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부러진 비녀. 엄니가 돌아가시면서 살강의 깨소금 항아리 말씀을 하셨어. 그래, 그동안 까맣게 잊어버렸다 엊그저께 깨소금 항아리를 쏟아 보니 부러진 비녀가 그 속에 들어 있더라구.”
“그래, 뭐 금비녀라도 되나?”
“무신, 엄니가 꽃님이 언니 주려고 장만했다가 부러진 것이 아닌가 해. 비녀에 뭐라 적혀있는데 헝이나 나나 글자를 모르잖어. 여하간 뭐, 여자 꺼니까 꽃님이 언니 주라는 거겠지.”
“근데, 돌이야! 죽이 아저씨는 요 며칠 안 보이더라.”
“응. 떠난다던데. 어디로 갈지, 미리 알아보려 간다고 하였어. 사실, 진작 떠날 건데. 우리 때문에 못 떠난 거지, 뭐.
“그건 그렇지. 돌아! 그런데, 그날, 말이어. 그 회회아비놈 집에 불을 난 게 혹 죽이 아저씨 아닌가?…”
“글쎄, 죽이 아저씨에겐 딱히 그럴만한 이유는 없잖어. 여하간 회회아비에게 그런 일을 낼만한 사람들이 우리 동네에 어디 우리뿐이겠어. 그나저나 헝! 저물녘까진 남경(현재의 서울)에 들어가야 해.”
돌이는 코대답을 하며 곰이에게 어서 가자고 오금을 박고는 부지런히 걸었다. 금주(衿州,지금의 경기도 시흥시)를 지날 무렵 다리도 쉴 겸, 안양사(安養寺)로 찾아들었다. 맑은 시내가 절 앞으로 흘렀다. 돌이는 곰이와 두어 모금 목을 축이고 절간으로 들어섰다.
안양사는 태조 왕건이 세웠다. 돌이와 곰이가 조약돌을 잡을 듯한 시냇가를 건너 절에 들어가 보니 절의 크기도 크지만 마당에 2월 보름 연등절에 걸어 놓았던 수박, 연꽃, 마늘, 참외 등 식물모양과 거북이, 봉황, 잉어 등 동물모양의 연등이 이리저리 걸렸다. 그 사이사이엔 종이로 개, 호랑이, 사슴, 꿩, 토끼 모양을 오려 매달아 놓았다. 절의 추녀에도 일월등, 선인등, 칠성등, 북등, 누각등이 죽 걸린 것이 여간 장관이 아니었다.
절 남쪽 절 마당 한 가운데는 탑이 우뚝 솟아 있었다. 벽돌을 포개어 7층으로 쌓고 그 위는 기와로 덮었다. 맨 아래층은 빙 둘러서 12칸의 긴 행랑방을 만들고, 벽마다 부처님과 보살, 혹은 사람과 하늘을 그린 탱화를 걸어두었는데 색채가 어찌나 화려한지 돌이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아미타불 그림은 더욱 화려하였다. 푸른 연꽃이 깔린 큰 대좌에 오른발을 왼편 허벅다리에 얹고 왼발을 오른편 무릎 밑에 넣고 앉아 있었다. 돌이의 눈엔 그 표정이 너무나 평화롭고 입가의 미소는 온화해 보였다.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황금색 가사를 입고 있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저런 부처님을 모시고 나쁜 짓을 일삼는 승려들이 문제였다. 돌이는 저도 모르게 두 손을 합장하고 “나무아미타불”하고 인사를 두어 번이나 구부렸다. 곰이도 돌이가 하는 양을 따라하며 웃었다.
밖에는 난간이 있었다. 그 뒤에서 맑은 노랫소리가 났다.
박 넝쿨 다 끌어들여도 겨우 한 두레박
가난한 부엌살림 다 긁어도 겨우 한 두레박
가세나! 가세나! 멀리멀리 가세나!
저기 저 산마루 멀리멀리 가세나!
서리 내리지 않으면 낫 갈아 삼 베러 가세나! <호목(瓠木)>
가사 장삼을 입은 스님은 나이가 쉰 중반쯤 되어 보이는 데 몸가짐이 단정하며 엄정하였다. 양 볼은 두툼한데 입은 모지고 눈은 장비 고리 눈처럼 빛나는 것이 여느 중들과는 어딘지 좀 달라보였다.
당시 중들의 짓거리는 궁궐의 비호 아래 사뭇 누가 더 많이 타락하는지를 경쟁하는 듯하였다. 순천사(順天寺) 주지 같은 경우, 세도를 믿고 방자하게 기생 자운선(紫雲仙), 상림홍(上林紅) 등과 어울려서 난을 저지른 것은 온 고려 사람이라면 다 아는 이야기다.
귀족과 함께 놀아나며 세상을 개떡같이 주무르는 것은 이 중들이었다. 나라에서는 승록사(僧錄司)를 두어 중과 절을 관리했으나 오히려 폐단을 더 키웠다. 중들은 국사(國師), 대선사(大禪師), 선사(禪師), 대덕(大德), 대선(大選) 등의 벼슬까지 하며 조정과 한 패거리로 놀아났다. 말로만 부처님인 중들 천지였다. 중들의 부처님에 대한 염불소리는 하안거(夏安居)와 동안거(冬安居)를 번갈아 드는 지 듣지 못하니 더 이상 사찰은 도를 닦는 도량이 아니었다.
물론 한 때는 개경의 장랑(長廊)에서 매 10칸마다 장막 안에 불상을 설치하고, 큰 독에 멀건 죽을 끓여 저장해 두고 국자를 놓아 둔 적도 있었다.
“애동대동한 사람들이구먼. 응, 이리들 와 앉아들 보게. 그래 어디를 가나. 난 일연(一然,1206∼1289)이라고 하지. 나는 저 강화도의
선월사(禪月寺)에 머무는데, 잠시 일이 있어 나왔다가 이 절의 객승으로 묵는다네.”
돌이가 가만 보니, 음성이 부드럽고 얼굴에도 욕심이 없어 보였다. 돌이는 엉거주춤 앉으며 인사치레를 하였다.
“야, 일연 시님이유. 서경을 좀 가려구유. 전 돌이유. 그런데 아까 부르신 노래가 무신 뜻이유. 동이야! 이리와 이 옆에 앉아.”
“어, 그 개 잘 생겼네. 꼬리가 짧은 것을 보니 경주개로군. 나도 경상 땅 장산군(章山郡:지금의 경산)이 고향이라네. 저 달성의 비슬산에 묵을 때 이런 개를 한 마리 키웠었지.”
“예, 잘 생겼지우.”
“그렇군. 그런데, 자네. 요즈음, 세상사는 것이 험하지. 막 돼 먹은 세상 아닌가. 내 아버지도 자네와 같은 백정이시지. 암만 새벽같이 일어나 가래톳이 서도록 일을 해봤자 조세네 뭐네 모두 빼앗겨 생쥐 입가심할 것조차도 없으니. 가을이 풍요로워야하는데 어디 그런가. 박넝쿨을 모두 거둬들여도 남는 것은 한 조각의 표주박뿐이고, 가난한 부엌살림을 모두 합쳐도 한 바가지를 채우지 못하니 참 딱하기 그지없는 곤궁한 삶이야. 하지만 제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는 서리가 내리지 않으면 낫을 갈아 삼베를 베러 가야지. 멍하니 아무 일도 없이 앉아 있으면 입에 거미줄 밖에 더 치겠나. 자네, 돌이라 했지. 땅에 뿌린 씨앗은 간혹 나지 않는 것도 있겠지, 그렇지만 뿌리지 않은 씨앗은 아예 싹이 날 수조차 없다네. 안 그런가? 젊은이!”
돌이는 가만 듣고 보니 아까 스님이 부른 노래를 말하는 듯한 데 정확히 무슨 말인지 몰라서 물었다.
“아, 야. 그러니까 설래무네 ‘서리’는 잘난 귀족들의 착취를 말하고…, 하기야 지들에게는 흔해 빠진 게 우리 같은 놈들이 다 일꾼이지우. 뭐. 그건 그렇고, 좀 자세히 말씀해 주시겄시우.”
일연은 돌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그렇다네 ‘낫을 갈아 삼을 베 듯’이는 백정이나 천민들의 반항이요. ….”
“그러니까. 새로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뭐, 그런 마음을 굳게 다져먹으라는 노래란 뜻이네유.”
“허! 그렇지, 그렇지! 총명하구먼. 금방 말귀를 알아듣네. 그런데 아까 개경에 간다고 그랬던가? 왜, 무슨 일로 가나?”
돌이는 머뭇거리다가,
“야! 심을 찾아보려구유. 시님도 말씀하셨듯이 이런 시상을 살려면 심이 있어야 하지 않겠시우.”
“힘! 힘이라고! 그래, 그 힘을 찾아 어디에 쓸꼬?”
“그냥유. 심이 없으면 사랑하는 것도 못 지키잖어유.”
“그 힘이 어디 있는데?”
“그러니깐두루 셔울 구경하는 셈치고 개경으로 가는 거잖유. 거긴 셔울이니 심도 찾을 수 있겠지유, 뭐.”
일연 스님은 돌이의 얼굴을 한참 쳐다보았다. 그만하면 생김새도 미추름한 것이 됨됨이도 드레졌다. 곰이는 언제부턴지 저만큼 털이 굽실 굽실한 누런 개하고 장난질이다. 말끄러미 돌이를 쳐다보던 스님이 한참 만에 눈길을 거두더니 아까보다도 더 따뜻한 말투로 물었다.
“그래, 돌이라고 했지. 그런데 글은 아는가?”
“아니유, 몰라유. 배운 적도 없시우.”
“그래, 힘을 찾으려면 배워야하는데 나한테 글 좀 배워보지 않으려나. 돌이라 했지. 돌이는 이게 무슨 말인 줄 아는가?”
“잘 들어 보게. 요 첫 구절은 ‘한심한 참새야 어찌해서 그렇게 되었느냐’이고, 두 번째 구절은 ‘어린 것이 그물에 걸리고 말았으니’이고, 요 세 번째 구절은 ‘눈은 두었다가 무엇에 쓰려느냐’이지. 맨 마지막 구절은 ‘불쌍하게도 그물에 걸린 못난 참새야’로 풀이되지.”
“그러니깐두루 참새야말로 덫에 치인 범이요, 그물에 걸린 고기라. 들숨도 날숨도 쉴 수 없는 처지란 말이지유.”
돌이가 말참례를 하였다.
일연 스님은 빙긋이 웃으며 “그렇지.”하고는 말을 이었다.
“여기서 ‘참새’는 두영철이란 사내이고 ‘그물’은 정치판이지. 정치판에서 자칫 죽을 수도 있으니 나가지 말라는 뜻도 있지만, 그물에 걸린 참새꼴이 안 되려면 세상을 잘 보라는 말도 되지. 우리가 본다고 보는 것이 아니기에 하는 말이지. 돌이! 지금 자네는 나를 보고 있지만 암만 보아도 나를 아는가? 모르지, 얼굴만 아는 거지. 처음 보는 내 속을 어찌 알겠나? 물론 참새가 다른 노래에선 왕이나 권력자로 바뀌어 나타나기도 하니, 노래를 들을 때는 그 뜻매김을 잘 새겨 들어야하네.”
그러면서 스님은 말을 이었다.
“생계불멸 불계부증(生界不滅 佛界不增)이로고.”
돌이가 그 말씀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우리 세상은 줄지 않고 부처님의 세상은 늘지 않는다’라는 말이지.”
다시 돌이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지만 스님은 알 듯 모를 듯 웃기만 하였다. 돌이는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도토리를 터는 큰 메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돌이는 ‘힘이란 것이 글 속에 있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하였다. 노래를 들을 때 그 뜻매김을 잘 새기라는 말에선, 그동안 불렀던 이 노래도 비로소 이해가 갔다.
참새는 어디서 날아왔는가
한해 농사가 아랑곳없구나
늙은 홀아비 혼자 갈고 매었는데
벼와 수수를 모조리 없애다니 <사리화>
아버지의 죽음도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왕은 이 나라 백정들에게 세금을 무겁게 매기고 방귀깨나 뀌는 힘 있는 놈들은 백정을 뼛속까지 우려먹는다. 참새는 저들을 말한다. 늙은 홀아비만 남은 것으로 보아 젊은이들은 모두 전장에 나가고 없다는 뜻이다. 여기에 관청의 가혹한 세금 독촉은 곡식이 아직 푸른 데도 성화이고 심지어 의지가지없는 고아에게까지 징수할 정도였다. 그러니 집안 식구들 모두 모여서 머리를 맞대지만 별 뾰족한 수도 없다. 밭에 뽕나무・밤나무・옻나무・닥나무 따위 유실수를 재배하도록 장려한다지만, 비가 오나 햇볕이 내리 쬐나 밭이랑에 엎드려 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저들을 살찌우는 세금만 만들어 내는 꼴이니 밭이랑 한 골 한 골이 세금장부인 셈이었다.
눈물로 벼포기마다 심어도 추수한 곡식의 반을 떼어 지주에게 세금을 바치고 남은 것에서 다시 십분의 일을 떼어 나라에 바치는 데도 가진 자들은 백정들을 모기정도로 생각하였다. 여기에 또 향리들에게 떼이고 종자를 빼고 나면 식구들은 먹을 것이 없기에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게 백정들의 삶이다.
여기에 권력자들의 토지겸병까지 심하니 땅을 뺏기고 소작농으로 전락한 백정들이 오히려 몽고병이 오기를 기뻐했다 한들 나무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이 노래에서 곡식을 쪼아 먹는 참새가 왕과 귀족이고 백정이 이 노래를 지어 저들을 비꼰 것임을 돌이는 이제야 알았다.
돌이는 아버지가 왜 글을 배우라고 하였는지도 이해갔다. 돌이는 속으로 외쳤다. ‘그래, 이게 힘이다. 글이 힘이었어!’
곰이는 저 만치서 어깨를 후두둑 떨더니 소나무 밑둥치에 오줌을 누고 있었다. ‘저러다 이 절 스님에게 경이라도 치면 어쩌려고---’하는 생각을 하며 돌이는 스님을 따라가야겠다고 생각하였다.
-------------
그로부터 며칠 뒤, 돌이와 곰이는 일연 스님을 따라서 강화도 선월사에 들어가 불목하니로 지내며 글공부를 시작하였다. 돌이는 그동안 사찰의 중들은 모두 나쁘다고만 생각했는데, 지눌, 혜심, 천인, 천책, 운묵 등 꽤 괜찮은 스님들도 있음을 알았다.
특히 일연 스님은 지눌(知訥) 스님의 법통을 계승하였는데, 스님의 말씀이 지나간 자리마다 폭포가 쏴와 떨어지고 낙락장송이 우뚝우뚝 솟는 듯했다. 돌이가 처음 만난 날 들었던 ‘생계불멸 불계부증’이란 말이 삶의 경계는 소멸이 없고, 부처의 한계는 끝이 없어 무궁무진하다는 뜻이며 일연 스님이 현풍(玄風)의 포산(包山) 무주암(無住庵)에 계실 때 참선하여 깨달아 얻은 구절임도 알게 되었다.
하루는 돌이가 제 신세가 처량하여 승방에 쭈그려 앉았는데 일연 스님이 이런 말을 하였다.
“돌이야! 지눌 스님께서는 ‘인지이도자(因地而倒者)는 인지이기(因地而起)라’고 말씀을 하셨다. 땅에 넘어진 자 그 땅을 짚고 일어서야 한다라는 말씀이시지. 그렇잖니? 넘어져 봤자 이 땅 아니냐. 그러니 너도 이 땅을 짚고 일어서면 되지. 네 아부지도 엄니도 모두 돌아가셨지만 너도 네 누이도 버젓이 살아 있잖니. 그러니 일어서야지.”
그러며 일연 스님은 돌이의 어깨를 툭툭 쳐 주었다.
돌이는 우쩍 힘이 나는 듯했다. 돌이는 줄곧 이 말을 가슴에 넣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연 스님은 다른 절의 스님과는 달랐다. 관으로부터 물품을 받지 않았으며 탁발을 하거나 밭을 손수 가꾸었다. 제자라야 머리가 댕글댕글한 무극(無極)이란 솔붕이 꼬마스님만이 시봉하였다. 일연은 그 때 우리나라의 역사를 담은 『삼국유사』라는 책을 만들고 있었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었다. 돌이가,
“시님! 시님이 지금 쓰시는 그 『삼국유사』는 어떤 책이유”
라고 물었다. 일연은 쓰던 글을 멈추고 책상을 옆으로 물린 뒤 돌이에게 들어와 앉으라고 하였다.
“돌이가 이 책에 관심이 있는가 보구나. 옛날 성인들은 예절과 노래를 가지고 나라를 세웠단다. 나는 이러한 우리나라의 예절과 역사를 쓰려했다. 내가 틈만 나면 온 나라를 돌며 여러 이야기를 모은 것은 모두 이 책을 쓰기 위한 자료이지. 지금 기록해 두지 않으면 모든 게 다 없어진단다. 나중에 다 쓰거든 너도 읽어 보거라.”
“예, 나라를 세우는 게 예절과 노래라고유? 예절은 알겠는데, 노래가 그렇게 중요해유?”
“암, 세상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대로 담긴 것이 노래이지.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다고 노래는 그렇게 마음을 표현하지. 그렇기에 노래를 가만히 들어보면 그 시대가 어떠한지를 아는 게지. 나도 이 책에다가 우리 노래를 넣었단다.”
돌이가 놀라며 물었다.
“시님! 제 아부지께서도 엄니를 위하여 속요집을 만드셨는데요. 그럼 그것도…”
“뭐! 네 아부지께서 글을 아셨니? 그럼 그 그 속요집은 어디 있니?”
“사실 아부지는 엄니가 노래를 좋아하신다고 행상을 떠나시면 속요를 채집해 오셨시유. 따지고 보면 속요를 채집하려 갔다가 돌아가신 거나 마찬가지유.”
일연 스님이 놀라 물었다.
“그럼, 지금 네 아부지께서 만들었다는 그 속요집은 집은 어디 있니?”
“예, 제가 경주서 가져와 집 다락에 넣어 두었시우.”
돌이와 일연은 이 날, 한 참동안 이야기를 더 주고받았다. 돌이 아버지가 만든 속요집은 내년 봄 얼음이 풀리면 돌이가 집에 가서 가져오기로 하였다.
돌이는 그날, 아부지가 노래를 채집한 일이 꽤 큰 일임을 비로소 깨달았다.
선월사에서 그렇게 여름을 나고, 가을을 보내고, 겨울이 되었다. 돌이는 글을 읽은 횟수를 세는 서산(書算)을 한눈씩 제쳐놓고 글 읽는 재미에 점차 빠져들었다. 솔붕이 스님과도 속내를 제법 드러내었다. 곰이는 스님이 키우는 멍구라는 하얀 털이 눈을 뒤덮은 개하고 동이와 어울리며 흘러가는 날과 달만 이렁저렁 세었다. 솔붕이 스님은 이런 곰이를 여전히 머슬머슬하게 대했다.
돌이가 보기에 곰이 나름대로는 무예를 익힌다고 했지만 늘 멍구, 동이와 함께 어울리며 와락, 펄떡, 껑충 뛰어 다니기 일쑤였다. 이럴 때면 솔붕이 꼬마스님은 혀를 차며 일연 스님에게 ‘저런 종자를 왜 절에 데려오셨냐’고 볼이 탱탱 부어서는 구시렁구시렁 되는대로 말하곤 했다. 돌이는 한 겨울을 나며 화로를 끼고 앉아 화젓가락으로 재에다 글씨를 썼다. 심심하면 곰이는 그러한 돌이에게 다가와 ‘재에다 그림만 그리고 앉았구먼’하며 퉁박을 주었지만, 눈썰미가 없어도 돌이의 글씨가 제법 틀을 잡아가는 것이 보였다. 돌이도 한겨울을 나며 가만가만 곰이를 보니 슬금한 구석이 있었고 동이는 여간 똑똑한 개가 아니었다.
근 반 년이 넘도록 한무릎공부를 착실히 한 덕으로 돌이는 드디어 떠듬적떠듬적 글을 소리 내 읽기 시작했다. 더욱이 아부지가 채집했다는 속요집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글공부가 더욱 잘 되었다.
그렇게 새해가 밝고 흰 눈이 온통 절을 뒤덮은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곰이는 동이와 멍구를 데리고 놀다 삼태기에 재를 퍼 나오던 솔붕이 스님과 부닥뜨려 눈총을 한껏 받았다. 뭍에 사는 사람이 절에 들어와 뒤늦게 철수하던 몽고놈들에 의해서 저 떡전거리가 불태워지고 사람들이 많이 끌려갔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이미 그 일이 있은 지 석 달이 지나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