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휴헌 간호윤 Sep 16. 2021

<작가 미상(Werk ohne Autor)> 유감有感

진실한 건 모두 아름다워


<작가 미상(Werk ohne Autor)> 유감(有感)


“눈길 돌리지 마, 쿠르트. 진실한 건 모두 아름다워.”


이모인 엘리자베스 메이(사스키아 로젠달 분扮)가 조카 쿠르트에게 예술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는 말이다.


 “이 작품들은 네 것이 아니야. 넌 네 것을 찾아야 해.”


예술 학교에 입학한 쿠르트에게 안토니우스 판 페트 텐(올리버 마수치 분扮) 교수가 하는 말이다. 


상영시간이 무려 3시간 30분, 극단의 이념, 관념의 통제 속에서 진정한 예술의 길을 찾는다는 묵직한 주제를 다루었다. 영상이며 대사, 스토리까지 수작(秀作)임에 틀림없다. 


이 영화는 실존 화가인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 1932년 2월 9일 ~ )의 삶을 따라잡았다. 리히터는 스물일곱에 나치에 의해 정신병원에 감금되고 사망한 이모와 독일 친위 대원이자 정신과 의사가 장인이다. 그는 동독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에 전쟁을 겪었고 동서독이 분단된 후에는 전체주의에 대한 반발로 서독으로 탈출한 현대 미술의 거장이 되었다. 예술의 힘에 대해 묻는 질문에 리히터는 “예술은 위로를 주기 위해 존재한다”고 답한 바 있다.



‘진실을 보는 눈’ ‘네 것’은 동의어이다. 이는 화가나 글 쓰는 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삶이기도 하다. 진실과 네 것(=내 것)을 얻으려면, 이것을 찾으려는 마음이 선행해야 하지만 문화라는 관습적인 통념이 이를 막는다. 내 것을 찾고 진실을 보는 눈이 있어도 ‘용기’가 없으면 이를 실행 못한다. 


쿠르트는 ‘진실을 보는 눈’ ‘네 것’, 그리고 ‘용기’까지 있었다. 이러한 쿠르트의 삶을 이끌어 준 것은 진실의 영감을 준 이모, 거짓을 배격하는 예술학교 교수, 그리고 죽은 이모와 같은 이름의 여인 엘리 시반트(폴라 비어 분扮)의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저 세 사람은 화가로서 쿠르트의 삶을 흔들림 없이 신뢰한다. 


‘저 세 사람이 없었다면 과연 쿠르트는, 쿠르트(게르하르트 리히터)가 되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 속에서 쿠르트는 로또 번호의 비유로 예술을 해석했다. 3,7,9,1,5,7이라는 숫자가 있다 치자. 이 여섯 개의 숫자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 하지만 이 번호가 ‘로또 당첨 번호’라는 맥락 안에 놓일 때는 의미가 다르다. 쿠르트는 이를 ‘아름답다’했다. 저 세 사람에게 쿠르트는 사람들 중에 특별한 화가라는 문맥으로 읽히지 않았을까.


우습게도 ‘나를 특별한 글 쓰는 이로 여기는 저런 이들이 ---’하는 생각을 하다가, 혹 내 글도 내가 아닌 사회적 관습으로 쓴 글이 아닌가 한다. 정확히 말하여 ‘작자가 있어도 작자가 없는 작자 미상인 글’ 말이다. 


그런 유감(遺憾) 아닌 유감(有感)을 해보는 오늘이다. 




 


<작가 미상>의 제작 노트((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 code=159794) 참조.





이전 03화 <발자크의 나귀가죽>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