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과 마라톤이 같다고 생각해요."
벌써 두 해 전이다. 2019년 기해년 1월 1일 6시에 일어났다.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42.195킬로 신년 마라톤을 뛰러 간다. 새벽달이 저만치 걸려있다.
송내역에서 전철을 타고 여의도 행사장으로 이동한다. 부천두발로 회원들도 하나 둘 승차한다. 모두 반갑게 악수를 건네고 새해 덕담을 주고받는다. 이 모임이 있기에 내 마라톤도 가능하다. 혼자라면 이 겨울, 더욱 1월 1일에 마라톤을 뛰러 가겠는가. 울트라 이후로 몸 상태는 역시 좋지 않다. 동호인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풀코스를 뛴다는 부담에 불편한 마음이 풀어진다.
풀코스이기에 약 70% 정도의 속도로 달렸다. 근 3개월 운동을 거의 못하였지만 그런대로 몸은 괜찮다. 약 12킬로미터쯤 갔을 때였다.
"저 이 끈 좀 잡아주세요."
시각장애인과 뛰는 페이스메이커 분이었다.
페이스메이커 분은 난처한 표정이었다.
"전 한 번도 페이스메이커를 한 적도 없습니다만---"
"제가 급해서 그럽니다. 부탁합니다."
페이스메이커 분이 건네주는 끈을 엉겁결에 넘겨받았다. '사람 일은 한 치 앞도 모른다'는 속담이 휙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게 시각장애인 분(시각장애인 마라토너 손병석 씨)과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손병석 씨는 키는 작지만 강단 있어 보였다. 발걸음도 가벼웠다. 서툰 내 페이스메이커 노릇에도 나보다 반 걸음은 더 빨리 뛰었다. 그렇게 하프 지점을 통과했다. 이미 내 몸 상태도 90%에 도달하였다. 심장은 격하게 뛰었다. 도로도 좋지 않은 데다 자전거와 행인이 오고 가기에 말을 계속 건네야 했다.
"자전거가 옵니다."
"길이 좁습니다."
"왼쪽으로 한 걸음 오세요."
"언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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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석 씨는 초보인 내 페이스메이커로 인하여 몇 차례 넘어질 뻔하였다. 나 혼자 몸도 주체하기 힘들기에 내 마음도 그만큼 불편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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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페이스메이커는 처음이라 불편하시지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괜찮다고 했지만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늘 숨이 턱에 차던 마의 32킬로를 어떻게 통과하였는지도 몰랐다. 35킬로쯤 왔을까. 손병석 씨는 발을 약간 접질려서인지 발걸음이 눈에 띄게 힘들어 보였다. 잠시 쉬어가자며 손병석 씨는 주머니를 뒤지더니 나에게 에너지젤을 수줍게 건넸다.
이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만큼 여유로워졌다. 손병석 씨는 시각장애인 마라토너에 주력도 겨우 6년이지만 이미 100차례가 넘게 풀코스, 101킬로와 200킬로 울트라마라톤을 소화해낸 분이었다. 직업은 안마사요 집이 경기 화성이라는 것도 알았다. 내 고향 또한 경기 화성이기에 이 또한 인연인가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40킬로쯤 왔다. 이제 2킬로쯤은 걸어서도 간다.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그래, 이렇게 마라톤을 뛰며 무엇을 얻었습니까?"
손병석 씨는 내 뜻밖의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인생과 마라톤이 같다고 생각해요. 사랑이지요."
그리고 잠시 후 또 이렇게 말했다.
"교감이지요."
'사랑과 교감' 난 마라톤을 하며 '인생'이란 말은 들어 보았지만 '사랑과 교감이'란 어휘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골인 지점이 보일 무렵 병석 씨의 페이스메이커 분이 기다리고 계셨다. 다 왔으니 나보고 끝까지 병석 씨와 함께 뛰라고 등을 밀어준다.
드디어 42.195킬로를 통과하였다.
"자 이제 골인지점에 다 왔습니다. 병석 씨 손을 드세요. 앞에서 사진 찍습니다. "
병석 씨와 나, 우리 기록은 나란히 4시간 17분 32초였다. 좋은 기록은 아니었지만, 몸도 가볍고 기분은 그보다 더 가벼웠다.
병석 씨는 고맙다고 나에게 식사나 같이 하자고 하였다.
내가 일행이 있어 곤란하다고 하자.
"제가 안마해 드릴게요. 꼭 한 번 오세요. 고맙습니다."
병석 씨는 내 이름 석 자와 핸드폰 번호를 저장하였다. 내 핸드폰에도 손병석이란 이름을 적었다.
"언제 주로에서 또 만납시다."
"고맙습니다. 꼭 한번 제가 마사지를 해 드릴게요."
돌아오는 전철, 병석 씨가 말한 '사랑, 그리고 교감'이란 말을 생각해본다. 쓰질 않았을 뿐이지 내 마라톤 모임인 동호회원들 간에도 이런 교감과 배려가 있으리라. 그러고 보니 내 옆 자리에서 두발로마라톤 회장님이 "몸은 괜찮으냐"고 걱정을 한다. 먼저 풀코스를 뛰고 들어와 언 손을 비비며 나를 기다렸다. 또 송내역 동태집에는 하프를 뛴 두발로마라톤동호회원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