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조선 실학을 독(讀)하다

-들어가며(1)

by 휴헌 간호윤

나는 조선인인가?

아! 18세기, 실학은 없었다. 실학은 오로지 저이들만의 용어였다. 조선의 권력은 실학을 사용치 않았다. 조선의 권력은 실학을 자신 들의 권력과 기득권을 탐하려는 불온한 용어로 여겼다. 18세기는 정관사 ‘The’의 세계였다. 정관사(定冠詞)는 명사 앞에 붙어서 지시나 한정을 뜻한다. 인간 앞에 ‘양반’이란 정관사가 붙어야만 인간이던 시절이었다. 18세기 조선은 양반의, 양반에 의한, 양반을 위한, 양반, 그들만의 세계였다. 이 세계에서 조선의 일부 지 식인들은 도발적인 의문을 품었다. 혁신은 그렇게 위기를 품은 변 방에서 시작되었다. 저이들은 글을 통해 조선이 위기임을 적시하고 있었다. 중앙에는 아직도 새날을 알리는 미명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 책은 이러한 변방에서 혁신을 외친 저이들과 저이들의 글을 독 해한다.


흔히들 문예부흥시대라 하는 영·정조 시대였지만 조선은 아직 도 중세라는 어둡고 긴 터널을 통과 중이었다. 조선은 왕의 나라였다. 만인지상(萬人之上) 임금과 만인(萬人) 백성만이 존재하고 왕 국과 가문의 질서만이 삶이었다. 저이들의 글을 통해 본 조선의 정 치·경제·사회·문화는 모두 마치 고드름처럼 한 방향으로만 자랐다. 첫새벽부터 일어나 오체투지로 살아가는 조선 백성들로서는 극 한의 한계 상황이었다. 더욱이 관료들 사이에는 부패와 무능, 금권만능과 협잡, 지식인 사이에는 패거리 문화와 사치 풍조가 만연했다.


조선의 지도층은 고약하고 폭력적으로 변해버린 18세기 조선식 유학을 숙주로 곳곳에서 악취를 무한 배설했다. 유학은 왕권을 강화하는 취면제, 향신료 혹은 도구적 지식으로 전락했다. 글쓰기는 출세를 돕는 주요 수단일 뿐이었다. 유학이 지 향하는 대동세계(大同世界)라는 이상향은 중세의 터널에 갇혀버렸다. 조선은 그들만의 이상향을 제시하며 빈 소리와 헛소리만 가득 한 채 먹을 것을 준비해놓지도 않고 굶주린 백성들에게 식사를 권 하는 양반 세계(兩班世界) 일뿐이었다.


이러한 국가 현안에 ‘일부 유학자들’이 나섰다. ‘일부 유학자들’을 풀이하면 조선 변방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가난한 지식인들이었다. 정치에 참여했더라도 미관말직에 지나지 않는 이들이었다. 인 생역정은 기구하였으며, 가난은 삶 자체였지만 분명 전복적 유학 지식인의 출현이었다. 저이들의 삶은 ‘무엇’이 될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렇게 중세 조 선의 터널 저 멀리 미미한 빛이 비쳤다. 그것은 분명 한 방향으로만 자라는 고드름을 녹이기에 충분한 실학이라는 빛의 내비침이었다.


저이들, 즉 일부 유학 지식인들은 자기 삶을 스스로 통제하였다. 핵심은 신민(臣民)과 문중(門中)이 아닌 ‘나’였다. 저이들은 존엄한 개인으로서 길을 비틀거리며 걸었다. 개개인의 삶이라곤 없는 왕권 사회에서 저이들은 ‘나는 조선인인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 삶을 송두리째 빈천과 바꾸었다.


저이들에게 학문과 글쓰기는 더 이상 관료가 되기 위한 학문도 아니었고, 성정을 읊조리는 문학도 아니었다. 저이들은 가난과 멸시의 삶을 글쓰기와 환전하여 학문을 통한 사회 개혁을 꿈꾸었다. 개인에서 국가로 학문의 영역이 확대됨이요, 성리 담론이란 학문 알 고리 즘에서 실용적 배움이란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었다. 문자가 상층 문화의 전유물에서 하층문화를 조망하는 공유물로 전환되는 것이기도 했다. 이게 ‘신조선’이라는 이상향에 대한 ‘실학’이었다.


이른바 실학, 혹은 북학을 통해 저이들은 요동치는 대외적 현실과 영·정조의 탕평책 속에서 조선을 중세라는 터널에서 벗어나게 하는 빛이 되었다. 탈중화(脫中華), 탈성리학(脫性理學)은 그 시작이었다. 이를 ‘조선 학’(朝鮮學)이라 부르고 싶다. 조선학은 관념화되고 박제된 정신에 서 생생히 살아 요동치는 몸으로의 전환이었다. 유학은 비정한 정 신에서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 오감이 감도는 인간적 몸으로 바뀌 기 시작했다. 비정한 유학에서 몸은 정신의 타자일 뿐이었다. 하지만 저이들의 글은 몸이 주체임을 분명히 했다. 몸은 주체로서 정적 인 문화에서 동적인 문화로 급격히 방향을 틀었다.


저이들의 글은 단순히 읽고 쓰는 게 아니었다. 시각·청각·후 각·미각·촉각 다섯 가지 감각이 모두 작동하여 살아 숨 쉬는, ‘민족 성과 고유성’, ‘인간성과 보편성’, ‘민중성과 현실성’을 아우르는 학 문으로서 ‘실존 실학’이었다. 글줄마다 경세치용이요, 이용후생이 자연스럽게 언급되었다. 글에는 건전한 가치관과 도덕과 정의와 양 심을 본 밑으로 한 인간주의 샘물이 흘렀다. 좋고 싫음이 아닌 옳고 그름이란 인간 중심의 실존 실학 논리였다. 실존 실학은 바큇살처럼 사방으로 내뻗치며 조선의 미래를 방사(放射)했다. 저이들 글은 정 치·경제·사회・문화에 걸쳐 다양하면서도 전문적인 식견과 철학으로 조선의 비전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