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이비 셋

이별, 여행

서둘러 가방을 챙겨 길을 나선다.

by 휴헌 간호윤


연암 박지원 선생은 『열하일기』 「막북행정록」에서 '이별'을 이렇게 말하였다.


“인간의 가장 괴로운 일은 이별이요, 이별 중에도 생이별(生離別)보다 괴로운 것은 없을 것이다. 대개 저 하나는 살고 또 하나는 죽고 하는 그 순간의 이별이야 구태여 괴로움이라 할 것이 못 된다."



언젠가 안산 논길을 걷다 찍은 사진을 보았다. 무작정 떠난 여행. 혼자인 줄 알았는데 내 그림자가 동행했다.

유행가 가사를 빌릴 것도 없이 삶은 인생길이다. 겨우 마 세근 밖에 안 되는 마삼근 몸뚱이를 지닌 그 인생길에서 수많은 이들을 만나고 이별한다. 잠깐 하는 이별에서 죽고 사는 영원한 이별도 있다.


연암 선생은 죽고 사는 이별이 살아 이별하는 생이별만 못 하다고 한다. 죽고 살았기에 이미 서로 볼 수 없다. 이별로 인한 괴로움을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체념이 앗아가서이다. 그러나 살아 이별은 만날 수 있기에 괴로운 것이다. 연암 선생은 만날 수 있는 것을 만날 수 없게 하니 고통스럽다고 말한다.


생이별은 만남이 깊을수록 괴로움도 깊다. 이별의 생채기에 딱지가 앉고 떨어져도 생이별의 상흔은 그만큼의 만남의 깊이로 남는다. 문제는 생이별이든 생사 이별이든 꼭 만남만큼의 이별의 숫자를 채워야야 한다는 정연한 진리이다. 오늘 생이별이 내일의 만남을 더 굳게 하는 이별도 있지만 그 만남도 언젠가는 또 생사 이별이란 글자 앞에 놓인다. 우리의 삶이 유한하기에 그렇다.


부모 자식이든, 사랑하는 이든, 벗이든,---우리는 그 모두와 만남이 있는 한은 반드시 이렇듯 생이별이든 생사 이별이든 한다. 인생길은 그렇게 모든 만남과의 이별 여행길이다.


나는 어제도 이별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오늘도 내일도 이별여행을 떠나고 떠날 것이다. 오늘은 또 누구를 만나고 이별을 해야 하는가? 생이별만은 괴롭기에 하지 말았으면 한다. 내 그림자에게도 조용히 물어본다.


"여보게! 자네와 난 언제쯤 이별할 겐가? 사실 말이지. 산다는 게 좀 시틋하단 말이지. 그날이 오늘이든, 내일이든, 편히 맞을 준비가 되어 있으니 마음대로 하시게."


내 그림자와도 언젠가 영원히 이별할 것이기에 말이다.


화성문화원 강의가 있는 날, 비가 오락가락하고 가을바람 스산한 늦가을 날이다. 마삼근 몸뚱이의 이별여행에 참 좋은 날이다. 서둘러 가방을 챙겨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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