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길을 가는가?"
악몽은 시작도 않았는 데 꽤 긴 악몽을 꾼다. 법정 스님의 <텅 빈 충만>을 읽는다. 어느 비바람이 치던 날 카잔차스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쓰신 글이다. "한낱 종이벌레"라는 말이 가슴에 꽂힌다.
“가슴에 녹이 슬면 삶의 리듬을 잃는다”는 말씀도 보인다. 주례사에서 '시를 읽으라'하신 말이지만 밑줄이 그어진 것을 보니 여운이 꽤 깊었나보다.
나름 그렇게 살려고 했다. 철이 들고 배움의 길로 들어서서부터는 정의, 민주, 생명, 사람, 존중, 선생, 평등, 이런 단어들을 가슴에 품으려했다. 꽃이나 달을 볼 줄 알고 인생을 제법 논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오늘, 이 글을 쓰는 나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내가 읽고 쓴 저 책들은 한낱 종이벌레가 아닌가?"
"나는 내 길을 가는가?"
어제 비를 내린 하늘은 아직 시치미를 떼지 못했다. 잔뜩 흐린 폼이 여차하면 퍼부울 태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