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사이비 셋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휴헌 간호윤 Aug 29. 2022

글 사냥하다 만난, 낭패

<실패․기쁨․희망>





가끔씩 내 글 사냥을 한다. 마흔 아홉에 쓴 글을 예순 두 살에 읽는다. '13년이 지나 만난 저 시절 나, 좀 가엽다'는 생각이 드니 이 시절이 참 낭패다. 허나 아직 1%의 희망은 남아있으니 3할의 삶이 진행 중이라고 낭패에게 앙탈을 부려본다.


<실패․기쁨․희망>


‘7: 2: 1’의 법칙 



인간은 실패를 통해 성장한다. 다만 습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좋은 글귀입니다.


허나 첫 문장의 두 번째 어휘인 저 ‘실패’라는 두 글자가 몸에 익은 이들이 더 많은 듯합니다. 



7: 2: 1이라고.


‘7할의 실패, 2할의 기다리는 기쁨, 1할의 희망’ 


인생살이 마흔에 아홉, 아니 쉰에서 한 살 빠지는 나이에 와서야 깨달았습니다. 본래 ‘희망(希望)’이란 놈은 ‘바랄희(希), 바랄망(望)’입니다. 희망은 그래 ‘바람’으로 끝나는 동사라는 것을.


1할의 희망을 던져 2할의 기쁨을 기다립니다. 


3할의 삶입니다. 이만하면 괜찮습니다. 



‘실패’에 대해서도 웬만큼은 말할 수 있습니다.



실패(1)



실패란 때론 거룩한 스승이 될 수도 있지만 그 수업료는 참으로 비싸다그 수업으로 얻은 이익은 때론 거기에 든 비용보다 못할 때가 많다.” 


루소



성공은 늘 실패와 다닙니다만실패는 항상 성공을 벗하지는 못합니다루소가 말한 뜻은 저러한 이유가 아닌가합니다그래때로는 성공에게 앙탈을 부리고종주먹을 들어 을러대기도 하지만별무소용입니다말의 생김조차도 다르지만 어감을 볼작시면 더욱 영판 남남입니다


성공은 양성모음인 ,로 밝고여기에 유성음 ‘o’으로 묶여 끌밋하니 푼푼합니다실패란 놈은 ‘l' 모음이 우선 맥이 없고여기에 목젖으로 콧길을 막고 두 입술을 다물었다가 뗄 때에 거세게 나는 파열음인 이 이어지는 터라 흉흉하니 여간 짓궂게 생겨먹은 게 아닙니다


실패가 인생의 대세인 사람들이 참 많은 세상어느 대학 선전문구 처럼 바느질할 때나 실패를 썼으면 좋겠습니다



실패한 후에야 오히려 성공이 있는 법”(敗後 或反成功



『채근담(菜根譚)』에 나옵니다


참고로 ‘실패’는 일본말이라 하니, 우리말로는 ‘낭패’ 정도로 해야 하겠습니다. 



실패(2)



누구든 실패와 사귀려하지 않습니다. 


그래 녀석은 잘 아는 자만 찾습니다. 


어제부터 실패라는 놈이 찾아 와 하루 종일 붙어 앉았습니다. 


놈은 참 비할데 없이 흉측스럽습니다. 점잖게 맞으려 해도 아니 됩니다. 


그래 싫다고 밀기라도 할라치면 놈은 더욱 흉측한 짓을 합니다. 


그럴 땐 별 수 없습니다. 


녀석에게 몸을 통째로 맡기는 것입니다. 


'왔으니 갈 날도 오겠지-'하며 말입니다.



실패(3)



가만히 생각해 보니 실패에는 두 가지 사실이 있더군요.



'그 일이 끝났다'는 사실과


'새 일이 시작됐다'는 사실입니다. 



실패(4)



학문은 ‘왜(Why)?’와 ‘어쩌면(may-be)…’을 잇는 작업입니다. 


‘왜’는 의문을, ‘어쩌면’은 어리짐작을 나타내는 부사들입니다. 모두 확연함에는 모자라지요. 


학문은 ‘왜 이렇지?’라는 생각에서 시작하여, ‘어쩌면 이것이 …’라는 가설(假說)을 세우고 그 두 지점을 연결하는 작업입니다. 



학문이 종종 ‘실패’에 부채를 지는 이유입니다. 



실패(5)



실패란 때론 거룩한 스승이 될 수도 있지만그 수업료는 참으로 비쌉니다그 수업으로 얻은 이익은 때론 거기에 든 비용보다 못할 때가 많지요.” 


또 루소의 말입니다.


하지만 성공의 부모가 도전과 실패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래 오늘도 눈을 질끈 감고 도전해 보는 것입니다.


열린 문은 있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민작가 교실> 개강 첫날 대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