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리 가시리잇고
6장. 가시리 가시리잇고
“아직꺼정 먹고 있지?”
달님이가 회회아비네 만두가게를 다녀오자 돌이가 성급히 물었다.
“응! 아무래도 밤새 술을 먹을 듯한 기세던걸.”
곰이가 그것보라며 고개를 끄덕거리며 돌이를 쳐다보았다.
“돌이야! 내 말이 맞잖어. 그눔들이 벌써 술자리를 끝낼 눔들이 아니라구. 그눔들에겐 오늘이 중양절 아니냐.”
돌이 엄니 초상으로 달님이네는 중양절을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 떡전거리 사람들도 중양절 명절을 보내지만 야단스럽지는 않았다. 한 동리에서 너니 내니 이웃하던 사람의 초상 끝에 치르는 명절이라서 모두들 불편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나 회회아비와 몽고놈들은 아예 장사를 일찍이 작파하고 해거름부터 여봐란 듯이 술판을 벌였다.
달님이는 언젠가 중양절에 돌이네 만두가게에서 달님이 아버지와 돌이 아버지가 함께 술을 마시다,
“옜다. 국화주는 약이니까. 곰이도 달님이도 한잔 하거라.”
하며 국화주를 달님이와 곰이 언니에게 한 잔씩 주었다.
그러자 돌이 아버지가
“어! 이 사람 왜 제 자식만 위하나. 우리 애들은 빼고,
“꽃님아! 돌이야! 이리 오너라. 너희들은 두 잔씩 먹어라.”
라고 하며 웃던 기억이 났다.
‘몇 년 사이에 그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 그런 돌이 아버지도 그때 잠잠히 옆에서 웃던 돌이 어머니도, 또 달님이 아버지도 거짓말처럼 이 세상에 없다.’
달님이가 멍하니 이런 생각에 잠겨있는데 곰이가 툭 쳤다.
“달님아! 달님아! 너 무슨 생각해? 돌이하고 나는 여기서 기다릴 테니. 너는 이제 망 안 봐도 돼. 제 깐 눔들이 밤이야 새겠니. 그러고 달님아! 바람도 불고 날씨도 추우니 꽃님이하고 우리 집으로 가서 자라, 잉.”
달님이가 곰이의 말을 듣고도 엉거주춤 앉아있자 돌이가 옆에서 등을 떠밀었다.
“그래, 달님아! 우리가 알아서 할게. 걱정 말구. 꽃님이 언니 좀 부탁해. 어이 들어가. 바람이 시다.”
“컹! 컹! 컹!”
곰이와 돌이의 재촉에 달님이가 꽃님이를 데리고 나오는데 동이가 사립짝으로 꼬리를 흔들며 짖었다. 들어선 것은 모가비 죽이 아저씨였다. 죽이 아저씨는 들어서며 동이에게 붙임성 있게 인사말을 건네며 등을 쓰다듬어 준다.
“돌이! 자냐? 그래, 이 녀석 동이구나. 며칠 새에 부쩍 자란걸.”
“오셨시우.”
달님이가 인사를 하자 죽이 아저씨는 밝게 답한다.
어! 꽃님이하고 달님이 아니냐. 달님이도 마실 왔었나 보구나. 이제 가려고. 꽃님이도 달님이네 집에가 자려나보구나. 거, 어두워 우물둥치가 미끄러우니 조심해 지나가렴.”
달님이는 다소곳이 대답했다. 왠지 죽이 아저씨는 아버지처럼 기댈만한 사람 같았다.
“예.”
모가비 죽이 아저씨의 말은 늘 따뜻하였지만 굳센 힘이 그 속에 있었다. 죽이 아저씨가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서야 달님이는 꽃님이를 데리고 되돌아섰다.
“컹! 컹! 컹!”
동이는 그 사이 달님이와 가까워졌다. 이미 달님이와 꽃님이보다 서너 걸음 앞서 저만치 달음질친다.
“동이야! 같이 가자. 꽃님이 언니 가자.”
떡전거리는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조용했다. 죽이 아저씨 말대로 우물둥치는 그새 얼어붙었는지 미끄러웠다. 꽃님이는 달님이의 팔짱을 꼭 끼고 씨암탉걸음질을 쳤다.
달님이는 다시 한번 모가비 죽이 아저씨가 광대패 모가비지만 참 사람이 다정하면서도 무섭다고 생각을 하였다. 한번은 우물둥치에서 몽고 놈들이 달님이 물항아리를 뺏어 장난질을 쳤고 이를 본 모가비 죽이 아저씨가 그러지 말라고 눈짓으로 말렸다. 그러자 한 몽고놈이 모가비 죽이 아저씨에게 무어라 욕하며 주먹질을 하였다. 아니, 달님이는 주먹질까지만 보았고, 그 다음에 그 몽고놈의 손은 죽이 아저씨에게 이미 반쯤 꺾여 엎어진 뒤였다. 동시에 달님이 물동이를 흔들어 대며 웃던 또 한 놈은 다리에 걷어차여 서너 걸음은 뒤로 나뒹굴었다.
그 일 이후로 몽고놈들이 달님이에게 장난질을 함부로 치지 못한다. 누군가에게 모가비가 되기 전에 죽이 아저씨는 광대패에선 드물게 칼을 잘 던지는 고수였고 수박(手搏)을 잘한다는 말도 들었다. 태어나기도 전 일이지만, 죽이 아저씨의 얼굴에 난 상처는 떡전거리에 광대패로 들어와 있을 때 대방과 싸워 난 것이라 하였다. 그 때 광대패를 이끌던 대방을 달님이는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어찌나 힘이 센지 회회아비가 서넛이 덤벼도 안 된다는 이야기도 언젠가 아버지가 하였다. 여하튼 죽이 아저씨와 다툰 그 이듬해부터 그 대방은 이 떡전거리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달님이는 집에 와서도 ‘곰이 언니와 돌이에게 모가비 죽이 아저씨가 온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라는 생각을 하며 마음이 너무 소마소마하였다. 달님이는 곰이와 돌이가 회회아비에게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은 분명한데, 그 다락같은 회회아비의 완력은 우리 동네 씨름장사인 메아지 아버지도 나가떨어지지 않았나. 암만 술을 먹어 취했다고는 하나 호락호락 당할 예사 되놈이 아니기에 여간 걱정스러운 게 아니었다.
달님이 엄니는 검둥네서 먹은 국화주 두어 잔에 취해서인지 초저녁부터 잠들어 있더니 이제는 주럽이 들어서인지 코까지 곤하게 골았다. 꽃님이는 정신 줄을 놓았는데도 돌이 일을 알기나 하는 것처럼 잔뜩 웅크려서는 달님이의 치마폭을 꼭 쥐고 놓지 않았다.
가을바람이 어찌나 무섭게 불어 젖히는지 문풍지가 부르르 떤다. 달님이는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고 꽃님이를 흔들었다.
“꽃님이 언니! 언니! 내가 옛날 얘기해줄까?”
옛날 얘기라는 말에 꽃님이는 치맛자락을 놓고 얼굴을 코앞에 들이댔다. 달님이가 들려 주려는 이야기는
시루말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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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전해 오는 것으로 이 지역 사람이라면 아이들까지도 다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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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님이 언니, 시루말이라고 알지? 떡을 찌는 시루, 왜 가을이면 시루떡을 쪄서는 부뚜막 장독대에 올려놓고 조왕신, 터주신, 성주신에게 고사를 지내잖아.”
“맞아, 시루떡 나 잘 먹어. 엄니가 해줬어. 엄니가 하늘나라에서 또 해줄거야. 그렇지 달님아!”
“응. 꽃님이 언니 말이 맞아. 그 시루떡을 찌는 시루의 구멍은 하늘을 말한대. 왜 시루에 보면 어떤 건 7개, 어떤 건 9개, 어떤 건 12개의 구멍이 뚫려 있잖아, 그지- 꽃님이 언니.”
“알아! 알아! 그게 하늘을 말하는 거야.”
“맞아, 꽃님이 언니. 이 시루말 얘기인데. 지금부터 할 테니 잘 들어 봐. 옛날에 옛날에 저 하늘에 천하궁이 있었는데 거기에 당칠성이란 멋있는 사내가 살았대. 근데 이 당칠성이 하늘에서 내려와 지하궁에 사는 매화부인을 사랑했지 뭐야.”
“그래서, 그래서.”
달님이는 꽃님이 언니가 정신 줄을 아예 놓기 전에도 얘기 듣는 것을 참 좋아했지만 여전히 이야기만은 알아듣는 것이 참 이상했다.
“그래서 매일 밤, 매일 밤, 당칠성이 내려와 자고 갔더니, 글쎄 매화부인이 아이를 가졌고. 아들 형제를 낳았다지 뭐야. 큰 아들은 선문이고 작은 아들은 후문이라 이름을 지었어. 그런데 당칠성이는 잠만 자고 하늘로 올라간 거야. 그러니 얘들이 선문이하고 후문이에게 아부지 없는 자식이라고 놀려댔지 뭐야.”
“나쁘다. 나쁘다. 회회아비놈 같아.”
꽃님이가 얼굴을 찌푸리고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달님이는 이야기를 끊고 꽃님이를 품에 꼭 껴안았다. 가늘고 연약한 어깨가 달님이의 가슴에서 바들바들 떨었다. 꽃님이를 안고 있는 달님이의 손도 어깨도 문풍지처럼 파르르 떨렸다.
“괜찮아. 꽃님이 언니. 이젠 괜찮아. 돌이하구, 곰이 언니가 막 혼내줬어.”
“정말.”
“그럼. 그럼 이젠 다시 이야기해도 되지.”
“응!”
“그래서, 두 형제는 엄니인 매화부인을 졸라서 아부지 당칠성이 천하궁에 산다는 것을 알아냈대. 두 형제는 천하궁으로 아버지를 찾아갔지. 당칠성이는 아들 형제를 만나 선문이는 대한국을 주고 후문이는 소한국을 주었어. 그런데 이 시절에는 해와 달이 둘이라 사람들이 살기가 어려웠어. 해와 달이 두 개씩이니 낮엔 해가 둘이 비쳐 뜨겁고 밤엔 달이 두 개나 되니 너무 추워서 잠을 잘 수 없는거야. 그래, 형제는 쇠로 만든 활로 해와 달 하나씩을 쏘아 없애 살기 좋은 시상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지.…”
꽃님이 언니는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
“돌이야! 돌이야!”
하고 잠꼬대를 한다.
달님이는 ‘그래, 좋은 세상, 좋은 세상, 왜 이 세상은 이럴까? 그런 좋은 세상이라면 돌이도 곰이 언니도 나도 편안하게 살 텐데.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일이 돌아가는 걸까?’라고 혼잣말을 하였다.
또 한번 맹렬하게 바람이 지나갔다. 사립짝에서 삐걱삐걱하는 소리가 안방까지 짓쳐들어왔다. 아직 겨울도 아닌데 사뭇 북풍이 몰아치는 듯하다. 뒤란의 자귀나무잎이 부수수 부수수하였다. 꽃님이는 이리뒤척 저리뒤척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깊은 가을 밤, 한 허리에 걸린 달빛이 견디다 못해 휘영청 창호에 우려 들고 이런저런 생각에 지친 몸이 아슴아슴 막 잠이 들려 할 때였다.
“불이야! 불이야!”
갑자기 밖에서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나며 창문 밖이 환해졌다. 사람들의 외침에 달님이 엄니도 꽃님이도 엉겁결에 일어나 앉았다. 달님이는 ‘혹 돌이와 곰이 언니가 회회아비와 싸우다 무슨 일을 당하는 것은 아닌지’하는 숭한 생각이 떠올랐다. 달님이가 부랴부랴 옷을 걸쳤다. 겨우 발에 걸린 신발을 끌고 밖으로 나왔을 때, 떡전거리 허리쯤에 있는 회회아비네 만두가게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달님이가 우물둥치를 지나 만두가게 앞까지 한 걸음에 달려오니 돌이가 저만치 보였다. 그 옆에는 곰이도 팔짱을 끼고는 서있었다. 마을 사람들도 모두 나왔다. 모가비 죽이 아저씨는 불길이 치오르는 맨 앞에 서있고 광대패 역시 저쪽 뒤에 서서 불길을 쳐다보고 있었다.
몽고 놈들 몇이서 그래도 두남두는지 술 취한 걸음으로 바가지를 들고는 우물둥치로 갔다. 저번에 우물둥치에서 달님이를 놀리다 모가비 죽이 아저씨에게 얻어맞은 몽고놈도 보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무도 불을 끄려하지 않았다.
누군가,
“회회아비가 술에 취해 못 나오나 보군. 천벌을 받는 거여, 천벌을…”
하자, 도야지 아버지가,
“암! 천벌이구 말구, 하늘이 하늘 구실을 하는 건데, 불을 왜 꺼. 그렇게 못된 짓을 제 머리털만큼이나 해대더니.”
라며 침을 “캭” 뱉었다.
바람이 워낙 세어 이미 온 동네 사람이 모두 힘을 합해도 불길을 잡을 수 없게 되었다. 거센 불길은 둘러선 사람들 얼굴까지 발갛게 물들였다. 몽고 놈 두엇이 바가지에 물을 떠와 끼얹고 사람들에게 “물! 물!”하였으나 그도 그뿐이었다. 아무도 거들어 주는 사람이 없자 머무적머무적 거리더니 구경꾼들 틈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만두가게 왼쪽이 무너져 내리며 불꽃이 확 일더니 반딧불처럼 하늘에 불꽃수를 놓고는 검은 하늘로 사라졌다. 회회아비의 만두가게와 붙어있는 몽고놈의 집도 이미 반이 타들어갔다. 일이 이렇게 돌아가자 몽고놈들은 비칠비칠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와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주먹을 꽉 쥐고 곰이와 서서 불길을 바라보는 돌이의 얼굴은 불기운이 비쳐서인지 붉게 이글거렸다. 달님이는 갑자기 돌이가 큼지막한 바위처럼 느껴졌다. 달님이는 무엇보다 돌이와 곰이가 무사하여 마음을 쓸어내렸다. 만두가게 불길이 반 넘어 사그라질 때쯤 곰이가 소매를 당겼다.
“달님아! 엄니, 꽃님이도 그만 들어가자. 제 놈이 그런 짓을 했으니 으레 죽어 마땅하지. 돌이야! 너도 오늘은 우리집이서 자자.”
달님이는 그제야 엄니가 꽃님이 언니를 데리고 나와 옆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참 무서운 밤이었지만, 달님이는 그날 밤 차가운 가을바람이 따뜻한 봄 햇살 같이 느껴졌다.
곰이와 돌이는 회회아비에 대해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고 달님이 역시 물어보지 않았다. 다음 날, 읍성에서 조사차 두어 사람이 나왔으나 회회아비가 술에 취해 등잔불을 켜놓고 잠을 자다 발로 차 그런 변을 당한 것이 맞을 거라는 소문만 듣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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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 해 가을이 노랑, 파랑, 빨강 꽃비가 떨어지듯이 갔다. 겨울을 맞고 지내고, 고양이 같은 새 봄이 왔고, 여기저기 새싹이 돋더니 제비꽃이 폈다. 제비꽃은 제비보다 먼저 와 제비보다 먼저 지는 꽤 슬픈 꽃이다. 이제 보릿고개가 시작됨을 알리는 꽃이요, 그렇기에 북방의 굶주린 오랑캐가 양식을 찾으러 쳐들어옴을 알리는 꽃이기도 하다. 꽃의 뒷모양이 머리 태를 드리운 오랑캐의 뒷머리와도 같아서였다.
그래도 달님이는 이 제비꽃이 참 좋았다. 귀족들의 정원에는 모란꽃이 그득하다고 하지만 노랑, 보라의 제비꽃은 땅에 착 엎드려있는 것이 꼭 백정들의 삶 같아선지 봄이면 달님이 눈길을 늘 야무지게 뺏어댔다.
막 돌이 엄니의 산소 곁에 제비꽃이 봄 햇살 문 채 몽우리를 맺힐 무렵, 돌이가 달님이를 제 집 뒤란으로 불러냈다. 달님이는 깍짓손을 하고 반쯤 외면하고 울타리 섶만을 보았다. 돌이는 그런 달님이를 흠칫흠칫 쳐다보며 몇 번이나 입맛만 쩍쩍 다셨다. 그렇게 한참이나 입만 달싹이고 뜸을 두어 번이나 들이더니 말문을 열었다.
“달님아! 나 서경 좀 다녀올란다.”
그러더니 돌이는 달님이 손을 잡아당겨 뜬금없이 댕기 둘을 쥐어준다.
“하나는 니꺼구, 하나는 꽃님이 언니 꺼다. 단옷날 매거라. 저번에 아부지 찾으러 가며 사다준다고 했잖니. 그때 사온 건데, 그동안 정신없어 이제야 준다. 나는 서경 좀 다녀올게.”
“서경? 갑재기 서경은 왜?”
“거기 ‘심’이 있다더라.”
“뭐, 심? 심이 뭔데? 누가 심이 거기 있다고 했는데?”
달님이는 들음들음 무슨 소리인지 몰랐다. 달님이가 옴니암니 따지자니 돌이는 대답 대신 달님이 손을 꼭 잡았다.
달님이는 돌이의 손이 그렇게 크고 따뜻한 줄 처음 알았고 돌이의 숨소리와 심장소리가 그렇게 사내다운지를 안 것도 처음이었다. 달님이는 돌이의 얼굴에서 저번 회회아비네 불난 날 본 모습을 보았다.
며칠 뒤, 돌이는 곰이와 함께 서경으로 떠났다. 달님이의 눈에 등에 질끈 괴나리봇짐을 동여매고 서경으로 가는 돌이의 뒷모습이 앞산만 했다가 뒷산만 했다, 달만 했다 별만 해졌다. 그러더니 달님이의 눈동자에 맺힌 돌이의 뒤태가 달막달막한 가슴으로 내려와 둥지를 틀고는 앉아버렸다. 달님이는 가슴이 아리고 쓰렸지만 눈바래기만 할 뿐이었다.
이른 봄날 때 이른 아지랑이가 달님이의 두 눈에 아롱아롱 피어오르더니 귓결에 노랫소리가 들렸다. <서경별곡>이었다.
“서경(西京:지금의 평양)이 아즐가 서경이 서울이지마는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닦은 곳 아즐가 닦은 곳 작은 서울을 사랑하지마는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
컹! 컹! 컹!”
동이도 헤어지는 것이 서운한 지, 가다간 서고 가다간 서고 한참을 짖어대며 돌이를 따라갔다. 꽃님이는 한 손엔 돌이가 준 부러진 비녀를 들고 한 손으론 달님이 치맛자락을 꼭 쥐었다.
가시리 가시리잇고 나난
바리고 가시리잇고 나난
위 증즐가 태평성대
날러는 어찌 살라하고
바리고 가시리잇고 나난
위 증즐가 태평성대
잡사와 두어리마나난
선하면 아니올셰라
위 증즐가 태평성대
셜온님 보내압노니 나난
가시는 듯 도셔 오쇼셔 나난
위 증즐가 태평성대 <가시리>
달님이는 저도 모르게 <가시리>를 불렀다.
<서경별곡>과 <가시리>, 누구나 이별을 할 때면 부르는 노래였다. 이별은 이별이기에 슬프지만 결코 절망은 아니라고 달님이는 입술을 자그시 깨물었다. 반드시 다시 만날 것이라고 믿었다. 아니, 믿어야만 했다.
백정들은 가는 사람도 보내는 사람도 이 노래를 부르고 보내고 이 노래를 부르며 떠났다. 떠나고 보내지만 다시 만날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노래요, 삶이 자신들의 몸을 스쳐갈 때면 부르는 노래이기도 하였다.
달님이는 아리아리한 그 무엇이 앙가슴을 불에 덴 듯 파고든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