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사이비 셋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휴헌 간호윤 Nov 10. 2021

“나이가 몇이지요?”

우수(憂愁)라면 우수일터

인천인재개발원에 공무원 강의를 간다. 코로나19, 내 수업도 변하였다. 학교 강의는 언택트요, 외부 강의는 폐강되거나 없어졌다. 그러니 이러한 외부 강의가 꽤 고맙다. 비록 줌 강의나 이 옷 저 옷 입어보는 것을 보니 모처럼 외부 강의가 주는 설렘이다. 그런데 옷태가 전혀 안 난다. 전엔 그래도 옷을 입으면 몸에 맞았는데, 그러고 보니 몇 년 전에 써 둔 글이 생각났다.



 나이가 몇이지요?”
쉰일곱입니다.”
저보다 위인 줄 알았는데 나보다 한 살 아래네요. ---옷을 잘 입으셔서
---”


어제 좋은 벗과 찾아든 주막집 주모와 뜬금없는 대화이다풀이하자면 내 나이가 자기보다 위인데(위인 듯한 데가 아니다옷을 젊게 입어 물어보았다는 말이다. (옷이라야 청바지에 흰 티셔츠를 입었거늘, 가만 '옷을 잘 입는다'는 뜻을  새기고 보니 '나이에 비해 옷을 젊게 입었다'는 뉘앙스이다.)


서너 번 찾았지만 별 대화가 없었는데 손님이 없어서인지아니면 심심해서 나에게 농을 건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술자리 내내 기분이 묘했다. 내가 보기에 주막집 주모는 내 나이보다 10살은 연상이라 생각했기에 말이다.


생각을 짚어보니 며칠 전고등학교 동기 놈이 서너 달 만에 본 나에게 폭삭 늙었네.”라는 말을 주저 없이예사로이 던진 적도 있었다.


하기야 언젠가부터 내가 내 사진을 보아도 늙음이 확연히 보이고 사진도 잘 찍으려 들지 않는다.


수업 준비를 하다 우연히 선조 아버지인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이초(李岹,1530~1559)의 시를 보고 고소를 금치 못한다이초는 중종 임금의 일곱째 아들로 태어나 하릴없이 노닐다가 서른 살에 영면하였지만 아들 잘 둔 덕에 조선 최초의 대원군(大院君)이 된 왕실 사람이다.


半世憂愁已作翁 반평생 우수 속에 이미 늙어버렸는데

聖恩如海泣無窮 하해 같은 성은은 눈물로도 끝없고

人言可與人情近 사람들 말처럼 인정에 이끌림은

父子君臣義亦同 부자 군신의 의리도 똑같겠지


 이초가 이 시를 몇 살에 썼는지는 모르나 넉넉잡아도 서른한 살은 못 될 터한평생을 육십으로 잡아 반평생이라 했고 왕의 서자로 평생 노닌 삶을 우수라 하였으며 서른 갓 채운 나이에 늙은이 옹()’ 자를 붙이고는 이미 늙어버렸다(已作翁)’고 하였다.


주모가 나보다 한 살 많은 게 대수고 주모가 내 나이를 저보다 열 살 많게 본들 어떠랴내 저 이보다 두 배는 더 살거늘다만 하해 같은 성은은커녕구름 낀 볕뉘도 쐰 적 없는 일개 서생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 좀 우수(憂愁)라면 우수일터.

매거진의 이전글 베스트셀러와 관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