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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헌 간호윤 Nov 18. 2021

이별, 여행

서둘러 가방을 챙겨 길을 나선다.


연암 박지원 선생은 『열하일기』 「막북행정록」에서  '이별'을 이렇게 말하였다.


“인간의 가장 괴로운 일은 이별이요, 이별 중에도 생이별(生離別)보다 괴로운 것은 없을 것이다. 대개 저 하나는 살고 또 하나는 죽고 하는 그 순간의 이별이야 구태여 괴로움이라 할 것이 못 된다."



언젠가 안산 논길을 걷다 찍은 사진을 보았다. 무작정 떠난 여행. 혼자인 줄 알았는데 내 그림자가 동행했다.

유행가 가사를 빌릴 것도 없이 삶은 인생길이다. 겨우 마 세근 밖에 안 되는 마삼근 몸뚱이를 지닌 그 인생길에서 수많은 이들을 만나고 이별한다. 잠깐 하는 이별에서  죽고 사는 영원한 이별도 있다. 


연암 선생은 죽고 사는 이별이 살아 이별하는 생이별만 못 하다고 한다. 죽고 살았기에 이미 서로 볼 수 없다. 이별로 인한 괴로움을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체념이 앗아가서이다. 그러나 살아 이별은 만날 수 있기에 괴로운 것이다.  연암 선생은 만날 수 있는 것을 만날 수 없게 하니 고통스럽다고 말한다.


생이별은 만남이 깊을수록 괴로움도 깊다. 이별의 생채기에 딱지가 앉고 떨어져도 생이별의 상흔은 그만큼의 만남의 깊이로 남는다. 문제는 생이별이든 생사 이별이든 꼭 만남만큼의 이별의 숫자를 채워야야 한다는 정연한 진리이다.  오늘 생이별이 내일의 만남을 더 굳게 하는 이별도 있지만 그 만남도 언젠가는 또 생사 이별이란 글자 앞에 놓인다. 우리의 삶이 유한하기에 그렇다.


 부모 자식이든, 사랑하는 이든, 벗이든,---우리는 그 모두와 만남이 있는 한은 반드시 이렇듯 생이별이든 생사 이별이든 한다. 인생길은 그렇게 모든 만남과의 이별 여행길이다.


나는 어제도 이별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오늘도 내일도 이별여행을 떠나고 떠날 것이다. 오늘은 또 누구를 만나고 이별을 해야 하는가? 생이별만은 괴롭기에 하지 말았으면 한다.  내 그림자에게도 조용히 물어본다.


"여보게! 자네와 난 언제쯤 이별할 겐가? 사실 말이지. 산다는 게 좀 시틋하단 말이지. 그날이 오늘이든, 내일이든, 편히 맞을 준비가 되어 있으니 마음대로 하시게."


내 그림자와도 언젠가 영원히 이별할 것이기에 말이다.


화성문화원 강의가 있는 날, 비가 오락가락하고 가을바람 스산한 늦가을 날이다. 마삼근 몸뚱이의 이별여행에 참 좋은 날이다. 서둘러 가방을 챙겨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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