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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나 Jul 29. 2019

바쁘더라도 가끔 나와 데이트 해 줘

두 달전부터 혼자서 코인노래방 가는것에 재미 들렸다.


나는 노래를 잘 하지 못한다. 일단 목소리가 너무 가늘고 약하다.

예전에 사람들과 같이 노래방에 갔을 땐 그런 내 목소리가 민망해 별로 노래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코인노래방에서는 노래를 거의 쉬지 않는다.

들어가자마자 지폐를 넣고, 약 5분동안 부르고 싶은 곡들을 마구 예약한다.

옛날 유행가부터 팝송, 만화주제가까지. 장르를 초월한 메들리를 시작한다.


일어서서 화면을 손가락질 하기도 하고 혼자 웃겨서 웃기도 한다. 

목소리가 작으니 멜로디와 반주 음원을 작게 줄여 부르고, 아무리 흥이 나도 탬버린은 건드리지 않는다.






30대 중반까지도 마음 맞는 친구와 뭔가를 함께하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상대는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전혀 흥미를 느끼거나 궁금해하지 않았기 때문에 좀 외롭기도 했었다. 

그런데 나는 알아 버렸다.

나랑 노는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다는 걸.



수요일 오전에는 어머니께 적당한 핑계를 대서 아침일찍 - 이라고 해봐야 9시 반 - 집을 나선다.

이때부터 4시간쯤, 오전시간은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이다.


내가 친구들에게 했던 행동을 나에게 똑같이 하면 된다.

네가 가고 싶은데 가 보자.

네가 하고싶은 거 해 보자.

네가 먹고 싶어 했던 거 오늘 먹어보자.

그런 스스로의 작은 허락과 존중만으로도 마음은 날아갈 것 같다.


대부분은 서울에 있는 도서관, 작은 산밑 산책로나 숲길, 공원을 가 본다.

그리고 코인 노래방에 가기도 하고 가끔 짜장면이나 햄버거를 먹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필요한 식재료를 사서 집에 돌아와 할일과 작업을 시작하는데

마음이 훨씬 가벼워지는걸 느낀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수요일이다.

나는 아홉시 반에 집을 나서 어젯밤의 빗방울이 아직 촉촉한 공원을 걸어 역 근처까지 왔다.

마음이 내키는 카페에 들어와서 전부터 궁금했던 흑당 버블티를 주문했다.

옆 테이블에 사업 얘기를 하던 아저씨들이 조금 후 카페를 나가자 내부가 조용해졌다.


나는 가라앉은 갈색 먹구름같은 흑당을 얼음과 함께 카랑카랑 저어 마셔가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 중 아무도 이 쪽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시간이 남으니 오늘도 코인 노래방에 가야겠다.




기회가 되면 혼자서도 재밌게 노는 아이에 대한 그림책을 써 보고 싶다.

나를 알아가면서부터 자연스럽게 남들과도 편안하게 놀 수 있는 아이의 이야기를 써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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