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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헌 간호윤 Mar 24. 2022

‘책 찌꺼기론(論)’

숟가락과 젓가락이 밥맛 모르듯

‘책 찌꺼기론(論)’


아직도 20대 대선의 긴 터널을 지난다. 생각에 생각이 마구 뒤섞여 엉망이 된 모양새다. 세상 살아내는 게 떡국도 책도 비기(秘記)가 아니라는 명백한 사실을 절감한다. 나잇살을 들이대는 떡국은 이왕 알았지만, 내가 보고 또 보고, 쓰고 또 쓴 책 역시도 그랬다. 


 <장자>에 ‘수레바퀴 깎는 윤편씨(輪扁氏) 이야기’가 나온다. 이 윤편씨, 목수 주제를 모르고 감히 제나라 환공에게 “성인이 남겨 놓은 찌꺼기!(古人之糟魄已夫)”라며 책 무용론을 펼친다. 윤편씨 주장은 이렇다.


“수레바퀴 깎는 일로써, 성인이 쓴 책이 어째서 성인이 남겨 놓은 찌꺼기인지 설명하지요. 바퀴 깎는 일 중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굴대 구멍입니다. 너무 넓게 깎으면 굴대를 끼우기는 쉬워도 헐렁해서 바퀴가 심하게 요동치고, 너무 좁게 깎으면 굴대가 빡빡해서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마음먹은 일을 손으로 잘하니 크지도 작지도 않게 굴대 구멍을 깎습니다. 하지만 깎는다고 이것을 말로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제 기술을 자식에게도 말로 전하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환공께서 읽으시는 책을 지은 성인도 정말 전하고 싶은 것을 전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을 겁니다. 그러니 그 책에 쓰여 있는 것은 ‘성인이 남겨놓은 찌꺼기’ 아닐는지요?”


 자신의 익숙한 손길로 바퀴 깎는 기술을 글로는 전달하지 못한다는 윤편씨 말이다. 꽤 설득력 있는 책 무용론이다. 문장 기술이 손 기술만 못하다는 ‘책 찌꺼기론’이다.


그렇다. 책을 본다고 내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 윤편이 익숙한 손 감각으로 바퀴를 다듬듯, 내 몸으로 내 삶을 만들어 가야 비로소 내가 된다. 생각에 생각이 마구 뒤섞임은 세상에 대한 들끓는 욕망을 제어 못해서다. 그렇게 읽은 글줄들이 내 몸을 바람처럼 스치고만 지나갔다. 


숟가락질, 젓가락질 하루에 세 번씩 60년이 넘게 했지만 숟가락과 젓가락이 밥맛 모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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