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4)

소설로 부르는 고려 속요-

by 휴헌 간호윤

4장. 회회(서역인) 아비가 내 손목을 쥐여이다

늦가을의 폭염이다. 조금만 더 있으면 기러기는 줄지어 북으로 갈 것이다.

돌이는 뜨거워진 머리카락이 바스락 소리를 낼듯하여 연거푸 쓰다듬었다. 엄니와 기약한 두 달이, 배나 되는 긴 걸음이 되었다. 더욱이 아버지의 죽음을 알고 오는 길이라 마음이 무겁다. 돌이가 장꾼들에게 물어물어 아버지가 머무르는 주막을 찾아 들었을 때는 꽃신 두 개와 노래집만이 덩그러니 돌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꽃신은 엄니와 꽃님이의 것이요, 종이에 적혀있는 것은 돌이 엄니를 위하여 전국을 돌며 채록한 노래집이었다.


객줏집 주인에게 들은 사건의 내막은 이랬다. 객줏집 옆의 소리네에 관리들이 들이 닥쳤다. 세금을 걷으러 왔으나 걷지 못하자 드잡이를 놓았고 보다 못해 노독으로 앓고 있던 돌이 아버지가 대든 것이 화근이었다. 결국 돌이 아버지는 관청으로 끌려가 매를 맞았고 그렇잖아도 노독으로 앓던 몸이기에 견디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이야기를 대충 간추린 객줏집 주인은,

“그래, 마을 사람들이 조 뒤 멧갓에도 임시로 먼가래라도 장례를 치뤘지 뭐요. 천하에 망할 놈들같으니---날 따라오우. 이런 아들을 두고---”

혀를 차며 돌이 아버지 무덤으로 데려다 주었다.

이것이 돌이가 도착하기 한 달여 전 일이었다.


떡전거리가 다가올수록 돌이의 발걸음은 더 더뎌진다. 저 멀리 황계들녘 군데군데 올벼는 황금물결이다. 하지만 올 해도 구멍 난 멍석을 기워가며 타작을 해도 조세를 내고나면 한숨만이 남는다.

관가의 조세란 그렇듯 가혹하기가 몽고 놈들 못지않았다. 백정들의 살갗을 벗기고 뼈까지 긁어가면서도 관리들은 눈썹 하나 찡그리지 않았다. 그래, 때거리를 찾느라고 노인들과 어린 애들까지 사타구니에 가래톳이 서고 밑구멍에 불이 나도록 산으로 들로 돌아다닌다. 씀바귀보다도 쓰고 색깔이 숯보다도 검은 도토리를 주워 겨울양식으로 삼으려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수탉소리를 듣고 일어나 천길만길 낭떠러지를 기어오르고 칡넝쿨을 헤치며 해질녘까지 돌아다녀도 먹을거리를 한 광주리조차 채우지 못한다. 고려 산골짜기마다 같은 처지의 사람들로 그득했다. 빈 광주리를 끼고 돌아 갈 수 없어 주린 창자를 산나물로 잠시 속여 두고 해저물고 바람 부는 골짜기에서 잠을 청해 보지만, 서리와 이슬이 뼛속까지 파고들어 신음소리가 처참한 것이 당시 고려 백정들의 일상이었다.

돌이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아무 힘도 없는 자신이 미웠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 관청을 찾아가 따지지도 못 하는 자신을 생각하니 분통이 터지고 눈물만 쏟아졌다.


‘다농다리호지리다리야(多農多利乎地利多利也)’


어디선가 5월에나 부르는 논 매는 소리가 구성지게 들렸다. 이 구절은 함께 부르기에 좋아서 서로가 서로에게 힘을 주었고 마을 사람들을 하나 되게 하였다. 돌이는 그 목소리가 컬컬하고 흥이 제법 도는 것으로 보아 언년이 아버지가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보리누름에 떠났으니 근 넉 달 만이다. 그나저나 꽃님이 언니와 엄니는 잘 있는지, 또 달님이도. 생각이 이렇게 머리에 돌자 돌이는 왈칵 보고 싶어졌다.


돌이는 떠날 때보다 무거워진 바랑을 추켜올렸다. 바랑 안에는 죽이 아저씨가 준 백금으로 바꾼 꽃님이와 달님이의 댕기가 두 개, 일 해주고 받은 품삯으로 엄니를 위해 산 용과 나무, 집이 그려진 동경 거울과 소금 두어 됫박, 젓갈, 말린 생선 두어 쾌가 들었다고 생각하니 그래도 무거운 마음이 조금은 덜어진다.

“동이야! 어서 가자.”

“멍멍!”

돌이가 다정히 말을 건네자 동이가 꼬리를 흔들며 힘차게 짖어댔다. 동이는 돌이 아버지가 데리고 다니던 동경이의 새끼이다. 동경이는 경주에서 나는 개인데, 꽤 총명한 암캐였다. 재작년 돌이 아버지는 돌이 엄니의 고향인 경주에 장사를 하러 갔다가 동경이를 데려왔다. 경주가 동경이기에, 경주개라 동경이라 부른 것이 이름이 되어 버렸다. 돌이 아버지가 죽을 때 동경이도 함께 죽었고 새끼만이 남은 것을 그동안 객줏집에서 돌봐주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확인하고 돌이도 객줏집에서 시름시름 며칠을 앓아 누워있을 때였다. 그날은 서글픈 빗줄기가 후득였다. 돌이가 멍하니 객줏집 마루에 앉아 있는데 마당 한 구석에서 이 동이를 보았다. 어미가 없어도 다른 동경이의 새끼들은 비교적 건강하였다. 그런데 그 비를 맞으며 울타리 밑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돌이는 제 신세와 비슷해서인지 안아와 밥을 씹어 먹여주었다. 이를 본 맘씨 좋은 객줏집 아줌니가 말추렴을 하였다.

“총각! 이거 경주개라지요. 총각 아버지가 관리놈들에게 맞을 때 얘 에미가 얼마나 무섭게 대들든지. 아, 관리 서너 놈은 그 개에게 물렸지 아마. 그래, 그 그놈들이 칼로 죽여 버렸지 뭐요. 아버지가 키우던 개의 새끼이고 하니, 데리고 가 잘 키워봐요. 무녀리로 태어났지만 눈매가 아주 영글다니까.”

돌이는 동경이의 이름 앞 자를 따서 동이라고 불렀다. 시간이 지나자 기운을 차리는데 보암보암 여간 기특한 게 아니었다. 꼬리가 짧은데 뾰족하게 솟고 잘 짖지 않는 것이, 놀놀한 빛에 나슬나슬한 털도 보기 좋았다. 먹성이 붙자 어린놈이지만 제법 개꼴을 내기 시작하였다.

“동이야! 여기가 내가 사는 곳이다. 너도 이제부턴 여기서 살 거다.”

“컹! 컹!”

동이는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돌이보다도 앞서 뛰어갔다.


그렇게 동이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떡전거리로 들어서는 동구 밖 당산나무 아래에 도착했을 즈음엔 땀이 등골을 따라 흘렀다. 돌이가 동이를 옆에 앉히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잠시 나무그늘에 쉬는데, 열 걸음쯤 떨어진 방죽에서 수런수런하더니 노랫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들어보니 검불이 목소리다. 검불이는 말더듬이지만 노래만은 잘한다.


만두집에 만두 사러 갔더니만

회회(서역인) 아비가 내 손목을 쥐었어요.

이 소문이 가게 밖에 나며 들며 하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새끼 광대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잔 데 같이 더ᇝ거츠니 없다. <쌍화점>1연


“아! 그그그, 그 다음에 뭐뭐뭐 뭐지? 그 근데 이 이 노래 진짜 꽃님이 언니 맞어.”
잠시 노래가 끊기는가 싶더니 검불이의 혀짤배기소리가 들린다. 뒤이어,

“부부부 북쇠야! 너너, 너 다음에 알어?”

하자 북쇠가,

“그럼, 나도 봤걸랑”

하며 노래를 받았다.


두레 우물에 물을 길러 갔더니만

우물 용이 내 손목을 쥐었어요.

이 소문이 우물 밖에 나며 들며 하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두레박아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잔 데 같이 더ᇝ거츠니 없…<쌍화점>3연


돌이는 검불이가 꽃님이 언니를 말했을 때만 해도 무슨 말인가 했다. 그렇지만 가만 속가량을 해 보니 꽃님이 언니를 쳐다보던 회회아비 놈의 느물느물 눈이며 흉한 낯짝이 떠오르고 무언가 일이 단단히 틀어진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번뜻 들었다. 북쇠의 노래가 채 끝나기도 전에 한달음에 방죽 위로 뛰어 올라갔다.

“컹! 컹!”

동이도 놀라 일어서 돌이를 따라 붙었다.


“이 새끼들!”

돌이가 놀라 먼저 일어 선 검불이 멱살을 움켜줬다.

“가마니 보니깐두루 이 자식들이! 검불이, 니 그게 무신 노래야? 응.”

“아아아 아니여! 저저저저 긍께, 돌이 헝. 그그그 근데, 운제 왔어? 다다 다른 애애 얘들이 불불 불러서 나도…”

“니 이 자식! 말 제대루 못해. 어디서 틀린 수작을 붙이고 있어. 그러니까, 지금 니가 부른 노래가 뭐냐니까? 이 짜식아! 북쇠! 니는 꽃님이 언니가, 그래 무엇을 보았단 말이냐? 니 이 자식 안 일어나!”

북쇠는 앉아서 돌이를 올려다보며 울상을 지었다.

“미안해 헝, 얘들이 불러서…나도 그냥. 꽃님이 언니가 그렇다는 게 아니고…저 헝, 그런 게 아니고…”

“이것들! 이거, 오늘 죽으려고 환장했나.”

돌이는 왈칵 눈불이 쏟아졌다. 검불이를 밀치고 비칠비칠 일어서는 북쇠의 멱살을 잔뜩 움켜쥐곤 막 치려할 때였다.


“야! 이 이거 누구여. 돌이 아녀.”

뉘 집 물꼬를 봐주고 오는지 삽자루를 어깨에 멘 곰이가 성큼 방죽 위로 올라섰다.
“아! 곰이 헝, 지금 막 돌아오는 길이야. 그런데 이 자식들이 이거. 무신 만두가게 어쩌고저쩌고 하는 노래를 부른데, 꽃님이 언니가…도대체 이것들이 지금 뭐라고 시부렁거리는 거야? 이 새끼들이, 이거. 꽃님이 언니가 뭐…”

그러며 다시 북쇠의 얼굴에 주먹질을 하려는 듯 멱살을 더욱 바짝 당겼다.

“돌이야! 놔줘라. 무신 말인지 알겠다. 걔네들만 때릴 일이 아녀. 당조짐을 해댄들, 저 어리보기들이 뭐 아냐. 내 다 얘기해 줄께. 야! 니들은 가라. 돌이야! 저 당산나무 밑으루 가자, 잉!”

곰이가 한참을 달래서야 돌이는 북쇠의 멱살을 풀었다. 곰이는 돌이의 소맷자락을 잡아끌어 당산나무 아래에 앉혔다.

“컹! 컹! 컹! 컹! 컹! ---”

동이는 제 주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듯 계속 짖어대었다.

곰이는

“네가 데려 온 개냐? 거 똘똘하게 생겼는데.”

하며 동이 머리를 쓰다듬고는 말했다.

“우선 내가 미안하다고 니한테 사과부터 해야겠다. 내가 니 대신 꽃님이를 잘 돌봐줬어야 하는데, 아휴! 그때 하필이면 왜, 읍성에 갔는지. 아니 참! 돌아! 근데 이건 무슨 강생이냐? 저 아랫녘에선 강생이라고 하지? 그런데 꼬리도 없고 이거 네가 데려오는 거니?”

“응, 동이라고 해. 우리 아버지를 따라간 동경이 새끼야, 아유! 갑자기, 개 얘긴 왜? 내 이따 말해줄게. 그런데 헝! 저 자식들 노래와 우리 꽃님이 언니가 무신 관련이 있다는 거여?”

“돌이야! 그래, 사실은, 아유, 어차피 알게 될 일이니…. 니가 떠나고 한 달쯤 됐을 걸. 그 회회아비 그 눔이 그만, 그때 나도 저 뒤 멧갓에다가 따비 좀 일러 보려고 안녕읍성에 들어갔잖니. 대장간으루 괭이며 삽을 사러들어 갔다가 잉, 이 삽도 그때 사온 건데. 그만, 니도 아는 걔! 왜 있잖니. 그 염생이 자식 패거리를 읍성에서 만나서, 여하간 내 대엿 세 만에 왔질 않겠니. 그랬더니 아! 그 눔이 꽃님이를 만두가게루 불러들여서는 그만, 그렇게 되었나봐. 니 엄니가 회회아비를 찾아가 드잡이를 하였다나, 근데 어디 그놈이 그렇게 당할 눔이냐. 그 뒤에 꽃님이는 정신이 더…, 네 엄니도 자리보전하고 근 한 달은 ….”

“이런 우라질! 이 오랑캐 눔이…”


곰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돌이는 일어섰다. 더 들을 필요도 없이 일이 어찌 돌아간 영문인지 뻔하였다. 돌이는 득달같이 떡전거리를 향해 뛰었다. 화롯불을 끼얹은 듯 온몸이 활할 달아올랐다. 돌이의 머릿속에 엄니, 꽃님이의 얼굴과 회회아비의 흉물스런 선웃음질이 엎치락뒤치락 하였다. 동이도 곰이도 그 뒤를 따랐다.

“컹! 컹! 컹! 컹! 컹! ---”

“돌이야! 돌이야! 돌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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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야! 돌이야!”

돌이는 분명 회회아비에게 한 주먹을 내질렀다는 것만 기억이 났다. 곰이와 동이가 떡전거리에 들어섰을 때, 돌이는 이미 얼굴이 피범벅이 되어 회회아비네 만두가게 앞에 고꾸라져 있었다. 돌이보다 두 배는 힘이 센 곰이와 힘을 합친대도 회회아비를 이겨내지 못한다. 돌이가 무서웠다면 애초에 회회아비가 꽃님이를 그리 만만히 보지도 않았을 터였다. 곰이가 쓰러진 돌이를 들춰 업으며 회회아비를 노려보았으나 회회아비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두어 번 탁탁 치고는 돌아서버린 것이 끝이었다.


돌이는 곰이가 업어다 제 집 마루에 놓은 지 한 식경은 지나서야 눈을 떴다. 얼굴에 축축한 것이 느껴져 눈을 떴다는 것이 옳다. 돌이 엄니의 눈물이 쉼 없이 돌이의 얼굴을 적셨기 때문이다.

돌이가 부어오른 눈을 뜨자 제일 먼저 엄니가 들어왔다. 고개를 돌리자 멀찍이 서있는 꽃님이 언니가 돌이의 눈에 들어왔다. 꽃님이 돌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히죽히죽 웃고만 있고 그 뒤에 달님이가 근심어린 눈으로 쳐다보며 옷고름만 손으로 돌돌 감았다. 곰이는 마루 끝에 앉아 연신 눈만 꿈쩍거리고 그 옆에 서있는 모가비 죽이 아저씨도 돌이 눈에 들어왔다. 돌이는 그 상황에서도 ‘죽이 아저씨는 우리 엄니가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는데도 아마 내가 걱정되어 온 듯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가 눈을 뜨자 돌이 엄니의 울음은 “애고대고” 곡성으로 바뀌었다.

“아이고! 이 눔의 원수 같은 시상. 나 같은 년이 딸복에 아들복이면 호사한 것을, 무신 좋은 복을 받겠다고. 돌아! 돌아! 괘안나? 괘안나? 우짜꼬. 이 눈도 때꾼한 것 좀 보소. 그래 마, 그 도적놈에게 덤벼들어. 그놈이 어떤 잡놈이라꼬.---”

돌이는 엄니의 넋두리를 이만 들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엄니! 난 괜찮우.”

돌이가 일어나려고 몸을 모루 돌리다 곰이가 얼른 다가와 겨드랑이에 팔을 끼어 부축해주었다.

“돌이야! 괜찮니?”

죽이 아저씨도 근심어린 표정으로 어깨를 투덕투덕 두드렸다.

“돌이야! 돌이야! 나 알아보겠니? 괜찮니?”

“예! 괜찮어유.”

돌이가 일어나 앉은 것을 본 돌이 엄니는 부리나케 부엌으로 들어가 보리밥 한 덩이를 내왔다. 돌이는 보리밥도 밥이지만 어찌나 세게 맞았는지 입안이 퉁퉁 부었고 앉아있자니 겨드랑이하며 허리 깨의 통증도 몹시 고통스러웠다. 돌이가 몇 숟가락을 뜨는 둥 마는 둥하다가 이내 숟가락을 내려놓자 돌이 엄니가 다시 숟가락을 쥐어주었다. 그러나 돌이는 다시 숟가락을 들지 못하고 그대로 누웠다.


울타리 너머로 보이는 가을 해는 이미 산마루에 노루꼬리만큼 걸렸고 긴 감빛 노을은 안마당까지 슬금슬금 기어들어왔다. 곰이와 달님이가 돌아가고, 모가비 죽이 아저씨가 나갔다 다시 와 돌이의 얼굴에 무슨 약인가를 발라주며 귀엣말을 하였다.

“욕보았다. 돌아! 자고로 사내라면 제 한 몸은 지킬 힘이 있어야 한다. 힘! 힘이 없으면 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지킬 수 없단다. 무엇인가 지킬게 있는 사람은 힘이 있어야 해. 나는 근본이 양수척으로 태어나 사랑하는 여인도 잃어버렸단다. 돌아! 너는 백정이니 힘만 키우면 네 몫의 삶을 산다. 돌아! 사내는 힘이 있어야 한다. 알았니. 힘! 말이다. 지킬 게 있다는 것은…난 지킬 게 없단다.…”

돌이는 죽이 아저씨의 ‘힘! 힘’이라는 말이 머릿속을 두어 번 맴돌더니 이내 다시 잠에 빠져 들었다. 돌이는 집 아랫목이 이렇게 편한 줄 예전엔 몰랐다.


얼마나 지났을까? 돌이는 꽃님이 언니의 “엄니! 엄니!”하는 잠꼬대 소리에 다시 깨어났다. 호롱불이 보였다.

돌이 엄니는 돌이를 내려다보며 근심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일 날 수 있나? 그래, 니 아부지는 만났나? 저 강생이는 네가 데려 온 것 맞재?”

돌이는 겨우 일어나 바람벽에 등을 붙였다. 옆구리가 켕기고 뼈마다 시큰거렸다.

“응! 엄니! 엄니! 저 강아지가 동경이의 새끼우. 객줏집 아줌니가 데리고 있다가---.”

“뭐라꼬? 동경이의 새끼라꼬? 그럼, 동경이는 아니, 느 아배는?”

돌이 엄니는 순간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지나갔다.

“엄니! 아부지는,---아부지는?”

“야가 뭐라카노? 돌이야 정신 좀 차리거라. 니 아배가 어찌 됐단 말이가?”

“엄니! 아부지는---아부지는 관리놈들에게 맞아 돌아가셨시우. 전주 객줏집에서 아부지와 함께 장을 돌았다던 사람에게 남원 쪽 어디에 좋은 노래가 있대서 그것을 채록하려 가셨다는 말을 듣고 설라무네. 그래, 남원까정 갔는데---”

“그래, 남원에 계시드나?”

“아니, 그게 아니고 남원에선 노래만 채록하고 다시 경주 쪽에 좋은 노래가 있다며 가셨다하여 내친 김에 경주까지 갔지유. 그러다 경주성 인근마을에서 노독이 나서 한 객줏집으로 들어갔다가,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알았시유. 그 마을에서 아부지가 관리놈들과 댓거리하다 그만----”

돌이는 아버지의 죽음과 동이를 데려온 사연을 하나씩 내려놓았다.


“그래 설라무네, 동리 사람들이 뒷산에 임시로 먼가래를 해놓았시유. 내가 모셔 올 수 없어, 그냥----”

돌이 엄니는 돌이 이야기를 다하고 윗목에 있는 바랑을 끌러 노래집을 건네자 비로소 울음이 복받쳐 올랐다.

“아이고! 아이고! 돌이 아배!----”

돌이 엄니의 곡성이 머춤해지자 돌이가 엄니의 손을 잡았다.

“엄니! 그만 우시우. 그만 우시우.…아부지 무덤은 동네 사람들이 잘 만들어 주었시우. 의리 있는 사람이라구. 내가 객줏집에 머무를 때도 동네 사람들이 나를 찾아와 아부지 칭찬을 많이 했시우.”

“그래. 니 아배가 그런 사람이지. 암, 그런 사람이고 말고. 니 아배는 딴 사람들과는 다르지.---그것이 결국은 하늘나라로 데려 갔지만----”

마치 언젠가는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던 사람처럼 돌이 엄니는 허허로이 말했다.

“그런데, ---꽃님이 언니 일은 또… ”

돌이는 옆에 누워 자는 꽃님이 언니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겨우 엄니를 쳐다보고는 물었다. 등잔불이라 그런지 돌이는 엄니가 떠날 때보다 몇 해는 더 늙어 보였다. 눈은 푹 꺼졌고 늘 곱게 빗던 머리도 헝클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 표정은 겨울 하늘처럼 차가웠고 목소리도 흔들림이 없었다. 돌이는 왠지 엄니가 전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알았다. 꽃님이 일은 내일 이야기하자. 먼 길 댕기오느라꼬 골병이 들었는갑다. 이러다가 병이라도 더치면 어째. 얄궂데이. 찾으러 보낸 나나 찾으러 간 니나 다 똑같다 마. 돌아 올 사람이면 돌아 올 것을 괜히 니 고생만 시켰능갑다. 건 그렇고, 뼈는 어디 다친 덴 읍나? 명주머니, 복주머니는 없어도 자손주머니는 있다했거늘, 그런 쳐 죽일 놈들, 내 그놈들을…이놈! 이 흉한 불한당 같은 놈들이. 늑대새끼 둔갑한 것 맹키로. 인두껍을 쓰고 어찌 우리 아배와 얼라들까지 모두 이 지경으로 해코지할꼬.…”


돌이 엄니는 꽃님이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돌이는 흔들리는 등잔불 때문에 엄니의 넋두리가 가뭇없이 사라지는 듯했다. 돌이는 다시 한번 깊은 잠 속으로 곤하게 빠져 들어갔다.

돌이 엄니의 넋두리는 한 참을 이어졌다. 그러고는,

“우야꼬…굽도접도 할 수 없는 안팎곱사등이 신세라니. 암만 백 번 생각해도 죽는 것 이외에는 가망 없는 삶인기라.…저 놈이 기어이 내 목숨을 훔쳐가고 말았으니, 내 이제 더 살 맘이 없다. 내 니 죽고 내 죽짜. 내 어매는 어매를 위해 죽었지만, 나는 내 얼라들을 살릴라꼬 죽는다.…”

라는 말을 할 때에 돌이 엄니의 푹 꺼진 눈자위에선 형형한 빛까지 맴돌았다.


그날 밤, 떡전거리조차 물속에 잠긴 것처럼 조용한 밤. 초승달이 찬 낯빛으로 서쪽으로 줄달음칠 때였다. 문고리를 잡은 돌이 엄니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고 눈에는 새파란 독기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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