃님이의 등을 토닥여 주며,
“응, 사오시겠재. 사오시겠재. 꽃님이 이쁜 신을---”,
라고 하였다.
어느새 앙가슴을 파고들던 꽃님이도 잠이 들고 그믐밤도 삼경을 지나고 있었다. 돌이 엄니는 저녁 해가 보금자리를 치려 끄물끄물하니 땅거미질 무렵에 까치 한마리가 울타리 옆 챙죽나무 가지에 앉아 ‘까악까악’ 흉물스럽게 울고 간 것이 몸에 잔진저리를 몰고 와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침에 우는 까치는 좋은 소식이나 저녁에 우는 까치는 근심 까치라카던데…, 돌이 아부지에게 무슨 일이 있나? 혹 오던 길에 변을 만났나? 그럼 이를 우짤꼬.---’
돌이 엄니는 뒤숭스레하니 잠도 오지 않았다. 돌이 엄니는 이불을 발치께로 차버린 꽃님이에게 이불을 끌어 덮어주곤 돌이의 얼굴을 한참이나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을 열고 나왔다. 옷깃을 단단히 여몄는데도 찬 겨울바람이 꽃님이처럼 돌이 엄니의 가슴팍을 파고들었다. 돌이 엄니는 몸을 한번 후두들 떨며 가슴팍 옷깃을 여미었다. 아무래도 이렇게 앉아 손톱여물이나 썰고 앉았느니 장독신께 정한수라도 떠놓고 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물둥치로 가 물을 정하게 떠가지고 와서는 장독대에 올려놓고는 두 손을 모았다.
달님이시여! 높이곰 돋으셔서,
어긔야 멀리멀리 비춰주세요.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시장에 가 계신가요?
어긔야 위험한 곳을 디딜까 두렵습니다.
어긔야 어강됴리
어느 곳에든 놓으세요.
어긔야 내 가는 곳이 저물까 두렵습니다.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정읍사>
돌이 엄니가 어매에게 어릴 때부터 들어 배운 노래였다.
돌이 어매는 옛 백제 유민의 딸이었다. 돌이 엄니의 노랫소리가 나지막이 밤하늘에 퍼졌다. 돌이 엄니는 어릴 때부터 엄니에게 이 노래가 삼국시절 백제 정읍지방의 노래로 어느 행상 나간 남편을 기다리던 부인네가 부른 노래라고 들었다. 돌이 엄니의 아버지 역시 백제 유민으로 노래꾼이었다. 그는 뛰어난 노래꾼이지만 백제 유민으로 양수척(揚水尺) 출신이었다.
하지만 돌이 엄니를 낳고부터 양수척을 그만두고 행상을 다녔다.
돌이 엄니가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은 모두 아버지의 덕이었다. 돌이 엄니는 그러고 보니 이 노래를 부른 여인의 처지가 우리 어매요, 자기의 터수와 어금지금하다고 생각했다. 돌이 아버지가 간 곳도 남쪽이니 전주로 갔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하니 제 신세가 서러웠다. 돌이 엄니는 눈물을 훔치다 혹 부정이라도 탈까하여 얼른 치마로 눈가를 콕콕 찍어 누르고는 섣달그믐의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참 하늘엔 별도 많고 자기 가슴에는 시름도 많았다. 물기를 머금은 별이 서넛 물비늘 일 듯이 떨어져 눈으로 들어왔다.
“엄니! 엄니!”
꽃님이 목소리가 장독대까지 들렸다. 꽃님이는 잠 속에서도 돌이 엄니를 불러댄다. 꽃님이 나이는 연실타래 풀어지듯이 줄달음치더니 새해엔 열다섯이 된다. 얼굴은 하야말개 탐스러운 것이 해끄무레하고 겨울이라 그런지 두 볼에 더 살짝 발그레한 빛이 돌았다. 봉곳하니 솟은 도도록한 가슴이야 이미 두 해 전부터 그렇지만 요즈음 들어 부쩍 잘록한 허리하며 엉덩짝이 펑퍼짐한 게 여간 색시꼴이 나는 게 아니다.
돌이 엄니는 제 속으로 나은 딸이라 그런 게 아니라, 이 떡전거리에서 꽃님이가 제일이라고 생각한다. 가끔씩 달님이 엄니하고 몇 몇 여편네들이 달님이도 떡전거리 일색이라고들 하지만 돌이 엄니는 가당치도 않은 소리라 손사래를 친다. 돌이 엄니에겐 꽃님이가 봉황이라면 달님이는 올빼미요, 꽃님이가 옥구슬이라면 달님이는 모래와 조약돌일 뿐이었다. 그런 일색 중에 일색인 꽃님이를 생각하니 돌이 엄니의 가슴이 먹먹하다.
돌이 엄니는 마마신을 위한 ‘손굿’ 한번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부모가 반 팔자라는데 불쌍한 것이 부모를 잘못 만나 어려서 마마 앓는 것을 약한 첩 쓰지 못했다. 꽃님이는 마마를 되게 앓아서인지 정신이 영 총명치 못하고 먹새까지 약했다. 돌이 아버지 말마따나 얼굴에 마마자국이 남아 얽벅얽벅한 얼금뱅이가 되지 않은 것만도 천만다행인지 모른다. 돌이 엄니는 제 동생 돌이가 영특하니 돌봐주겠지만, 그래도 꽃님이가 시집을 가 사람구실이나 제대로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팍이 아렸다.
“누구야!”
문득 인기척을 느낀 돌이 엄니가 울타리께를 보며 마른 소리를 쳤다. 희미한 별빛 아래 회회아비가 까치독사마냥 그 음충스런 눈빛으로 자라목을 해서는 기웃기웃 훔쳐보았다. 돌이 아버지가 없다고 음흉하게도 꽃님이를 넘보는 것이 올해 들어 벌써 여러 번이다. 엊그제는 자기에게까지 눈빗질로 몸을 훑었다고 생각하니 돌이 엄니는 모골이 다 송연하였다. 돌이 엄니는 돌이에게 만두 이야기를 듣고 꽃님이에게 단단히 일렀지만 아닌 게 아니라 걱정은 걱정이었다. 외마디 소리에 어둠 속으로 그림자처럼 스며드는 회회아비를 보며 꽃님이에게 내일 다시 한번 다짐장을 놓아야겠다고 돌이 엄니는 생각했다.
그러며 돌이 엄니는 저 회회아비를 이 나라에 끌어 들여 온 몽고 놈들의 세상이 언제까지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고개를 휘휘 저었다. 이 때 몽고군은 벌써 여섯 차례나 고려에 쳐들어왔다. 돌이 엄니가 세 살 때부터니, 근 30년에 걸쳐 여섯 번이나 난리를 겪고 있다. 특히 여섯 번째 침입은 지금도 계속되는데 피해가 작심하기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다. 몽고 장수 찰날아대의 악행은 어찌나 심했는지 젖먹이들조차도 그 이름만 들으면 자지러지게 울던 울음을 그칠 정도였다.
돌이 엄니의 고향은 경주이다. 돌이 엄니가 일곱 살 때, 세 번째 침입에서 행상에서 돌아와 전쟁에 끌려 간 아버지를 잃었다. 이때가 1235년이었다. 몽고군은 서경과 개경을 거침없이 거쳐 전주를 짓쳐서는 경주까지 아예 쑥대밭을 만들었다. 돌이 엄니의 아버지와 엄니가 손을 잡고 가끔씩 찾아갔던 황룡사의 구층탑은 이때 불타버렸다.
이 침입으로 아버지를 잃었다. 의지가지없는 돌이 외할머니는 돌이 엄니를 끌고 외 가 있는 이 떡전거리로 옮겨 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떡전거리로 오던 어느 날, 돌이 엄니를 숨겨두고 때거리를 찾으러 나섰던 돌이 외할머니는 그만 몽고군을 만나 저고리 앞섶이 찢겨져 들어왔고 끝내 자결하고 말았다. 돌이 엄니는 나이도 어린데다 워낙 경황이 없어 거기가 충주 어디쯤이라는 것 뿐, 이제는 돌이 외할머니를 어디에 묻었는지 기억조차 없다.
사실 몽고군에게 몸을 더럽힌 여인은 돌이 외할머니뿐만이 아니었다. 그 수는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보다 못해 나라에선 연못을 파 몽고군에게 몸을 더럽힌 여인들이 이곳에서 몸을 씻으면 깨끗해진다 했으나 돌이 외할머니는 자결의 길을 택했다. 돌이 외할머니의 죽음으로 돌이 엄니는 하늘 아래 고아가 되었다. 겨우 일곱 살인 돌이 엄니의 삶은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였다.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돌이 엄니는 자기를 두고 자결의 길을 택한 돌이 외할머니가 야속하다. 딸을 생각한다면 돌이 외할머니는 죽지 말고 살았어야 한다고 돌이 엄니는 지금도 생각한다. 돌이 엄니는 어머니된 자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마땅히 살아서 자식의 목숨을 돌봐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 돌이나 꽃님이를 위해서라면 자기의 목숨을 기꺼이 바칠 수 있다고도 다짐했다. 돌이 엄니가 “호미도 날이지마는 낫같이 잘 들 리도 없습니다. 아버님도 어버이시지마는…”라는 <사모곡>을 부른 것은 그때부터였다. 돌이 외할머니가 듣고 돌이 외할아버지가 들으라고 말이다.
꽃님이와 돌이를 낳고 잇달아 겪은 몽고의 침입 때도 돌이 엄니가 아이들을 무사히 키운 것은 모두 이러한 생각 덕분이었다. 돌이 엄니는 힘들거나 어머니 아버지가 생각 날 때면 더욱 <사모곡>을 불러댔다. 그러면 없던 힘도 우꾼거렸다.
그래서인지 돌이 엄니는 그 무슨 부처님의 힘을 빌려 몽고군을 격퇴하려 만든다는 팔만대장경도 영 못마땅하였다. 돌이 엄니는 씻나락 까먹는 소린지도 모르겠지만 꼭 묻고 싶었다.
“부처님! 팔만대장경을 만든 것은 우리 같은 천한 백정 아닙니꺼! 그런데 늘 복은 저 왕과 그 주위에 있는 벼슬아치들만 받으니, 부처님! 왜 하늘의 이치가 이러합니꺼?”
라는 말을 말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팔만대장경을 만든 저 이들처럼, 내도 까막눈인데, 뭔 뜻인지도 모르면서 무엇을 묻겠는가마는---’이라는 생각이 들면 자신의 이런 신세가 딱하기도 하였다.
돌이 엄니뿐만이 아니었다. 고려 백정이라면 몽고군도 원수지만 30년 넘도록 백성을 내몰라라 버려두고 제 목숨 아까워 강화도로 도읍을 옮긴 왕이나 따라 간 높은 님네들도 밉기는 마찬가지였다.
돌이 외할머니는 죽기 전에 딸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었다.
“이 길로 쭉 올라만 가면 떡전거리다. 떡전거리, 알았제. 잊아뿔면 안 된다카이. 알았제.---”
돌이 엄니에게 몇 번이고 되뇌며 다짐장도 놓았다.
돌이 엄니는 외가로 오다 떡전거리를 거쳐 서경으로 간다는 광대패를 만나 들병이가 되었고 <사모곡>이란 노래를 구성지게 불렀다. <사모곡> 가락에 담은 돌이 엄니의 희망은 오로지 떡전거리 근처에 산다는 외가댁이었다. 그러나 어매가 일러준 대로 해를 넘겨 찾아간 돌이 엄니의 외가는 전쟁 통에 이미 집도 사람도 없었다. 그때 돌이 엄니의 광대패가 머문 곳이 돌이 아버지가 일을 봐주던 객줏집이었다.
광대패는 물론 객줏집에 드나들던 사람들은 모두 돌이 아버지를 칭찬하였다. 드문드문 걸어도 황소걸음이라고 돌이 아버지의 믿음직스러움은 돌이 엄니의 눈에도 들어 왔다. 돌이 아버지는 돌이 엄니와 동갑이었다. 돌이 아버지는 한 눈에 돌이 엄니를 좋아하였다. 하지만 돌이 아버지가 암만 돌이 엄니를 좋아하여도 연분이 맺어지기는 어려웠다. 광대패의 우두머리인 대방이 돌이 엄니의 몸값으로 많은 돈을 요구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시 돌이 아버지에게는 대방에게 줄 돈이 없었다. 더욱이 당사자인 돌이 엄니 쪽에서도 돌이 아버지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돌이 아버지로서는 다 틀어진 연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방이 어디선가 칼에 찔려갖고 돌아와서는 갑자기 변심을 하였는지, 아니면 돌이 아버지의 간절한 마음을 알았는지 혼인을 하라하였다. 눈길조차 주지 않던 돌이 엄니도 순순히 응하여 이곳에서 살림을 차리게 된 것이었다.
그 뒤 돌이 엄니의 삶은 꽃님이와 돌이를 낳고 키우며 점차 안정을 되찾아갔다. 비록 몇 해 전 회회아비에게 떡 가게가 넘어갔지만 그래도 전과는 달랐다. 작년 같은 경우는 기근까지 겹쳐 성 안의 굶주린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자 도읍인 승천부(昇天府,경기도 개풍 지역의 옛 지명)를 옮기기까지 하였지만 돌이네는 용케도 견뎌냈다. 돌이 엄니는 구차한 목숨이나마 잇고 생쥐 입가심조차 넉넉지 않은 뒤퉁거리 살림살이일망정 남매까지 낳아 키운 것은 모두 돌이 아버지의 가족에 대한 사랑 덕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돌이 엄니가 돌이 아버지를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둘이 신방을 차린 날, 돌이 엄니는
“왜 나를 좋아하나요.”
라고 물었다. 그때 돌이 아버지는 얼굴을 붉히며 이렇게 말했다.
“내,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지만 당신을 잘 보살펴 줄게. 난 당신이 <사모곡>을 부르는 게 너무 슬프고도 좋아. 내 아버지 어머니도 생각나고---”
라며 말끝을 흐렸었다.
돌이 아버지를 만난 다음부터는 비록 달리 마련도 없는 쪼들리는 가난살이일망정 돌이 엄니는 행복했다. 돌이 엄니는 따지자면 돌이 아버지 역시 부모를 일찍 잃은 자신과 다를 바 없었다. 돌이 아버지는 그래도 밥술깨나 먹고 글깨나 읽을 수 있는 집안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돌이 할아버지가 무신정권이 들어서며 비협조적이라 하여 가문이 멸문되었고 돌이 아버지만 겨우 살아남았다.
그래 불쌍한 인생들이 서로 붙안고 푸념이나 하며 살아야한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짠했다. 더욱이 꽃님이를 끔찍이 여기는 돌이 아버지를 보면 돌이 엄니는 마음이 너무 아프다. 그것은 말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세상 끝까지 가더라도 말 못할 비밀이었다. 돌이 엄니는 ‘꽃님이에 관한 일만은 나 혼자만이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가야한다’고 여러 차례 되뇌었다.…
돌이 엄니는 그나저나 돌이 아버지가 왜 안 오는지 모르겠어서 마음이 불안했다. ‘섣달그믐이면 나갔던 빗자루도 집 찾아온다던데’라고 혼잣말까지 중얼거렸다. 혹 저 <정읍사> 노래처럼 어느 곳에서 나쁜 일을 만난 것은 아닌지, 몸에 탈이나 난 것은 아닌지 뒤숭숭한 걱정에 걱정을 거두지 못하였다.
“엄니! 엄니! 무서워. 어디 갔어. 엄니!.”
어느새 꽃님이가 깼는지. 제 어머니를 찾는 목소리가 동지섣달 밤하늘에 자지러지게 퍼졌다. 정한수엔 짙은 밤하늘만이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