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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헌 간호윤 Sep 16. 2021

무제(無題)-개 이야기

물어봐! 물어봐!


<무제(無題)-개 이야기>


“물어봐! 물어봐! 자, 안 물지. 그쪽이 뛰어가니 얘가 놀란거지. 날 언제 봤다고 어떠대고 여봐야! 나도 결혼 칠 년 차야. 나이를 먹으면 다야.----- ” 


나이를 먹으면 잠이 잘 안 온다. '떡국이 농간한다'는 말은 선인들의 말일뿐이다. 살아보니 나이만큼 성숙해지지도 않고 오히려 세상사 걱정은 그만큼 더 늘어난다. 밤 11시쯤, 동네 슈퍼에서 소주를 사는 모습은 참 민망하다. 서둘러 걸음질을 쳤다. 서 너 걸음쯤, 


“컹!” 

개가 내 다리를 타고 올랐다. 물리지는 않았지만 펄쩍 몇 걸음 뒤로 물러나 개 주인을 쳐다봤다. (나는 개인적으로 개를 좋아한다. 어릴 적 산과 들을 뛰어다닐 때 개는 내 동무였다. 그러나 서너 해전 지인의 개에게 물려 병원에 가 꿰맨 자국도 오른쪽 검지에 선명히 남아있다.) 중견(中犬)쯤 되는 두 마리 개(찾아보니 더 베르만 핀셔 종이었다) 목줄을 쥔 3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성난 눈이 나에게 말했다. 


“아! 그렇게 뛰면 어떻게 합니까?”


이미 저 말에서 늧이 글렀거늘, 나는 ‘이런 괘씸한, 잘못을 누가 했는데’라는 생각을 하며 말했다.


“이 봐요! 지금 미안합니다라고 해야지, 개를 위해 내가 뛰지 말란거요.”


성난 눈이 내 말을 채가며 칠 듯이 다가왔다.


“뭐라고. 이 봐! 날 언제 봤다고 이 봐야. ----물어봐! 물어봐,-----.”


 나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멍했다. 이 아파트에서 산 지 30년이 다 된다. 떨리는 손으로 112를 눌렀다. 


“경찰을 불러. 어디 불러 봐.----. 안 물렸잖아. 얘들은 안 문다고. 경찰을 불러 뭘 어쩔 건데.----”


슈퍼 주인이 나오고, 횟집 주인이 나와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소주 한 병과 맥주 한 병을 든 내 두 손을 어디에 둘지 몰랐다. 나는 절대 이 성난 눈을 이길 수 없다. 어서 이 자리를 피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미안합니다. 내가 잘못했습니다.”


뒤돌아서는 나를 성난 눈은 개 두 마리 목줄을 움켜주고 따라왔다.


“왜! 도망가. 어디 경찰에 신고해보시지. 당신, 이 동네 살아.----”



(한번 신고하면 경찰이 출동을 해야 한다며 왔다. 자초지종을 대충들은 나이 먹은 경찰이 나에게 말했다. “전화가 많이 와 저희들도 피곤합니다. 저 친구 말이 거칠군요. 좀 참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일단 물린 것은 아니니----.")


집에 와 사 온 술을 먹었지만 그냥 맹물이었다. 


 나흘이 지났다. 


오늘, 비 내리는 아침까지 개 짖는 소리와 성난 얼굴이 내 오른쪽 다리에 선명하다. 60년을 살았다. 30년 넘게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 숫자만큼 책을 보고 공부도 학문도 해봤다. 그러나 산 경험도, 책도, 공부도, 학문도, 아무것도 이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했다. 


비가 내리더니 바람도 부나보다. 술잔조차 휘청 흔들린다. 산다는 게-----개 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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