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3)
소설로 부르는 고려 속요-그 몸의 노래여!
3장. 이곳에서 닥치는 대로 죽이려 하네
강화도에서 왕의 향락과 정권을 잡으려는 살육투쟁 속에서 백성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져 가던 1259년, 고려 태자가 몽고의 쿠빌라이를 제 발로 찾아가 사대관계를 맺은 그 해, 정월 보름세기도 끝나고 삼월이 다가도록
<청산별곡>을 부르며 동경이를 데리고 떠난 돌이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돌이 아버지는 행상을 떠나며 돌이 엄니가 좋아하는 노래를 채록해 왔다.
돌이 엄니가 가끔씩 부르는 <금강성>이란 노래도 그렇게 돌이 아버지가 알려 준 노래였다.
다시 여기저기 푸르던 밭의 보리가 누룻누룻 익어가는 보리누름이 되도록 돌이 아버지는 소식조차 없었다. 돌이는 엄마와 꽃님이에게 ‘아버지를 찾아오겠다’하고 길 떠날 행장을 가뜬하게 꾸려 곰이네로 갔다.
이제 겨우 열넷인 돌이련만 올해로 들어와 돌이 엄니 눈에는 왠지 믿음직스러운 게, 아들 돌이의 어깨에서 그 아버지를 본 적이 여러 번이다. 돌이 엄니는 돌이가 정월 보름 무렵에 아버지를 찾아보러 가야겠다고 말했을 때는 대꾸도 안 했지만 이제는 꼭 돌이가 제 아버지 소식을 갖고 올 것만 같았다.
돌이 엄니는 길을 나서는 돌이에게 괴나리봇짐을 메어주며 ‘몸조심하라’는 말을 신신당부하였다.
돌이가 집을 나섰을 때, 오늘도 떡전거리에선 광대패가 한창 놀음 중이었다.
“깡!깡!깡!”
“둥!둥!둥!”
광대들은 보통 봄·여름이면 고기잡이를 좇아 어촌으로 모여들고, 가을·겨울이면 추수철을 좇아 농촌으로 가는 법인데 이 떡전거리는 광대패가 한번 들어오면 몇 달이고 머물다 간다. 광대패는 떡전거리 사람들 중, 돌이 엄니에게 가장 좋은 대접을 받았다. 없는 살림에도 돌이 엄니는 객줏집에 묵는 그들에게 가끔씩 먹을 것을 가져다주었다.
한 번은 돌이가
“그 사람들 떠돌아다니는 광대패인데 뭘 잘해준 대.”
라고 반토막 말을 하자, 돌이 엄니는,
“돌이야! 그카면 못쓴다. 사람은 정으로 사는 긴데, 사람이 그러믄 안 된데이.”
라고 눈을 꾹 감아보였다.
그런데 이번 광대 패거리에게는 웬일인지 돌이 엄니가 싸늘하게 대한다. 한 번은 광대패의 모가비인 죽이 아저씨에게 돌이 엄니가 생파리 잡아떼듯 냉정히 대하는 모습도 돌이가 보았다.
돌이는 객줏집을 드나들며 광대패와 안면을 텄다. 특히 광대패를 이끄는 모가비 죽이(竹伊) 아저씨하고는 인사도 스스럼없이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고 죽이 아저씨는 몇 번에 걸쳐 서경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돌이는 눈이 마주친 죽이 아저씨에게 눈인사를 한 차례하고는 구경하는 사람들 가를 돌아 우물둥치 밑의 달님이 집으로 들어섰다.
“진지 잡수셨시우. 곰이 헝 안에 있시우.”
사립문을 썩 들어서며 인사를 한 자나 꾸부리는 돌이를 보고 달님이 엄니가 눈을 흘겼지만 돌이는 상긋이 한번 웃을 뿐이었다. 곰이 엄니는 숭굴숭굴 얽은 얼굴에 말주머니 두어 개쯤 차고 다니며 낄 때 안 낄 때 언죽번죽 죄다 참견하는 푼더분한 몸집의 여인이다. 그래 떡전거리 사람들에게 얼굴도 예쁘지만 말이나 행동이 곱고 우아한 달님이 엄니로는 영판 안 어울린다는 소리깨나 듣는다. 성격 또한 너글너글하여 아무한테나 덥절덥절하게 대하지만 돌이에게만은 이맛살을 찌푸린다.
곰이 엄니는 다 큰 돌이가 곰이를 핑계 삼아 제집 드나드는 것처럼 하는 게 영 못 마땅하였다. 돌이와 달님이가 정분이라도 날까봐 마음이 편치 않아서다. 곰이 엄니도 어려서부터 돌이는 봐온 터였다. 드레질할 필요도 없이 돌이가 생긴 것이 끼끗하고 미추룸하며 인금도 그만하면 의젓하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하지만 달팽이 같은 집에 생활하는 것이 거미와 같이 빈한한 데다 꽃님이까지 모자란 것하며, 돌이 엄니가 예전에 광대패를 따라다니던 들병이였다는 사실도 영 마음에 안 들어서다. 사실 같은 여자로서 달님이 엄마 또한 몽고놈들에게 더럽힌 몸을 호수만복으로 씻어낸 여인이다. 그러니 돌이 엄니에게 야박하게 대할 것도 아니지만 곰이 엄니는 왠지 모르게 언짢았다.
그래 곰이 엄니는 저 시절 <안동자청(安東紫靑)>이라는 노래가 너무도 싫었다.
부인의 몸으로 한 남편을 섬기다가 한번 그 몸을 더럽히게 되면 남편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천하게 여기고 미워한다.
이것을 실의 홍색·녹색·청색·백색에 견주어 부른 노래가 <안동자청>이다.
색깔이 있는 실은 순수하지 못하기에 몸을 버린 여인들에 빗댄 것이었으니, 곰이 엄니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자지러지게 가슴이 저리고 아팠다.
곰이 엄니는 노래는 부르는 이나 듣는 이나 직접적인 대화 한마디 없지만 노랫소리만으로도 감동을 주고 가슴을 아리게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곰이 엄니는 저도 모르는 새에 돌이의 뒤통수에 대고,
“오달지기는 사돈네 가을 닭이다.”
라고 퉁바리를 주고 말았다.
돌이는 이 말을 듣고도 오히려 싱글싱글하였다. 사돈네 가을 닭이 아무리 살지고 좋아도 제게는 소용이 없으니 보기만 좋지 도무지 실속이 없음을 이르는 말이지만 그래도 좋았다. 어떻든 곰이 엄니가 저를 사윗감으로 생각하는 것만은 틀림없어서다. 돌이는 곰이 엄니가 저를 마뜩지 않게 여기는 것을 알았지만 노여운 마음 없이 곰이 엄니가 턱짓으로 ‘저기 광에 있다고’ 일러주는 대로 광으로 들어섰다.
곰이는 마침 따비라도 일러볼 요량으로 막 곡괭이를 들고 나서는 참이었다. 사실 곰이가 곡괭이를 들고 나서야 곰이네에게 따비를 일굴 멧갓은커녕 호미 하나 꽂을 땅뙈기조차 없었다. 그냥 집 안에 있기가 멋쩍어 그러한 것이었다.
곰이의 아버지는 두 해 전에 저승객이 되었다. 곰이 아버지는 몽고의 2차 침입과 3차 침입 때 군에 징발되어 오른팔이 잘리기는 했지만 목숨은 건졌으나 복은 거기까지였다. 회회아비와 몽고 놈들에게 논을 뺏긴 그 해 겨울, 제 논처럼 부쳐 먹던 논두렁에서 곰이 아버지의 시신을 찾았다. 원래 곰이네는 할아버지, 그 아버지 때부터 호족에게 잘 보여 논마지기깨나 얻어 굴리는 이 고을의 유지였다. 늘 광에는 볏섬이 있는 집도 이 떡전거리에서 곰이네가 유일하였다. 그런 곰이네가 곰이 아버지 대에 와서 모든 것을 잃었다. 두어 번의 징발과 몽고의 침입으로 집도 서까래 한쪽이 주저앉았으며 땅은 빚으로 넘어갔고 끝내 곰이 아버지마저 땅보탬이 되어버렸다.
곰이가 회회아비나 몽고 놈들을 보면 눈불을 쏟아내는 데는 다 저러이러한 이유가 있었다.
돌이는 곰이에게 아버지를 찾으러 다녀오겠다는 자초지종을 말하고는
“그런데, 형! 달님이는---”
하고 눈짓으로 달님이를 찾았다.
곰이가 뒤란으로 턱을 돌리며 눈을 찔끔 감아주었다. 돌이가 급히 뒤란으로 돌아들자 장독대 옆에서 마침 솜병아리들을 품고 게으른 졸음을 물고 앉았던 몸집이 앙바틈한 암탉이 벼슬을 세우고는 대들 듯이 노려본다. 돌이는 그런 암탉에게 눈초리를 치세우고 “이놈!”하며 어깨춤을 들어 을러주었다. 돌이는 미물조차도 제 새끼를 챙기려 드는 게 여간 대견하지 않았다.
달님이는 봄볕도 살이 올라 고인 뒤란 울타리 밑에서 냉이를 캐는 중이었다. 돌이는 달님이와 꽃님이 언니, 곰이 헝과 넷이서 저 울타리 양지쪽에서 풀로 인형을 만들어 소꿉놀이를 하던 기억이 새록하여 잠시 멈칫하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달님이는 앞태도 그렇지만 가지런한 뒤태가 더욱 보기 좋았다.
달님이는 키는 별로 크지 않아 아리잠직하였지만 목덜미는 길고 눈이 큼직한데다 짙고 긴 속눈썹을 지녔다. 돌이는 달님이가 어쩌다 화들짝 놀랄 때면 그 큰 눈에서 한 바가지의 물이라도 쏟아질 것 같아 겁이 났다. 몸가짐도 얌전하고 자태도 더할 나위 없이 고왔으며 말수도 적었다. 그러나 생김생김이 그러할 뿐 목소리는 또랑또랑했으며 달님이가 한번 입을 떼면 조리 있는 말에 동네를 휘젓는 극성쟁이들도 쉽게 장난질을 못 쳤다. 그런 달님이가 오늘은 앞치마까지 제법 두르고 장독대 옆에 쪼그려 앉아서는 냉이를 캔다. 그렇잖아도 하얀 목덜미가 길게 드러났다.
돌이가 “음음” 잔기침으로 인기척을 냈지만 달님이는 그대로 제 할 일만 하였다. 서너 해 전까지 만해도 여름이면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두 번씩 목욕을 함께했던 사이다. 목욕은 아무 냇가나 찾아 남녀노소 누구나 아침저녁으로 하는 일이었지만 늘 돌이는 곰이 헝과 꽃님이 언니와 함께였고 목욕보다는 미역감기라는 것이 더 어울렸다. 옷을 언덕에 놓고 벌거벗고 물구비 따라 들어가 물장구를 치면 달님이는 깔깔거리며 농도 잘하던 계집아이였다.
그러던 사이였는데 언제부턴가 머리카락 헝클어질세라 곱게 빗어 밀기름에 잠재우고 옷고름 매무새 가다듬으며 얌전을 떨었다. 혹 농이라도 걸라치면 그 작은 코를 발심발심하고 이를 뽀드득 뽀드득 갈며 샛눈을 떴다. 이렇듯 한 두 해로 제법 내외를 더하던 것이 이즈막엔 숫제 눈도 마주치지 않고 데면데면 대하는 듯해 돌이는 영 섭섭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던 달님이도 돌이가 아버지를 찾으러 남도에 갔다 온다는 이야기를 할 때부터 호미질은 제자리만 파댔다. 그러더니 달님이는 치마폭으로 제 얼굴을 몇 번이고 훔쳤다. 돌이는 멋쩍어 달님이 뒤에 서서 금방 갔다가 올 것이며, 엄니와 꽃님이 언니를 잘 좀 봐 달라 하고는 돌아섰다.
뒤란 모퉁이를 돌아설 때,
“잘 댕겨 와.”
하는 달님이의 얌전한 말이 다급하게 돌이를 쫓아왔다. 달님이의 봄비처럼 촉촉하니 부드러운 말투에는 꽤 섭섭함이 묻어났다.
돌이는,
“내 올 때 댕기 하나 끊어 오마.”
하고는 성큼 달님이네 사립짝을 나섰다. 더 이상 있다가는 괜히 사내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광대패는 이제 곤두꾼 줄똥이가 나섰다. 만날 때마다 돌이에게 살갑게 눈인사를 하는 줄똥이는 얼굴에 별자국이 숭숭 난 애송이인데 펄떡펄떡 참 몸을 잘도 뒤집는다.
“돌이야! ”
모가비 죽이 아저씨가 어느새 구경꾼들 틈에 끼어든 돌이 팔을 넌지시 잡아끌었다. 죽이 아저씨는 큰 키에 몸은 꽤 호리호리하며 얼굴은 해끄무레하다. 겉만 보아서는 영락없는 대갓집 도련님짜리이지만, 얼굴 왼쪽 뺨부터 아래로 긴 상처가 목청 있는 곳까지 나 있는 것이 흠이었다. 그 상처를 낸 사람은 분명 죽이 아저씨의 목숨을 노렸던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런데 돌이 엄니는 양수척 출신이라며 영 내켜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뺨의 상처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언젠가 돌이가 물은 적이 있었다.
“엄니는 다른 광대패에겐 잘해 주면서 왜 죽이 아저씨는 그리 박대하우. 얼굴에 흉터 하나 있어서. 그렇게 하는 거유. 광대패에게 잘해주라더니----- ”
돌이 엄니는 그때 낯까지 붉히면서 말했다.
“어디, 얼굴에 칼자국이 있다고 그러나, 세상살이를 하다카 보면 생채기가 나고 그 생채기마다 사연이 있지. ----”
그러더니 잠시 어물쩍하다가,
“---저 사람은 양수척 출신 아이가. 그래, 저 사람들이 낳은 가시내들은 얼굴이 이뻐가 기생이 된다 안카나.”
돌이는 도대체 엄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돌이는 죽이 아저씨가 양수척 출신인지 어찌 아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사실 돌이 엄니 말대로 광대패는 거반이 양수척 출신이었으니 집도 절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이들이었다. 평생 가면을 쓰고 광대짓이나 하거나 그나마 재주가 있으면 그것으로 밥술이나 먹으면 족한 삶이다. 그렇지만 돌이는 이번에 떡전거리에 들어온 광대패의 모가비인 죽이 아저씨에게선 여느 광대와는 다른 기운을 느꼈다. 뺨의 길게 파인 흉터조차 예사롭지 않은 사연을 담고 있는 듯했다.
“돌이, 지금 아부지 찾으러 가는 거냐. 우리 패가 남쪽으로 가다 소식 전해주면 되는데…”
모가비 죽이 아저씨는 한결같이 돌이에게 다정히 대한다.
“야! 암만 생각해두 지가 다녀와야 갔시우.”
“그래, 그럼 잘 다녀오너라. 한두 달이면 넉넉할 거다. 그때까지 우리 패가 여기 있을 지는 잘 모르겠다만. 나도 며칠 있다가 어디로 갈지 모르겠다. 내일쯤 나도 다음 연희 장소를 물색해 보려고 저기 당성(唐城,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남양) 쪽으로 다녀오련다. 여하간 길조심하고, … 잠깐만 기다려라.”
그러고 객줏집으로 뛰어가더니 무엇인가 들고 와 돌이에게 주며,
“이것은 노자에 보태거라.”
라고 하며 싫다고 뿌리치는 돌이의 바랑에 굳이 백금 한 닢을 넣어 주고 손을 꾹 잡았다. 돌이는 언젠가 아버지에게 손을 잡혀 눈물을 찔끔 흘렸던 생각이나 괜히 얼굴이 붉어졌다.
돌이가 떡전거리를 지나 아랫녘으로 빠져나오니 들녘엔 보리누름이라 황금들판이었다. 돌이는 길을 걸으며 생각에 잠겼다. ‘땅은 저렇게 제 몸으로 사람을 먹여 살린다. 그러나 여기저기 깜부기가 보리보다 더 많은 것을 보니 올해도 겉풍년이 분명하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그래, 땅이 사람을 암만 먹여 살리려 해도 여러 가지 조화가 붙나보다”라고 저도 모르는 사이에 신음처럼 푸념을 내뱉었다.
‘세상에 가장 높은 고개가 보릿고개’라는 말이, 작년, 아니 그전부터 늘 그랬듯이 올해도 이 고려 땅에서 그 위력을 떨칠 것이 분명했다. 아직 날씨가 쌀쌀해선 지 돌이의 팔뚝에 소름이 돋쳤다. 몸에 한기를 느끼며 돌이는 불현듯 엄니와 꽃님이의 때거리가 다 떨어져 간다는 것을 생각해내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돌이는 ‘보리누름에 애늙은이 얼어 죽는다’고 추위나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깜부기를 하나 뽑아 입으로 훑었다. 밍밍한 것이 입매만 떼 시장기만 속여 둔 아침나절이 기울어서인지 오히려 허기를 느끼게 한다.
돌이는 혹 뉘 집 보리라도 베는 날이면 일손을 도와주고 아침 겸 곁두리라도 얻어먹어 볼 요량으로 평택 쪽 길로 들어섰다. 평택에서 안성, 천안, 대전, 전주까지 훑으며 다녀온다 해도 넉넉잡고 두 달이면 된다.
돌이는 아버지를 만날 생각에 마음이 슬며시 달뜬다. 아직 찔레꽃머리는 아닌데 길녘에는 이른 찔레꽃이 폈고 소나무에선 송홧가루가 날렸다. 돌이는 찔레순을 질끈 꺾어 먹고 송홧가루도 털어 입에 넣어 보았다. 꽃잎인 듯 눈송인 듯 꽃씨를 날리는 물오른 버들가지 하나를 꺾어서 반은 껍질을 벗겨 양치질을 하고 반은 호드기도 만들어 불었다. 돌이 머리 위로 종다리 한 쌍이 높이 떴다 보리밭으로 내리꽂고 제비 한 쌍이 푸른 산허리를 베며 남쪽 하늘로 치솟았다.
“부우---”
돌이의 호드기 소리가 파란 하늘로 가뭇없이 사라진 자리에 송골매 한 마리가 높이 떴다. 돌이의 눈이 송골매를 따라잡은 곳에 달님이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련만 허연 낮달이 얌전하게 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