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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헌 간호윤 Mar 21. 2022

글쓰기란 무엇인가?

글쓰기는 내 마음의 치료제요, 해원(解寃)의 도구

연암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남을 아프게도 가렵게도 못하고, 구절마다 쓸데없이 노닥거리기만 하고 이런들 저런들 흐리터분한다면 이런 글을 장차 어디에 쓰겠는가?(言不痛不癢 句節汗漫優柔不斷 將焉用哉)”(박종채,『과정록』)”



글쓰기는 내 마음 치료제요, 해원(解寃) 도구이다. 자음과 모음이 내 마음속 저러 이러한 괴로움과 즐거움을 족집게처럼 짚어내 내 순간과 일상의 몰입을 적바림 할 때면, 글은 내 속을 알아주는 내 가장 친한 벗이요, 가장 무한한 고독을 치료하는 의사요, 가장 절대자다. 이럴 때 내 서재 휴휴헌은 하나의 장쾌(壯快)한 우주가 된다. 



허나 늘 이런 게 아니다. 고백하건대 가슴속에 분명 바글바글 대는 그 무엇이 시궁창 거품처럼 들끓어도 글이 겉도는 경우도 있다. 엊그제까지 그렇게 동심협력하던 글자들이 그렇게 냉정하고 비정할 수 없다. 나를 데면데면 보는 게 내 생각과 잡동사니는 등가교환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럴 때 글은 비참이요, 우울이요, 폭력이요, 악다구니를 억세게 퍼붓는 게 열흘 장맛비보다도 흉하다. 이러면 내 휴휴헌은 그야말로 정녕, 짜장 난장판이다. 생각은 현실이란 코르셋에 갇혀있고 사고는 미래라는 미늘에 걸렸다. 자음족과 모음족 사생아인 기기묘묘하게 생겨먹은 책벌레들이 쏴! 쏟아져 나와 물고 뜯는다. 



외주(外注)  인생은 망자(亡者)의 미래! 

갈(喝)!



이 모두 글 공덕 모자란 소치 아니런가. 

그럼 몸 공덕이라도 하자. 

품이라도 팔아보자. 

들메끈 조여 매 듯, 옷섶 여민다. 

내 ‘댕돌같은 글’은 못쓸지라도 ‘맹물에 조약돌 삶은 글’만은 쓰지 말자. -<사이비>2 <머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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